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제 인천언론인클럽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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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아흔 나이를 넘어서도 매일 1만 5000보를 걷고 새벽 3시에 일어나 독서와 시 쓰기를 멈추지 않는 영원한 ‘청년 시인’ 이생진 선생(93)을 만났다. 인천 강화도의 개인 문학관에서 열린 그분의 40번째 시집 ‘나도 피카소처럼’ 출판 기념회였다. 시인, 박물관 큐레이터, 1인 크리에이터 등으로 활동하는 60, 70대 제자 7명이 마련한 뜻깊은 자리의 여운이 아직 진하게 남아 있다. 누군가를 흠모하고, 따듯한 포옹과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진실된 언어로 소통하는 모습에 진한 감동이 솟구쳤다.

청년 시인이 오래전에 쓴 ‘그리운 바다 성산포’는 가슴을 파고드는 대목이 많은 장편시다. ‘살아서 고독했던 사람/ 그 빈자리가 차갑다/ 나는 떼어놓을 수 없는 고독과 함께/ 배에서 내리자마자 방파제에 앉아 술을 마셨다/ 해삼 한 토막에 소주 두 잔/ 이 죽일 놈의 고독은 취하지 않고/ 나만 등대 밑에서 코를 골았다/….’ 제주도 거센 파도를 망연자실하게 바라보는 나를 상상케 하는 시다.

이생진 시인은 그날 이런 말을 해줬다. “많이 걷고 웃어라.” 젊은 시절부터 섬이 좋아 그간 2000개 이상의 섬을 다녀오고 모딜리아니, 피카소, 황진이, 김삿갓을 탐구한 시를 쓴 아흔 넘긴 시인은 아주 평범한 일상의 지혜를 일깨워줬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해야 하는 글로벌 팬데믹은 고독, 고립을 사색하게 해준다. 우리는 ‘도시에 갇힌 외로움’에 너무도 익숙해져 있다. 이제 거실에 모여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기보다 각자의 공간에서 스마트폰을 보며 흩어져 살고, 거리엔 서로 웃음 짓지 않고 그저 무심히 스쳐 지나는 익명의 사람들로 넘쳐난다.

쥐의 실험을 통해 이런 ‘나노사회’의 공격성이 확인된다. 태어난 지 3개월 된 생쥐가 우리 안에서 4주 동안 고독을 강요받았다. 어느 날 새로운 생쥐가 우리로 찾아왔다. 고립된 생쥐는 방문자를 반기기보다 초기 탐색 직후 뒷다리로 서서 꼬리를 세우더니 ‘침입자’를 난폭하게 물어뜯어 바닥으로 넘어뜨리는 놀라운 행동을 보인다. 영국의 글로벌 베스트셀러 저자 노리츠 허츠의 ‘고립의 시대’에 소개된 장면이다. 외로움이 이 세계를 더 공격적이고 성나게 할 수 있다는 경고를 생쥐가 하고 있다.

MZ세대는 외로움을 긍정적 취향으로 승화하는 것 같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이 세 집 당 하나로 1500만명에 이르는 시대다. 젊은 세대는 강아지보다 혼자 잘 놀고 때론 무심한 고양이를 선호한다. 고양이의 7가지 특성과 너무도 잘 맞기 때문이다. 어느 연구자가 밝힌 것처럼 고양이는 훈련되고 싶어 하지 않고, 훈련되지도 않는다. 혼자 잘 놀고, 자신의 마음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끊임없이 관찰하고, 하루 중 30%의 시간을 자신의 치장인 그루밍을 한다. 또 덕질처럼 일단 꽂히면 무섭게 집중하며 특정 대상에 충성하지 않는다. 고양이와 MZ세대의 초개인적 성향은 서로 잘 통하는가 싶다. 바이러스 팬데믹을 이겨내려면 화학적 백신으로는 부족할 것이다. 개인 행복을 존중하면서 아름답고 지속가능하고, 인간적으로 사는 공동체적 ‘코로나 사피엔스’가 많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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