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전 국립경주박물관장)은 구석기 이래 300만년 동안 이뤄진 조형예술품의 문양을 독자 개발한 ‘채색분석법’으로 해독한 세계 최초의 학자다. 고구려 옛 무덤 벽화를 해독하기 시작해 지금은 세계의 문화를 새롭게 밝혀나가고 있다. 남다른 관찰력과 통찰력을 통해 풀어내는 독창적인 조형언어의 세계를 천지일보가 단독 연재한다.

사진 1. 옷걸이장, 국립민속박물관 소장(높이 1m 70㎝)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1.8.23
사진 1. 옷걸이장, 국립민속박물관 소장(높이 1m 70㎝)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1.8.23

 

화조도, 영생 기원 ‘만물생성도’

영기창, 양각과 투각으로 화려해

중요한 영기문은 모두 투각으로

목기란 용어는 총괄적 용어다. 나무로 만든 모든 것들 가운데 목가구만을 몇 점 다루고 있다. 고려청자는 목기와 통할뿐 아니라 금속기와 통한다. 무릇 그릇 ‘기(器)’라는 말은 도자기, 목기, 금속기 등에 붙여지며 모두가 서로 통한다. 이 글에서 다루는 조선 옷걸이장은 그 표면 장식이 영기창 안에 양각과 투각으로 화려하다.

학계에서 쓰는 아무 의미 없는 안상(眼象)이란 용어를 버리고 영기창(靈氣窓)이란 필자가 만든 용어를 쓸 것이다. 즉 영기문으로 이루어진 창으로 우주로 통하는 열린 창으로 그 창안에 존재하는 조형들이므로 반드시 보주와 관련이 있다. 보주란 말을 흔히 쓰고 있지만 보주는 보배로운 보석이 아니고 우주의 기운을 압축하고 있으므로 차차 그 개념이 정립되어 갈 것이다.

즉 우주에는 보주가 가득하다는 생각을 지니고 있어서 화엄경에서 우보(雨寶)라고 표현하고있다. 즉 빗방울처럼 보주가 우주에 가득 차 있다는 말이다. 그런 보주의 개념은 도가 사상(道家思想)에서 형성된 개념이며 불교가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여서 함께 쓰고 있다. 이 보주에 대한 올바른 개념 정립이 서 있지 않으면 도자기와 목기의 본질이 전혀 풀리지 않는다.

그런데 아마도 조선 목기를 한번도 눈여겨본 적이 없는 분이 대부분일 것이다. 도끼로 패서 불쏘시개로 삼거나 모두 서양 가구로 대체되었기 때문이다. 무자비한 전통문화 말살을 우리 민족 스스로가 근대 서양 문화가 물밀듯이 몰려오면서 자행해왔다. 이 연재는 사라진 전통문화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되살리는 작업이다. 오히려 서양 사람들이 이런 목기를 보고 우리 민족의 우수함을 알아 가장 먼저 미국에서 출판되었으므로 스스로 부끄러워해야 할 것이다. 실로 슬픈 자화상이다.

이제 옷걸이장을 한점 다룰 것이다(사진 1). 그런데 목가구에 대한 설명이 매우 부실하여 인용할 것도 없다. 그러면 위에서부터 모두 26개의 갖가지 모양의 영기창 안에 어떤 조형이 표현되었는지 살펴보자. 모든 채색분석을 원래 그림과 함께 나열해야 하나 너무 많아 몇 점 선정하여 나열한다.


 

도 1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1.8.23
도 1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1.8.23


우선 상층부터 살펴보자. 윗부분에 4개의 긴 장방형 영기창 안에 각각 문양이 양각되어 있다. 모두 현실에서 볼 수 없는 조형들이다. 석류모양이 있으나 어느 특정한 식물을 가리키지 않고 있으며, 여백에는 보주들이 빼꼭히 채워져 있다(도 1). 양쪽에는 긴 영기창이 두 개씩 있는데 양쪽이 비슷하거나 똑같다.


 

도 2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1.8.23
도 2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1.8.23


그중 만병도를 다루어 보자(도 2). 만병(滿甁), 가득 찬 병이란 뜻으로 병 안에 우주의 기운이 가득 찼다는 뜻인데 학계에서는 그저 꽃병이라 불러 상징을 완전히 지워버린다. 만병 안에서는 그러므로 갖가지 영기문이 생겨난다. 여기에서는 연꽃 모양이 나오고 새가 한 마리 있어서 압축된 <화조도(花鳥圖)>를 나타내고 있다. 화조도란 단지 꽃과 새가 아니라 <만물생성도>라고 완벽히 풀어낸 것은 <민화>(다빈치 2018년)라는 저서를 낸 다음에 깨닫게 된 것이다. 꽃이 피면 새나 벌이 날아들어 열매를 맺게 되는데 그 열매는 이듬해 다시 싹터서 꽃피고 열매를 맺어서 지구상에 생명이 영원히 이어지도록 하는 의미에서 <만물생성도>라고 부르게 되었다.


