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용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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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대학 및 지역균형인재 육성에 관한 법률’ 시행령 일부 개정안이 9월 24일부터 시행됐다. 이 법에 따르면 2023학년도부터 지방대학의 의·치·한의대, 약학대학은 해당 지역 고교 졸업생을 의무적으로 40% 이상 뽑아야 한다. 다만 학생이 많지 않은 강원·제주는 20% 이상이면 된다. 또한, 지방대 간호대학 의무 선발 비율도 강원·제주 15%, 나머지 지역은 30% 이상, 의·치의학전문대학원의 최소 입학 비율도 20%(강원 10%·제주 5%), 지방 로스쿨도 최소 15%(강원 10%·제주 5%)로 규정했다.

지역균형인재 자격 요건도 강화해, 해당 지역의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가능했던 자격을 해당 지역에서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입학과 졸업까지 해야 인정된다. 다만 중학교까지 포함하는 요건은 내년에 중학교에 입학하는 학생이 대학을 가는 2028학년도부터 적용한다. ‘지역균형인재 선발’은 소멸위험에 처한 지방을 살리려는 취지에서 시행하는 정책이다. 하지만 이미 지역인재전형, 농어촌전형, 기회균등전형 등으로 지방에 사는 학생에게 많은 혜택을 부여하고 있음에도 40% 의무 선발을 법으로 강제하는 건 수도권 학생에 대한 역차별이란 불만이 나온다.

지역균형인재 선발제도가 지방 거점대학의 경쟁력을 유지 시켜 지방의 소멸을 막는 제도라는 평가도 있지만, 대학의 경쟁력은 ‘의치약대생’ ‘로스쿨생’ 몇 명 더 뽑는다고 유지되지 않는다. 시장 논리에 따라 경쟁력을 갖추지 못하면 도태되는 게 정상이다. 지방을 살리려는 목적이면 지역인재로 선발에서 우대를 받은 사람은 일정 기간 지역의 발전을 위해 봉사하는 의무와 책임도 같이 부여해야 한다. 의대라면 최소한 레지던트까지는 지역 병원에서 근무해야 지방의 의료공백을 메울 수 있고 우대 선발의 취지도 살릴 수 있다. 양질의 일자리가 수도권에 몰려 있는 현실에서 졸업 후 이들의 수도권 이동을 막을 방법이 없다는 건 핑계다. 교사들은 지역별로 뽑고 그 지역의 학교에서만 근무하도록 하지만 아무 문제가 없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는 여성 할당제, 지역 할당제, 유공자 가점제 등이 오히려 차별을 더 조장하고 기회의 공정성마저 앗아간다. 수시·학종 제도로 온갖 편법과 비리가 횡행하게 한 것도 모자라 아예 대 놓고 지역유지, 토착 세력들에게 이권을 몰아주는 제도를 법제화하니 공정의 기준이 실종된다. 지역인재가 또 다른 적폐세력으로 존재하며 군림할 날이 올까 두렵다. 2년 가까이 국가를 위해 청춘을 바친 군 가산점마저 불공정하다며 폐지하면서, 다른 조건을 가진 이들을 우대한다는 건 더 심각한 불공정이다.

가장 큰 문제는 우리 사회가 공정하다고 느껴야 할 학생들에게 심각한 가치관의 혼란을 준다는 점이다. 누구나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음에도 특정 지역에 산다는 이유로 우대하거나 차별받는 정책은 공정과는 거리가 멀다. 수도권에서 태어나 수도권에서 학교를 다녔다는 이유로 차별받는 정책은 더더욱 옳지 못하다. 수도권 인구에 비례해 수도권 학생에게도 혜택을 줘야 공정하다. 임기 내내 공정만 외치다 공염불로 끝나고 편 가르기만 하고 있으니 안타깝다.

지역균형발전은 꼭 필요한 정책이다. 이대로 가면 수도권만 남고 지방이 소멸한다는 우려에도 공감하지만, 방법은 재고해야 한다. 지방의 소멸을 막으려면 청년들이 떠나지 않도록 세제 혜택을 줘서라도 양질의 기업을 유치하면 된다. 자급자족할 수 있는 기업과 일자리가 생기면 자연히 청년이 떠나지 않는다. 의대를 졸업하고 지방에 터를 잡을 수 있도록 삼성, 아산병원 같은 대형 병원을 지방에 설립하고 의사, 간호사를 파격적인 대우로 모집하면 가능하다. 자급자족 도시를 만들지 못하고 베드타운만 만드니, 교통수단의 발달로 전국이 반나절인 좁은 나라에서 지방이 소멸하지 않을 수 없다.

지방 공무원 시험과 공공기관 채용에 이미 적용하고 있는 지역인재 제도도 문제가 많다. 지방의 인재를 해당 지역에 묶어 놓고, 서울의 청년을 지방에 내려보내는 순기능을 기대했지만, 역기능이 더 많아 보인다. 필자가 예전에 살았던 군단위 도시에서도 토박이 출신 공무원들이 토착 세력을 형성해 승진을 독식하다시피 하며 신흥 음서제로 자리 잡았다. 외지에서 온 공무원들은 승진이나 전보에서 차별이 심해 출신에 따른 파벌 싸움까지 생길 정도니 제도의 필요성을 다시 검토해야 한다. 세종시 공무원이나 지방으로 이전한 공기업 직원이 지방으로 터전을 옮긴 경우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지역균형인재’나 ‘지방소멸방지’ 정책은 탁상행정이 아닌 지방 현장과 청년의 소리를 들어 재수립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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