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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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과 여당인 국민의힘 의원들이 18일 광주로 가서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했다. 다 함께 5.18민주화운동의 상징곡이 된 ‘임을 위한 행진곡’도 제창했다. 보수정당 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더 진화된 국민의힘, 나아가 ‘국민통합’을 위한 진정성을 보이려는 의지로 보인다. 반갑고 환영할 일이다. 언제까지 광주의 아픔을 음해하고 적대로 몰아서 정쟁과 진영 대결의 수단으로 삼을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5.18민주화운동은 과거 신군부 세력의 공작으로 10년 가까이 ‘폭동’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써야 했으며, 이후에도 일부 극우세력에 의해 ‘북한군 투입설’ 등으로 난타를 당하기 일쑤였다. 아직 진상규명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지만, 이번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 의원들의 참석으로 소모적인 논란은 일단락 됐다. 윤 대통령은 앞으로 임기 내 기념식에 매년 참석하겠다고 말했다. 낡은 이념에 사로잡혀 있던 이전의 보수정당 대통령과는 분명히 다르다.

이날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 의원들의 5.18민주화운동 기념식 참석을 계기로 정치권에서 다시 개헌 논의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5.18민주화운동의 정신을 ‘헌법 전문’에 수록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기 때문이다. 헌법 전문에 4.19민주이념을 계승한다는 것에 더해 1980년의 5.18민주화운동과 1987년의 6월항쟁으로 이어지는 대한민국 민주화의 역사를 헌법에 적시하자는 것이다. 다행인 것은 이런 취지에 민주당은 물론 국민의힘도 동의하고 있다는 점이다. 여야가 합의하면 개헌 논의가 더 빨리 진척될 수도 있어 보인다.

먼저 다수당인 민주당은 이미 ‘헌법개정정치개혁특위’를 구성해서 개헌 논의를 본격화 했다. 윤호중 비대위원장은 지난 17일 광주에서 열린 중앙선대위 회의에서 “5.18민주화운동 정신을 헌법에 새겨 넣은 일을 최대한 서두르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하반기 원 구성 때 헌법개정특위를 구성해서 개헌 논의에 즉각 착수하겠다”고 덧붙였다. 박홍근 원내대표도 국민의힘을 향해 조건 없이 동참해서 개헌 논의에 진정성을 보여 달라고 했다. 이에 대해 국민의힘도 일단 전향적 분위기가 많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대선 과정에서 5.18민주화운동이 자유민주주의 정신을 구현한 것이라며 헌법에 넣어야 한다고 말했다. 비록 지난 5.18민주화운동 기념사에는 개헌 문제가 빠졌지만, 윤 대통령의 전향적 입장은 그대로 국민의힘이 개헌에 나서는 큰 동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국민의힘도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이미 국민의힘 강령에는 5.18민주화운동 정신을 계승한다고 적시돼 있다. 김기현 전 원내대표도 윤 대통령이 후보 시절 헌법에 적시해야 한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며, 이제는 당내 의견을 수렴할 때가 됐다고 했다. 당내 여론도 전향적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다만 개헌 문제가 복잡하고 그 시점과 개헌의 내용 등을 총체적으로 검토해야 하기 때문에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얘기가 많다. 하지만 5.18민주화운동을 헌법 전문에 적시하자는 데는 원론적으로 찬성하고 있는 셈이다.

민주당은 국회 차원의 기구를 구성해서 즉각 개헌 논의에 나서자는 입장을 거듭 밝히고 있다. 국민의힘도 빨리 당내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여야가 개헌에 대한 공감대가 이뤄진다면 속도는 더 빨라질 수 있다. 다만 ‘원론적 찬성’ 입장으로는 곤란하다. 핵심은 역시 디테일에 있기 때문이다. 관건은 국민의힘에 달려 있어 보인다. 현재 민주당은 5.18민주화운동 적시 외에도 권력구조 개편을 비롯해 개헌 문제에 대한 전반적인 이슈를 총체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5.18민주화운동을 헌법 전문에 적시하기 위한 ‘원포인트 개헌’은 안 된다는 입장이다. 국민의힘도 예외가 아니다. 특히 권력구조를 바꾸는 문제도 함께 논의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사실 그동안 개헌의 필요성을 강조했던 핵심 이슈는 ‘제왕적 대통령제’를 폐지하고 분권형 대통령제나 내각책임제로 권력구조를 바꾸는 것이었다. 이미 임계점에 이른 ‘진영 대결’의 폐해를 해소하고 더 다원적이고 풍부한 정당체제를 구축해서 의회정치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 올리자는 것이 핵심적인 요구였다. 지금처럼 대통령 중심제를 유지한다면 거대 양당체제와 이를 바탕으로 두 거대 정당의 ‘적대적 공생관계’가 지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정치를 흔들고 있는 ‘진영 대결’은 그 현실적 모습일 뿐이다. 그 폐해를 줄이자는 것이 개헌에 대한 가장 직접적인 요구였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내부적으로 셈법이 복잡해 보인다. 개헌 논의 자체가 거대한 ‘블랙홀’이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국민의힘은 개헌 내용에 대해서도 아직 정리가 안 돼 있어 보인다. 특히 기본권 조항이나 경제민주화 조항, 노동 관련 조항 등 헌법에 새롭게 담아야 할 시급한 현안들이 적지 않다. 권력구조 문제도 아직 의견이 모아지지 않은 상태다. 5.18민주화운동만 놓고 얘기할 계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이대로라면 당내 의견을 더 모으는 일도 쉽지 않아 보인다.

결론적으로 이참에 개헌에 대한 총체적 검토는 좀 더 미루더라도 당장 할 수 있는 현안만 정리해서 개헌에 나서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이를테면 5.18민주화운동과 권력구조 개편, 두 가지만 논의해도 엄청난 성과다. 5.18민주화운동은 이미 정리가 됐다. 그렇다면 권력구조, 즉 분권형 대통령제로 할 것인지 아니면 내각책임제로 갈 것인지만 정리된다면 민주당과 즉시 협의에 나서도 좋다는 생각이다. 민주당도 반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지나치면 정략으로 보일 뿐이다. 따라서 여야 합의만 된다면 국민투표 시점도 차기 총선과 함께 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굳이 대통령 임기를 조정할 필요도 없다. 이번만큼은 정략보다 국익이 앞서고, 국민통합이라는 시대정신에 따라 정치권이 한 목소리로 제7공화국을 여는 결정적 계기가 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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