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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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문제가 심각한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특히 청년 일자리 문제는 우리의 미래를 뿌리째 흔들 수 있다는 점에서 위기 중의 위기다. 이뿐이 아니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코로나19 확산세는 최근 더 위협적이다. 차기 유력한 대선 주자라면 이처럼 민생과 직결돼 있고 게다가 상황이 더 다급한 문제부터 고민하고 그 해법을 모색하는 것이 상식이다. 아니 그것이 바람직한 모습이다.

최근 대선후보 지지율 1, 2위를 다투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뜬금없이 ‘탈원전 비난’ 행보에 나서 눈길을 끌었다. 물론 원전 등 에너지 정책의 중요성을 간과할 수는 없다. 하지만 다른 시급한 민생현안을 뒤로 한 채 원전 정책부터 챙기는 것은 뭔가 석연치 않아 보인다. 윤 전 총장이 지난 7일 대선 출마 선언 후 첫 방문지로 대전을 찾아 카이스트의 원자력공학 전공자들과 한 호프집에서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비난하는 목소리를 냈다. 이 과정에서 방역수칙 위반으로 경찰이 출동하는 등의 소동이 벌어지긴 했지만, 원자력 전공자들을 만나 탈원전 정책을 비난하는 것은 구태의연한 정략적 행보에 다름 아니다. 차라리 환경단체나 원전폐지를 주장하는 사람들과 만났다면 최소한의 진정성이라도 보여줬을 것이다.

윤석열 전 총장의 탈원전 비난 행보는 지난 5일에도 있었다. 갑자기 서울대를 찾아 주한규 원자핵공학과 교수를 만나더니 역시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강하게 비난했다. 심지어 임기가 보장된 검찰총장직을 버리고, 게다가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 시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대선에 뛰어든 것은 ‘원전 수사’ 때문이라며 자신의 대선 출마를 문재인 정부 탓으로 돌렸다. ‘월성 원전’ 사건을 수사할 때 문재인 정부가 감찰과 징계 절차를 밟았으며 수사 관련 압력도 들어왔다는 것이 그 이유다. 이 대목은 논란 중이니 일단 판단은 유보해 두자. 하지만 윤 전 총장 주장이 맞다 하더라도 문재인 정부의 수사 압력과 현직 검찰총장의 대선 출마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만약 윤 전 총장의 주장이 옳다면 검찰총장직은 앞으로도 대선 출마의 지름길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윤석열 전 총장이 자신의 민생행보 첫 걸음을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 비난에 집중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세 가지로 압축된다. 첫째는 자신의 대선행보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털어 내려는 의도가 다분하다. 문재인 정부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대선 판에 뛰어들었다는 여론의 공감대를 얻기 위한 것이라는 뜻이다. 이렇게 되면 자신의 대선 출마는 무리한 ‘권력 탐욕’이 아니라, 정의를 구현하기 위한 ‘결단’으로 비춰질 수도 있다는 계산일 것이다. 둘째는 문재인 정부의 약한 고리를 때리면서 이른바 ‘반문연대’의 선봉에 서고 있다는 메시지를 주려는 의도로 보인다. 윤 전 총장의 정치행보 핵심은 ‘반문’에 집중돼 있다. 정책, 메시지, 지지층 그리고 정치행보도 모든 것이 ‘반문 프레임’으로 연결돼 있다. 윤 전 총장의 낯선 탈원전 정책 비난도 예외가 아니다. 셋째는 최재형 전 감사원장의 급부상을 의식한 선제 공세의 성격이 강하다. 만약 윤 전 총장에 대한 기대가 꺾이고 최 전 감사원장에게 새로운 관심이 모아진다면 그땐 걷잡을 수 없다고 본 것이다. 따라서 최 전 감사원장의 강점인 원전 감사에 대한 강렬한 이미지를 조기에 불식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 셈이다. 이를테면 ‘물타기’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윤 전 총장이 서둘러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 비난에 나선 하나의 배경으로 보인다.

그러나 준비도 없이 급한 불을 끄려다가 더 큰 화를 자초한 불상사가 터졌다. 윤석열 전 총장이 이번에는 일본 후쿠시마 원전의 오염수 방류 문제를 들고 나왔다. 윤 전 총장은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를 태평양에 방류키로 한 데 대해 한국정부가 공식 항의하는 문제와 관련해 깜짝 놀랄 만한 얘기를 했다. 윤 전 총장은 “사실 과거엔 크게 문제를 안 삼았다. 그때그때 어떤 정치적인 차원에서 볼 문제가 아니다”라며 일본 편을 들었다. 극우 성향을 가진 일본의 아베, 스가 정부의 공식 입장과 유사하다. 단순히 일본 우익 편을 든다는 불쾌함만은 아니다. 우선 팩트부터 틀렸다. 일본 정부가 엄청난 양의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를 바다에 흘려보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윤 전 총장 말대로 과거엔 크게 문제를 안 삼은 것이 아니라, 과거엔 그런 사례가 없었다. 그리고 한국정부가 일본에 공식 항의하는 것은 그 자체가 ‘정치적인 것’이다. 정치적으로 볼 문제가 아니라면 한국정부는 침묵을 지켜야 한다는 것인가. 게다가 우리는 학계와 시민사회단체 심지어 어민들까지 나서서 일본정부에 항의했다. 정치적인 문제로만 몰고 갈 일이 아니라는 뜻이다.

당장 민주당 대선 주자인 이재명 경기지사가 발끈했다. 이 지사는 7일 페이스북에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면서 “일본 극우세력의 주장, 이를 대변하는 일본정부의 논리와 다르지 않다”며 윤석열 전 총장의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발언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러면서 이 지사는 “일본 정부에는 비판적인 말 한마디 안 하면서 우리 국민 대다수의 주장을 정치적인 발언으로 몰아가서는 안 될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이 지사의 지적이 옳다. 이낙연 전 대표도 “윤석열씨가 일본 자민당 총재직에 도전한 것인지, 대한민국 대통령 후보에 도전한 것인지 구분하기 어렵다”며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윤 전 총장의 어설픈, 아니 낯선 탈원전 비난 언행은 ‘준비 안 된’ 대선 주자의 좌충우돌 그 현장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하다. 게다가 그 낯선 언행에 내포된 함의마저 저급하고 구태의연하다. 윤 전 총장이 첫 민생행보 때 대전에서 썼던 자신의 마스크에 인쇄된 ‘탄소중심’이라는 문구는 단순한 인쇄 실수가 아니라 준비 안 된 ‘정치 쇼’의 상징처럼 다가온다. ‘탄소중심’이라. 낯선 언행과 조급함의 슬픔보다는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지, 왜 문제가 되는지 조차도 모르는 듯한 그 무지와 무치가 오히려 아프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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