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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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미사일이 연일 한반도의 상공을 가르고 있다. 극초음속 미사일에 이어 반항공 미사일 등 그동안 북한이 심혈을 기울여 개발한 미사일들이 마치 자랑이라도 하듯 평화로운 하늘에 포물선을 그으며 날아다니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UN총회장에서 제안한 종전선언이 연일 미사일 공격에 상처투성이가 되고 있다. 지난달 29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직접 ‘10월 초 남북 통신연락선 복원’을 매개로 대화 의지를 내비치자마자 신형 지대공 미사일을 쏘아 올리며 무력시위를 재개한 것이다. 대화를 제의하면서 거듭된 도발을 남측이 정당한 군사훈련으로 인정하는지 떠보려는, 새로운 ‘쌍끌이 전략’이다. 남북관계에서 확실한 주도권을 잡은 뒤 북미협상에 활용하겠다는 북한의 의도가 뚜렷해지고 있다. 워싱턴의 인내도, 서울의 애걸에도 끄떡없이 평양의 평화압살행위는 앞으로도 당분간 계속될 것 같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1일 “국방과학원이 9월 30일 새로 개발한 반항공(反航空, 지대공) 미사일의 종합적 전투 성능 등을 확인하기 위해 시험 발사를 진행했다”고 보도했다. 지난달 11, 12일 신형 장거리 순항미사일을 시작으로 열차기동 미사일(15일), 극초음속 미사일(28일) 발사에 이어 9월에만 네 차례 무력 도발을 감행한 셈이다. 북한은 그사이 문 대통령의 종전선언 제의에 “좋은 제안”이라고 맞장구쳤고, 김 위원장이 우리 정부가 요구한 통신연락선 복원에 호응하면서 대화 분위기도 한껏 끌어올렸다. ‘화해’ 따로 ‘도발’ 따로, 외교 따로, 행동 따로 한국과 미국을 희롱이라도 하듯 평양의 도발행위는 자유분방하다.

적지 않은 전문가들은 북한의 달라진 전략이 빈손 합의로 끝난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의 ‘학습효과’라고 진단한다. 북한은 하노이 회담 전까지 한반도 정세를 화해와 협력의 분위기로 이끌고 가려는 듯 2018년 1월 김 위원장이 남북대화 의사를 표명한 후 그해 내내 군사 도발에 나서지 않았다. 그러나 2019년 하노이 북미회담이 ‘노딜’로 끝나자 분풀이를 하듯, 같은 해 5~10월 무려 12번이나 미사일을 시험 발사했다. 적대시 정책 철회란 ‘목표’는 북미협상이란 ‘수단’과 맞닿아 있다. 철옹성 같은 조 바이든 미 행정부의 대북 원칙론 탓에 직접 대화가 어려워지자 한미를 분리 대응하는 식으로 협상의 틈을 벌리려는 셈법이다.

한국정부에 대해서는 종전선언과 통신선 복원, 정상회담이라는 유화책과 동시에 도발을 일삼으면서 ‘실천’을 압박하고 있다. 북한은 김 위원장의 확약에도 이날 남북 통신선 접촉에 응하지 않았다. 미사일 도발에 대해 현 정부가 ‘이중 잣대’를 포기하는지 반응을 주시하겠다는 경고의 표현이다. 반면 미국에는 줄곧 대결적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미국이 더 교활해졌다”고 한 김 위원장의 시정연설에 이어 중국 국경절(1일)에 맞춰 “적대 세력들의 반(反)중국 대결 책동을 물리치겠다”며 중국을 우군 삼아 미국에 잔뜩 날을 세웠다. 결국 북한의 속셈은 중국의 외교적 지지를 이끌어 내 당분간 미국과 줄다리기를 계속하겠다는 것이다. 중국의 경우 미국과의 대결전에 북한을 앞세워 잽은 북한이 맞고 큰 펀치는 피해간다는 전략을 구상하고 있는데 다행히 평양이 여기에 보조를 잘 맞춰주니 마냥 흡족할 뿐이다. 우리 정부는 여러 함의가 깔린 북한의 갈지자 행보에 여전히 신중한 태도다. 다만 도발보다 대화 의지에 좀 더 무게를 두는 기류다. 문 대통령은 제73주년 국군의 날 기념사에서 미사일 도발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통일부 역시 “남북통신선 복원 등을 통해 한반도 정세가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원론적 입장만 되풀이했다. 대신 정부 당국자들은 북미협상에서 한국의 ‘역할론’을 부쩍 강조하고 있다. 심지어 외교부 장관은 미국에 대해 북한을 좀 유연하게 다뤄줄 것을 제안할 정도다. 그런데 미국이 과연 북한에 대해 유연해질까.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은 아직 이성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혹여 대선을 위한 북한의 ‘신북풍’을 기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향후 5개월간 북한의 행보, 그리고 현 정부의 대북정책이 대선에서 승부를 결정지어 줄 것이라고 믿는 이들이 있다면 일찌감치 포기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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