박상병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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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이 6.1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열린 17개 시·도 가운데 12곳에서 승리했다. 반면 민주당은 초접전 끝에 신승을 거둔 경기도를 비롯해 5곳에서 당선됐지만 전체적으로는 참패다. 7곳에서 치러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도 국민의힘이 5곳에서 승리해 2곳에서 당선된 민주당을 압도했다. 서울과 경기 등 기초단체장 선거도 국민의힘이 압도했다. 전체적으로 이번 6.1 지방선거는 국민의힘 압승, 민주당 참패로 끝났다.

사실 국민의힘 압승은 이미 예견된 일이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지 불과 22일 만에 치러진 지방선거이기 때문이다. 새 정부 출범에 따른 ‘컨벤션 효과’는 지우려 해도 지우기 어렵다. 게다가 윤 대통령의 공약대로 청와대가 개방됐으며, 미국 바이든 대통령 방한까지 겹치면서 윤 대통령과 새 정부에 대한 관심은 더 커졌다. 따라서 지금은 어찌 됐던 ‘윤석열 타임’이다. 국민의힘 후보들 대부분이 이번 지방선거에서 윤 대통령과의 사진이나 여러 인연 등을 강조한 것도 이런 배경이다. 바로 이 대목이 이번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 압승의 원동력이었다.

그렇다면 민주당은 어땠는가. 지난 대선 패배 이후 민주당이 보여준 모습은 한마디로 코미디 같은 자충수와 구태의연한 인물들의 언행, 그리고 자성 없는 오만함으로 가득했다. 이번 지방선거 참패 뒤의 결과론적 비평이 아니다. 어처구니없는 방식으로 윤호중 비대위 체제가 들어설 때부터 비극은 시작됐다고 봤기 때문이다. 대선 패배에 대한 통한의 성찰도, 민주당 미래에 대한 치열한 고민도 그다지 보이지 않았다. ‘졌잘싸’의 응원 속에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별 일 없다’는 식의 비대위 체제로 갔다. 거기서부터 모든 것이 뒤틀리고 말았다는 얘기다. ‘0.73% 차이’는 약이 아니라 ‘독’이 돼 버린 것이다.

하지만 워낙 비판과 반발이 심했던지 스물여섯 살의 여성 투사, 박지현 공동비대위원장을 당 지도부로 초대하기는 했지만 그마저도 지방선거 직전까지 매끄럽지 못했다. 애초 변화와 혁신에 대한 의지가 부족한 사람들에게 박 위원장의 언행은 오히려 성가신 존재에 다름 아니었을 것이다. 박 위원장 홀로 국민 앞에 고개를 숙이며 사죄하는 모습마저 곱게 볼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윤호중 비대위원장과 이재명 총괄선대위원장이 먼저 감싸 안았어야 했다. 따라서 조금만 더 빨리, 조금 더 진지하게 논의하고 조율을 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큰 것은 비단 지방선거 참패 때문만은 아니다. 지방선거 현장에서 신발이 닳도록 뛰고 있을 민주당 소속 후보들에게 작은 희망이라도 줘야 하는 것은 당 지도부의 당연한 책무이기 때문이다.

송영길 전 대표의 서울시장 출마, 이재명 전 위원장의 인천 계양을 출마도 국민이 보기엔 상식 밖이다. 이기고 지고의 문제도 중요하지만 최소한의 명분마저 짓밟을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두 사람 모두 지난 대선 패배의 주역들이다. 잠시 성찰하며 숙고하더니 어느 날 갑자기 보라는 듯이 서울시장과 국회의원 후보로 뛰어 들었다. 서울 시민도, 인천 시민도 그리고 경기도민과 인천 계양을 유권자들도 쉬 납득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들이 아무리 당내 기득권을 쥐고 있다지만, 이런 식의 공천에 누가 박수를 보낼 수 있겠는가. 결국 6.1 지방선거를 ‘20대 대선 시즌2’로 만든 결정적 계기가 되고 말았다. 오히려 ‘윤석열 타임’을 더 재촉한 셈이다. 그러면서도 윤석열 정부에 대한 ‘견제’를 호소했다. 새 정부 출범 20일 만에 무슨 견제를 말하는 건지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주장이다. 당연히 ‘일꾼론’이 옳았다. 그러나 ‘윤석열 타임’에 휘말려 충청권 등에서 목소리 높인 일꾼론은 이렇다 할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두고두고 아쉬운 대목이다.

민주당 비대위가 2일 6.1 지방선거 참패 책임을 지고 비대위원 총사퇴를 결정했다. 윤호중 공동비대위원장은 이날 민주당의 더 큰 개혁과 과감한 혁신을 위해 회초리를 들어주신 국민께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6.1 지방선거 패배에 대해 지지해준 국민과 당원 여러분께 사죄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그러면서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주신 2974분의 민주당 후보들께도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는 말도 덧붙였다. 민주당이 이번 지방선거에서 왜 졌는지, 민주당 자멸의 결과가 어떤 것이지 그리고 당 지도부가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을 했는지 윤 위원장도 잘 알고 있다는 뜻으로 보인다. 국민과 당원은 물론 이번 지방선거에 나선 민주당 후보들에게도 사죄한다는 말이 예사롭지 않게 들리기 때문이다.

이제 6.1 지방선거 이후 민주당을 어떻게 할 것인가로 관심이 모아질 수밖에 없다. 당 지도부를 어떻게 구성하느냐가 관건이다. 윤호중 위원장은 “대선과 지방선거 평가와 정기 전당대회를 준비할 당의 새로운 지도부는 의원총회와 당무위원회, 중앙위원회를 통해 구성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제 방향은 정해졌다. 말 그대로 ‘육참골단(肉斬骨斷)’의 결단 없이는 어렵다. 촛불혁명 5년 만에, 그것도 문재인 정부가 발탁한 검찰총장 출신의 정치 초보자에게 정권을 내 준 민주당이라면 더 이상 할 말이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사실상 민주당 해체 수준의 ‘재창당’으로 가는 것이 옳다. 막연하게 다 바꿔야 한다는 게 아니다. 윤석열 정부를 제대로 견제하고, 차기 총선에서 확실한 대안세력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지금 이대로는 안 된다는 의미다. 혹여 또 당권싸움을 준비하고 있는 특정 세력이 있다면 이젠 정말 그만둬야 한다. 그들이 물러난 공간에 새롭고 유능한 강호의 인재들이 모여서 민주당 혁신을 위한 춤판을 만들어 줘야 한다. ‘박지현의 눈물’이 기쁨의 눈물로 변할 수 있도록 민주당 주역들이 큰 울타리가 돼야 한다. 민주당의 지방선거 참패, 이번만큼은 부디 현실을 직시하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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