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 논설실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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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6일 해군 2함대사령부 천자봉함·노적봉함에서 정부 주관 ‘제5회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이 열렸다. ‘서해수호의 날’은 제2연평해전, 천안함 피격, 연평도 포격 도발로 희생된 서해수호 55용사를 기리기 위해 2016년 박근혜정부가 제정한 법정기념일이다. 문재인 정권에 들어와 이 행사가 네 번이나 있었지만 2018년과 2019년에는 이낙연 국무총리가 참석했고, 문 대통령이 직접 참석한 것은 지난해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다. 올해 기념식에서는 특수부대 고공 강하 등 여러 행사가 있었던바 야당에서는 서울시장 등 보궐선거를 앞두고 이벤트성 행사라는 정치적 평가를 내놓았으니 문재인 정부가 지금까지 천안함 피격 등에 관해 불분명한 제스처를 취해온 것과 무관하지가 않다.

지난 2010년 3월 26일 백령도 서남방 2.5km 해상에서 경계 임무를 수행하던 천안함이 북한 잠수정의 기습 어뢰 공격을 받아 침몰되면서 46명의 젊은 용사들이 희생됐고, 구조과정에서 한주호 준위가 순직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천안함 침몰 사건 발생 후 2개월 동안 조사 결과를 토대로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10년 5월 24일 북한 선박의 우리영해 및 베타적경제수역(EEZ) 항해를 불허하는 등 5.24조치를 취하는 한편 그 후에도 북한의 만행을 규탄하면서 천안함 행사를 해왔던 것이다. 하지만 문재인정부에서는 천안함 사건 10년만인 지난해 5월 20, ‘실효성 상당 부분이 상실됐다’고 판단해 5.24조치를 사실상 해제했고, 민주당은 천안함 관련 말 한 마디 하지 않고 있다가 이번에는 오랜 침묵을 깨고 “불굴의 영웅을 기억한다”는 논평을 냈다.

‘제5회 서해수호의 날’을 맞아 박영선 서울시장 후보도 한 마디 했으니 “조국을 위해 바친 장병들의 희생은 우리 국민의 가슴 속에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는 말이다. 대한민국을 지키다 북한의 도발에 희생당했으니 영원히 기억돼야 함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럼에도 앞뒤 행동에서 박 후보자의 말에 진정심이 없어 보인다는 비난이 따르고 있다. 박 후보의 천안함 관련 과거의 발언이 문제가 됐기 때문인데, 그가 국회의원 시절 여러 차례 행한 천안함 관련 발언에는 천안함 폭침 실체와는 다른 의미의 수차례 의문이 담겨져 있다.

2010년 천안함 격침 사건이 발생한 직후 박영선 의원은 민주당 최고위원회에서 “우리는 군사정권과 보수언론이 이런 사건이 나면 하나의 적의 소행으로 단정하고 공포 분위기를 확산했던 경험이 있다”라는 발언을 했다. 또 2010년 5월 24일 개최된 국회 천안함침몰사건진상조사특별위원회에서 김태영 국방장관에게 질문하면서 “천안함 침몰이 한미연합 독수리훈련이나 수리 중인 미 해군의 핵 잠수함과 관련이 있는 것 아니냐”고 질문해 김 국방장관과 논쟁을 벌인 일도 있었다. 박 후보가 발언한 이면에는 당시 야당인 민주당이 그랬듯 북한 소행이 아니라는 전제가 깔려 있는 대목으로 읽혀질 수 있어 유족들과 많은 국민들의 분노를 들끓게 했다.

서해수호의 날에 문 대통령이 참석하고 박영선 서울시장 후보가 희생자들을 추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나라를 지키다 희생한 장병들에 대한 추념에 여야가 따로 없을진대, 여기에 정치적 평가가 따르는 것은 분명 4.7재보선 시국 탓이다. 이번 서울시장, 부산시장 보선에 여야가 승리를 위해 물불 가리지 않고 있는바 민주당이든 국민의힘이든 선거에서 이기는 쪽이 차기 대선에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때문이고, 또한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말까지 안정적인 국정 운영일지, 레임덕 현상이 조기 가속화될 것인지 가늠자가 될 숙명의 한판이기 때문이다.

‘미니 대선’ 성격의 중차대한 선거를 앞둔 시기에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도가 떨어지고 있다. 여론조사기관인 리얼미터가 29일 발표한 지지율을 보면 34.4%로 하락했고, 26일 한국갤럽이 발표한 지지율 34%는 문 대통령 취임 이후 최저치 기록을 보인 것이다.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율은 문재인 정권에 대한 국민이 보는 거울이라 할 수 있다. 개혁을 내세우면서도 정의․공정하지 못한 부패, 정부의 경제․부동산 정책 실패에 이어 터져 나온 LH사태에 대해 국민들은 문재인 정권의 무능과 표리부동을 질타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럼에도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문 대통령의 국정지지율 하락현상과 관련해 국민의 마음을 청와대가 엄중히 여기고 있다고 하면서 “지지율에 일희일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지율은 시간 흐름에 따라 변동된다. 대통령의 지지율은 취임 초반에는 높고 임기말 낮아지는 ‘전고후저(前高後底)’ 현상은 일반적이다. 그래서 문 대통령의 임기가 1년 남짓 남는 지금은 떨어지고 또 마지막 해는 더 떨어질 것은 통상적 흐름에서도 예측할 수 있다. 그렇지만 청와대 관계자가 대통령의 국정지지율에 ‘일희일비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폐가 따른다. 지지율 최저치 경신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터, 겸손 없이 방관하는 투의 변명은 국민공분을 더 쌓아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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