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용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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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소재 대학 신입생 가운데 중도 탈락 비율이 10%나 된다는 조사가 보도됐다. 심지어 서울대학교에서조차 신입생 중도 탈락 비율이 10% 이상인 학과가 무려 7개나 된다고 한다. 주로 의약학 계열 진학을 염두에 둔 자연계열 학생들의 중도 탈락이 많다니, 우수 인재의 의약학 계열 편중화가 더 심해진 듯하다. 이런 현상은 국가의 과학기술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제조업의 기반마저 붕괴시킬 수 있는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어 국가 차원의 대책이 필요하다.

서울대에서 중도 탈락 비율이 많은 학과인 생물교육과, 조선해양공학과, 식품영양학과, 조경지역 시스템공학부, 화학부, 생명과학부 등은 각 분야에서 중요한 기초학문이다. 서울대학교 간판만 보고 입학했다가 졸업 후 진로나 취업이 막막한 현실을 마주하고, 좀 더 조건이 나은 대학이나 학과로 가기 위해 자퇴를 선택하는 듯하다. 학생들이 자신의 적성과 꿈에 맞아도 취업이 보장되지 않는 학과는 기피하게 마련이다. 취업 가능성만 보고 학과를 선택해야 겨우 살아남을 수 있도록 구조화된 사회가 초래한 현상이다.

30여년 전에는 서울에 있는 상위권 공대는 지방대 의대만큼 입시 성적이 높았다. SKY대학을 포함한 명문대를 꼭 가지 않고, 지방의 거점대학인 국립대학교 공대만 나와도 대기업 진출이 수월했다. 서울까지 유학을 보낼 형편이 되지 않는 지방의 우수한 두뇌들이 국립대 공대를 졸업해 다양한 분야에서 성공한 인물이 많다. 이처럼 우수 인재가 이공계에 골고루 진학해 사회 곳곳에서 활약한 덕분에 세계를 선도하는 기업 탄생이 계기가 됐다.

‘의치한수’라고 불리는 의과대학, 치과대학, 한의과대학, 수의과대학을 졸업하면 직업의 안정성과 부와 명예를 같이 얻을 수 있다는 인식이 우수 인재의 쏠림이 발생하는 원인이다. 상위 1% 이내 우수 인재의 ‘의치한수’ 편중은 다양한 분야의 기초학문의 질 하락으로 이어진다. 의예과에 많은 우수한 인재가 몰렸지만 코로나19 시대에 베트남도 만든다는 백신 하나 만들지 못하는 건 심각한 인재의 낭비이며 인재교육의 실패다.

이과 1등은 적성과 관계없이 의대에 진학해야 한다는 학교와 부모의 인식부터 바뀌어야 한다. 의예과에서 적성에 맞지 않아 중도탈락하는 비율도 높다니 이 또한 비용 낭비다. 이들이 과학자나 공학도를 꿈꿀 수 있도록 기업이나 국가가 판을 깔아줘야 한다. 다양한 분야에서 인재가 골고루 활약해야 기업의 경쟁력이 강화돼 국력이 부강해지는 효과를 가져온다.

우수 인재가 공무원으로 몰리는 건 더 큰 문제다. 생산성이 그다지 크지 않은 일에 공무원이 몰려 규제를 위한 규제만 만들어대니 기업이 외국으로 떠난다. 비 오는 날 무릎 꿇고 차관의 우산을 들고 있는 모습이 공무원 사회의 민낯이다. 기업이 외국으로 떠나면 국내 대학을 졸업한 인재가 취업할 자리가 줄어드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젊은이들이 공무원 시험에 몰리도록 만든 공공 일자리 늘리기 정책은 바람직하지 않다.

국가와 기업이 이공계 출신이 우대를 받도록 처우를 개선하고 우수한 기술력을 가진 벤처기업이 성공하도록 지원책도 강구해야 한다. 이공계로 인재가 많이 유입돼야 지금의 제조업 경쟁력이 미래에도 유지될 수 있다. 이공계가 기피 학과가 되는 건 국가의 미래를 위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기초 과학 전공자를 우대하고 명장이나 기술사처럼 국가에서 인정하는 과학자라는 명예도 주어 국민이 존경하는 과학자를 만들어 어린이들이 꿈을 꾸게 해야 한다.

예전에는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장래희망을 질문하면 “과학자, 대통령, 교사, 판검사, 의사” 등 과학자가 꼭 들어갔다, 요즘은 “유튜버, 아이돌, 공무원, 의사”라고 대답하는 아이들이 대부분이다. 이런 현상은 아이들에게 꿈을 심어주지 못한 어른과 사회의 책임이다. 다양한 분야에서 일인자가 되면 성공한 사람으로 인식되던 사회가 어느덧 특정한 직업만이 성공한 삶으로 인식하게 되면서 아이들의 꿈마저 앗아가 버렸다.

AI 즉 인공지능 시대가 도래한 후 세상을 대비하는 진로선택도 중요하다. 지금 유망하다는 의사, 약사, 변호사 등의 직종이 인공지능이 대체하기 가장 좋은 학문이라는 평가는 쉽게 흘려버릴 이야기는 아니다. 미래 사회는 지금처럼 획일적이지 않을 건 분명하다. 인공지능을 가진 로봇이 대체하게 되는 일자리가 많아지며, 지금의 수능 시험이나 학교 공부로는 미래에 맞는 인재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부모가 먼저 아이들이 다양한 꿈을 좇아 살아갈 수 있도록 열린 사고로 키우는 게 중요하다. 학교 공부를 잘하는 아이보다 영재의 가장 큰 특징인 창의성을 기르도록 양육해야 한다. 공부가 인생을 좌우하는 시대는 결코 오래가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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