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 2021.8.13
조선시대 서울의 차 문화. (제공: 서울역사편찬원) ⓒ천지일보 2021.8.13

[천지일보=양효선 기자] 서울역사편찬원(원장 이상배)은 서울문화마당 제19권 ‘조선시대 서울의 차 문화’를 발간했다고 13일 밝혔다. 

서울역사편찬원은 2009년부터 서울의 다양한 문화의 역사적 흐름을 알고자 하는 시민들의 관심을 반영해 ‘서울문화마당’ 시리즈를 발간하고 있다. 

조선시대 서울의 차 문화는 음료나 약, 취미이거나 의례이기도 한 차 문화를 서울 속에서 어떻게 생산, 소비되었는지에 대해서 쉽고 재미있게 담았다. 

집필은 한국차문화회의 부회장인 정은희 교수가 집필을 진행했다. 

이번 시리즈는 ▲조선시대 이전의 서울의 차 문화 ▲조선왕실과 관청의 차 문화 ▲조선시대 한양의 명소와 차 문화 ▲조선시대 한양의 인물과 차 문화 등 총 4장으로 구성됐다. 

차 문화가 싹트기 시작한 삼국시대 그리고 고려시대 모두 서울에서는 차 문화를 향유했다고 편찬원은 설명했다. 

도교와 불교가 중국으로부터 전래됨에 따라 이들과 불가분의 관계인 차 문화 역시 함께 우리나라에 들어왔다. 풍납토성과 몽촌토성 등에서 출토된 돌절구, 완(盌), 호(壺) 등은 한성백제시대의 차 문화를 짐작하게 해준다. 

고려시대 찻집인 다점(茶店)이 있을 정도로 고려인들에게 차는 일상의 음료로 자리잡았다. 고려시대 남경(南京)이었던 서울 역시 국왕들의 순행의 대상이었으며 많은 사찰들이 자리함에 따라 차 문화를 즐긴 고려인들에게 예외의 장소가 아니었다. 

조선시대 차 문화를 선도한 지역은 서울로, 그 중심에는 왕실과 관청이 있었다. 왕실이 주관하는 연회, 주다례·별다례 등의 제례, 중국 사신단의 접견의례 그리고 왕실 가족들의 사적인 모임들에서 차는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조선왕실의 중요한 음료문화였다. 

또한 사헌부, 여성과 신분이라는 굴레로 탄생한 특수직 차모(茶母), 조선 최대의 양잠업에 이르기까지 조선시대 관청에서도 차는 곳곳에 위치해 있었다. 

조선시대 한양 명소에는 차가 빠지지 않았다. 한강과 한양을 둘러싸고 있는 내사산은 조선시대 지배층들이 즐겨 찾은 명승지였으며 그들의 휴식처로 풍류를 즐기거나 심신을 수양한 누정에는 차가 함께했다. 허준(1539~1615)은 약용차의 효능을 강조하며 사람들에게 차를 권했다. 18세기 신분과 연령의 벽을 넘어 탑골에 모였던 백탑파 역시 차 한잔과 함께 학문과 문화를 교류했다. 

책 구입은 온라인을 통해서만 구매할 수 있다. 시리즈는 서울 소재 공공도서관과 서울역사편찬원 홈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전자책으로도 열람이 가능하다. 

이상배 서울역사편찬원장은 “이 책은 전통시대 서울 차 문화의 역사와 문화를 공간적·시각적으로 정리한 책으로 내년에는 개항기부터 현대까지 차 문화가 어떻게 변화하고 다양화되어 가는지에 대한 후속 글이 나올 예정”이라고 밝혔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