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 논설실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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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희망을 가지고 살아간다. 희망 없이 인생을 살아간다고 한번 생각해보라. 얼마나 삶이 퍅퍅하고 황량하겠는가. 크고 작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자신의 일상생활에서 어떤 일이 이루어지길 바라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그래서 각자 희망을 이루려고 계획을 세우고 열심히 노력해 쟁취하는 경우가 있고, 또는 처음부터 실현 불가능한 것을 기대해 끝내 이루지 못한다 하더라도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것이므로 크게 실망하지 않는 경우도 따르기도 한다.

그렇지만 정권이 공언한 국민과의 약속은 다르다. 선거 공약은 실정에 따라 바뀌는 건 국민이 이해하겠지만 정권 출범시 대통령의 취임사에서 밝힌 대국민 약속은 반드시 이뤄져야 하건만 끝내 국민에게 희망 고문을 준 경우는 역대 정권이나 현 정부에서도 비일비재하다. 예로 든다면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08년 2월 25일 대한민국 제17대 대통령 취임식장에서 역사적․시대적 사명에 신명을 바칠 것을 굳게 다짐했던바, 국민을 섬겨 나라를 편안하게 하겠다. 경제를 발전시키고 사회를 통합하겠다는 약속은 임기 끝까지 지켜내지 못한 부도수표였다.

그 뒤를 이어 2013년 2월 25일 취임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취임사 내용도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박 전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새 정부는 경제부흥과 국민행복, 그리고 문화융성을 통해 새로운 희망의 시대를 열어갈 것이다”고 천명했다. 그러면서 그의 부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이뤄낸 빛나는 성과 ‘한강의 기적’을 인용해 임기 내 “제2의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 나가겠다”고 장담했지만 기적은커녕 자신의 임기를 제대로 지켜내지 못한 대통령이 되고 말았다.

역대 정부의 비운, 특히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실정을 딛고 국민의 ‘촛불정부’라며 의기양양하게 출범한 문재인 정부에서는 사정이 다룰 줄 알았다. 이전 정부에서 한 일들이 국민들에게 크게 실망을 안겨주었으니 문 정권에서 국민 기대가 국정 운영에 그대로 이어져 국민희망가가 삼천리 방방곡곡에 울려 퍼질 줄 알았다. 하지만 임기 1년이 남은 이제까지 그런 적이 없다. 오히려 ‘전 정부보다 더 부패했다’는 민성(民聲)이 나오고 있는 현실이니 그것은 취임사에서 밝혔던 국민 기대에 부응한 희망 실현이 아니라 국민에게 ‘희망 고문’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5월 10일 대한민국 19대 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 국민에게 희망을 준만큼 국민기대 또한 컸던 것은 사실이다. 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지금 제 가슴은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열정으로 뜨겁습니다. 그리고 지금 제 머리는 통합과 공존의 새로운 세상을 열어갈 청사진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라고 벅찬 감정을 표현하면서, 평등과 공정과 정의가 가득한 나라를 만들겠다고 다짐하고 국민들에게 굳게 약속했던 것이다.

비장한 마음의 격앙된 목소리 “문재인과 더불어민주당 정부에서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는 말에 국민들은 ‘국민 마음을 속속들이 아는 국민의 정부가 마침내 출범했구나’ 안도하면서 큰 박수를 쳤고, 환호했으며 그 약속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하면서 나날을 설렘 속에 보내기도 했다. 명색이 국민 모두에게 기대와 희망을 주는 ‘민심을 계승한 촛불정부’였으니 국민들이 문 대통령의 취임사 핵심 내용인 ‘평등, 공정과 정의’가 우리사회에서 이뤄지길 기대하며 기다렸던 그 세월이 자그마치 4년이나 됐다.

한 마디로 ‘희망 고문’이다. 본디 ‘희망 고문’의 뜻은 ‘안 될 것을 알면서도 될 것 같다는 희망을 주어서 상대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말은 19세기 프랑스의 소설가이자 시인인 빌리에 드 릴라당(Auguste de Villiers de L'Isle-Adam)의 ‘희망이라는 이름의 고문’이라는 단편소설에서 연유됐다. 고리대금업자인 유대인 랍비는 감옥에서 탈출구를 발견하고 신이 자신의 기도를 들어줬음에 감사기도를 드린 후 바깥세상을 향해 도망치지만 결국 마지막 철조망 앞에서 다시 잡히고 만다. 탈출의 희망을 안고 열심히 달렸지만 사실 랍비에게 그 희망은 자유를 기만한 마지막 고문이었던 것이다.

‘평등’과 ‘공정’, ‘정의’를 상징으로 출범한 문재인 정권 1년을 남겨두고 LH 악재가 터졌다. 이 사건은 ‘이전 정부보다 더 부패하다’는 평을 듣는 현실에서 자칫하면 문 정권의 내리막길 임기가 험로로 치달을 수 있는 위기다. 오죽했으면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문 정권을 향해 부패가 완전히 판을 치는 ‘부패완판’을 말했을까. 우리국민은 3년 10개월 전, 문 대통령이 취임식에서 띄워 올린 희망가에 잔뜩 기대를 품었지만 그것이 국민들에게 끝내 헛꿈이요, ‘희망고문’으로 들통 난 지금에도 문재인 정권에서는 저 홀로 독야청청하다. 그들만의 독단으로 가득 채우며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희망가(?)를 계속 쏘아올리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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