 

도 3-1과 고 3-2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1.8.23
도 3-1과 고 3-2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1.8.23

그다음 옷걸이장 상층의 여닫이 두 문짝에 투각한 크고 가장 중요한 문양이다. 모두 투각되어 있는데 용의 영기화생을 표현하고 있으나 표현 방법이 다르다(도 3-1, 도 3-2). 향해서 왼쪽 것은 ‘구름 속의 용’이 아니라 만물생성의 근원인 제1영기싹을 두르르 말린 ‘영기문에서 용이 화생하는 모습’이다. 고정된 장면이 아니라 큰 사건이 일어나는 순간적인 광경을 극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홀연히 나타나는 용의 모습이다. 

그 다른 한쪽은 거의 비슷하나 다른 점은 용기문을 제1영기싹 영기문을 두 개 이은 것이나 세 개 이은 것으로 표현한 점이 다르다. 가장 중요하고 큰 투각 문양이 용의 영기화생을 표현했다는 것은 이 목가구의 가치를 드높이는 것이다.


 

도 4-1과 도 4-2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1.8.23
도 4-1과 도 4-2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1.8.23
도 5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1.8.23
도 5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1.8.23


그다음 상층 밑 부분에 좌우로 길게 영기창을 열고, 부귀다남(富貴多男), 수복강녕(壽福康寧) 등 각각 넉 자씩 한자를 문양화하여 표현하고 주변 여백에 보주를 빽빽이 채웠다. 즉 <富貴多男, 壽福康寧의 영기화생>이다(도 4-1, 4-2). 즉 세속적인 관념이 아니라 정신적 관념으로 역시 조형예술품에는 현실적인 것은 표현되지 않으므로 여러분은 그 정신적인 그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기 바란다. 상층 맨 밑의 소나무 그림은 역시 보주를 표현한 것이다(도 5). 솔잎 모양을 빌려서 보주를 표현하였다.

 

도 6-1과 도 6-2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1.8.23
도 6-1과 도 6-2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1.8.23


그다음 하층을 살펴보자. 그 중심문양인 이른바 모란도 그림이 투각되어 있다(도 6-1, 6-2). 민화를 목가구에서 만날 줄 몰랐다. <민화>를 펴내면서 민화 연구자들이 지지리도 못 그린 민화라 했던 그림이 한국 회화사 2000년의 금자탑임을 증명하였다. 그러므로 민화를 모르면 목가구에 표현된 조형들도 알아보지 못한다.

암반은 만물생성의 근원이라 바위에서 잎들이 나오는 것이다. 잎으로 그렸지만 영기문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라 설명하려면 이 글에서는 불가능하다. 그만큼 민화는 누구나 쉽게 보지만 세계에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그림이다. 그리고 바위에서 가장 강력한 영기꽃인 모란 모양의 꽃이 생겨난다. 자세히 보면 이런 모란은 없다. 그래서 민화 전공자들도 모란으로 잘못 알고 있다. 하층 두 여닫이문 두 짝에 투각한 이 <만물생성도>를 보면 이 옷걸이장의 높은 품격을 알 수 있다.


 

도 7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1.8.23
도 7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1.8.23


그 옆의 긴 영기창에는 영수인 사슴 모양이 그리고 위에는 선학이 있는데 그 모두가 제1영기싹 영기문에서 화생하는 장면이다(도 7). 하층의 맨 밑 부분의 영기창에서는 놀라운 영기문이 투각되어 있다. 중요한 영기문은 모두 투각이다. 영기창 총 26개 가운데 14개가 투각이며, 상하층의 여닫이의 투각 영기문을 감안하면 전체적으로 투각에 큰 의지를 두었음을 알 수 있다.


 

도 8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1.8.23
도 8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1.8.23


맨 밑의 중앙 영기창의 투각 문양은 보주의 본질을 보여 준다(도 8). 옷걸이장의 맨 밑의 세 개의 영기창 가운데 중앙 것만 투각하였으며, 보주에서 제2영기싹이 나오고 가운데서 다시 보주가 나오고 영기문이 발산하고 있다. 한 마디로 우리나라의 모든 그림이나 조각들을 맨 밑에서부터 연속적으로 화생하는 장엄한 장면인데 이 목가구도 마찬가지 맥을 잇고 있으니 놀랍지 않은가.

목가구의 보주화생이다. 보주화생은 영기화생의 한 종류다. 다음 회에 이어 곧 고려청자로 다시 넘어갈 터인데 고려청자 모두가 보주화생이다. 그때 자세히 설명한다. 목기를 이해했다면 고려청자 더욱 분명히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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