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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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에서의 마지막 국정감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다. 한국 헌정체제에서 흔히들 국정감사는 ‘정기국회의 꽃’으로 불린다. 정부와 집권당의 국정운영 전반에 대해 국민의 시선으로 날카롭게 점검하고 비판하며 또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골든타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야당의 정치역량을 마음껏 선보임과 동시에 정권교체의 동력으로 삼을 수 있는 최고의 기회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국정감사는 사실상 ‘야당의 시간’인 셈이다. 특히 차기 대선이 불과 5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야당인 국민의힘 입장에서는 당의 사활을 걸고 국정감사의 꽃을 활짝 피워내야 할 ‘절정의 시간’이다.

그러나 야당의 시간은 대형 정치이슈에 매몰된 채 속절없이 시간만 흘러가고 있다. 민주당은 고발사주 의혹으로, 국민의힘은 대장동 의혹으로 연일 난타전이다. 검찰을 비롯해 수사당국이 수사를 벌이고 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상대방을 무너뜨릴 수 있는 ‘무기’로 삼아 총공세다. 아직은 서로 수많은 주장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국민은 그 사실관계를 잘 모른다. 물론 여야 정치권도 사실관계를 제대로 알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제 막 수사에 들어간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금은 여야 모두 하나의 ‘주장’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일단 던지고 보자는 것이며, ‘아니면 말고’ 식이다.

지난 5일 국회에서 열린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의 농림축산식품부에 대한 국정감사가 있었다. 이 날 국민의힘이 내건 핵심 이슈는 최근 강원도 일대로 확산되고 있는 아프리카돼지열병(ASF) 문제나 군 장병들의 급식 식재료 등에 대한 쟁점이 아니었다. 국민의힘은 그들이 앉은 자리에 ‘판교 대장동 게이트 특검 수용’을 촉구하는 손팻말을 붙였다. 국민의 시선을 단박에 집중시키겠다는 의도일 것이다. 그러나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는 판교 대장동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 결국 국민의힘 차원의 정치공세 프레임을 소관 국정감사 현장에까지 끌고 와서 정쟁의 불을 붙이겠다는 의도로밖에 볼 수가 없다. 국민의힘은 문재인 정부의 마지막 국정감사라는 ‘야당의 시간’을 이런 식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공감은커녕 이런 국정감사 왜 하느냐는 비난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여당인 민주당은 어떨까. 하루가 멀다 하고 ‘고발사주 의혹’을 부풀리고 있다. 현재 검찰과 공수처, 경찰이 동시에 관련 의혹을 수사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민주당 의원들은 국정감사 현장에서 고발사주의 지시와 공모가 있었을 것이라는 막연한 ‘추정’으로 공세를 펴고 있다. 게다가 국민의힘 의원들이 대장동 의혹에 관한 마스크를 하고 손팻말을 붙였다며 거친 항의는 물론 일부 국정감사 파행까지 초래하고 있다. 집권당다운 포용과 설득의 역량은 턱없이 부족했다.

이번에도 정치권 대결의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것이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국민은 문재인 정부의 국정 5년에 대한 총체적인 평가와 후속 대책 및 여야 각 정당의 대안을 듣고 싶었다. 특히 부동산 정책과 영세 자영업자들에 대한 후속 대책, 청년층 일자리 문제 등은 이미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그러나 민주당이 몰아치는 고발사주 의혹에 대부분의 이슈들이 휩쓸리고 있으며, 국민의힘이 연일 목소리 높이고 있는 대장동 의혹에 마치 쓰나미처럼 모든 이슈들이 초토화되고 있는 형국이다. 과연 무엇을 위한 국정감사이며, 또 누구를 위한 정치인가하는 근본적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와중에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의 돌출 행보는 더 가관이다. 과거보다는 더 신선하고 낡고 병든 인물들 보다는 더 미래지향적인 정치담론을 이끌어 가도 부족한 판에, 이 대표도 결국 거꾸로 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 대표는 대장동 의혹과 관련해 특별검사제 도입을 요구하는 대형 손팻말을 목에 걸고 국회에서 청와대까지 걸어가는 1인 시위를 벌였다. 하필 국정감사기간 중에, 그것도 구태의연한 보여주기식의 1인 시위를 하는 모습은 이 대표 답지가 않다. 거기서 답이 나오는 것도, 국민적 공감대가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다. 물론 잠깐이나마 국민의 시선을 받을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전 세계 어느 나라 야당 대표가 그런 식으로 길거리 시위에 나서는 사례가 있는지 물어보고 싶은 심정이다. 그러면서도 이 대표가 미래를 말하고 정권교체를 요구할 것인가.

대통령 선거를 목전에 둔 시점에서 특검은 위험하다. 졸지에 정치판이 ‘특검판’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다양한 이슈들을 놓고 서로 논쟁하고 경쟁하면서 최적의 후보와 정책을 골라내야 할 엄중한 시기에 자칫 특검발 쏟아지는 속보가 그 모든 것을 덮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특검에서 연일 내놓을 브리핑 뉴스가 결국 대선판을 좌우할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특검의 브리핑은 말 그대로 하나의 수사 자료 일 뿐이다. 최종 확정된 사실도, 판결이 난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연일 자극적인 뉴스를 쏟아낸다면 대선은 그 뉴스에 휘말리고 말 것이다. 그래서 특검은 위험하다는 것이다.

특히 여야 대선 후보가 관련돼 있는 경우는 더 위험하다. 이는 이재명 지사의 대장동 의혹과 윤석열 전 총장이 관련돼 있는 고발사주 의혹의 경우가 딱 그렇다. 대장동 의혹을 특검으로 가는 것이 현 시점에서는 옳지 않다면 윤 전 총장의 고발사주 의혹도 마찬가지다. 여야의 유불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혹여 고발사주 의혹을 특검에 맡긴다고 치자. 사실이든 아니든 윤 전 총장은 대선을 치르기 어려울 것이다. 통제장치 없는 특검의 자극적인 수사 속보를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 따라서 국민의힘도 지금은 특검이 위험하며, 그래서 합의가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다. 정무감각이 좋다는 이준석 대표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하필 이 시점에서 대장동 특검에 매달리고 있다. 강한 것을 때려야 살아날 수 있다는 절박감의 표출에 다름 아니다. 동시에 내년 대선 전망이 어둡다는 뜻으로 들리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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