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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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는 옛 민담속의 주인공이다. 아득한 옛날을 상기할 때 호랑이가 담배 피우던 시절이라고 말한다. 호랑이를 산군(山君) 혹은 산신령, 혹은 영물이라고 한 것은 그만큼 두려운 존재여서 붙인 별호다. 그러나 우리 민족은 무서운 호랑이를 해학적인 대상으로 삼아 물리치는 무용담을 많이 만들었다.

호랑이가 사람을 해치려고 산에서 내려왔다. 아이가 호랑이가 온다고 하자 울음을 그치지 않더니 할머니가 곶감 주겠다는 소리에 그만 울음을 그쳤다. 호랑이는 자기보다 곶감이 더 무서운 존재라고 생각해 줄행랑을 친다.

충북 영동군 심천면 고당리 박연선생의 유적지에는 감호(感虎) 설화가 전해 내려온다. 효자 박연이 어린 시절 모친이 세상을 떠나자 3년간 여막을 짓고 묘소를 지켰다. 그런데 호랑이가 나타나 위해하지 않고 박연을 지켜주었다고 한다.

어린 박연의 울음소리에 호랑이가 놀라 잡아먹을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인지. 이 같은 소식이 서울에 알려지자 태종은 박연이 태어난 마을에 효자문을 세우라고 명했다.

박연은 효심이 깊은 세종의 눈에 들어 가장 가까운 신하가 됐다. 그리고 왕명으로 아악을 정리하는 대업적을 쌓았다. 태종대 하사받은 효자비가 지금은 고당리 박씨사당 안에 보존돼 있는데 충북도문화재라도 지정됨직한 가장 오래 된 효자비다.

호작도(虎鵲圖)는 호랑이와 까치가 그려진 민화다. 이 그림은 조선 후기인 19세기에 들어 많이 유행했다. 새해 아침 액운을 막기 위해 대문에 붙여진다. 재미있는 것은 까치가 어리숙한 호랑이를 조롱하는 그림이다. 호작도의 그림 패턴은 다양하다. 호랑이의 모습이 귀여운 고양이 수준으로 표현된 경우도 있다.

민속학자 가운데는 호작도를 정치적 산물이라고도 해석한다. 호랑이는 탐관오리, 까치는 민초를 상징하고 있다는 것이다. 무서운 호랑이는 졸렬하고 힘없게 표현되고, 까치는 작지만 당당하고 공격적으로 묘사된다. 까치에게 호랑이가 질책당하는 모습에서 조선시대 민초들의 저항 정신이 엿보인다고 해석하는 것이다.

까치 호랑이 그림에 반드시 등장하는 것이 소나무다. 왜 소나무가 등장하는 것일까. 까치는 좋은 소식을 전해 준다는 길조(吉鳥)다. 전라도 민요 흥타령 속에는 ‘아침에 까치가 울면 그리운 님이 온다’고 믿는 소망이 담겨있다.

민속학자들의 글을 빌리면 ‘길흉화복(吉凶禍福)을 좌우하는 서낭신이 사방 가운데 손길이 닿지 않는 곳에 까치를 시켜 호랑이에게 신탁(神託)을 전달하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그러므로 소나무, 까치, 호랑이의 그림 융합은 세 가지 영물(靈物)을 합친 것으로 ‘길상(吉祥)과 벽사(僻邪)’의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2021년 임인년 호랑이 해가 밝았다. ‘검은 호랑이의 해’라고도 한다. 올해 국가적 대사는 바로 제20대 대통령 선거다. 진짜 민의의 향배가 어디 있으며, 어떤 인물이 차기 대통령에 당선될지 궁금하다.

이번 대선 정국은 국민들의 기대에 못 미치고 있다. 후보들에 대한 비호감도는 역대 대선 가운데 가장 높다. 서로 할퀴고 물어뜯는 이전투구와 가짜 뉴스 등이 만든 만신창이 대선이다. 새해 벽두 올 한해를 열며 가장 좋은 해가 되길 기원해 본다. 나쁜 일은 모두 물러가는 벽사의 기운이 넘치는 호랑이해를 기대하는 것이다. 그래야 훌륭한 대통령을 얻는 기쁨도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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