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사범학교 사건 예심종결서(1943년 2월 8일). (제공: 독립기념관) ⓒ천지일보 2021.1.30
대구사범학교 사건 예심종결서(1943년 2월 8일). (제공: 독립기념관) ⓒ천지일보 2021.1.30

다혁당 조직 항일 비밀결사 운동

문맹퇴치운동 민족의식 일깨워

[천지일보 천안=박주환 기자] 독립기념관(관장 한시준)이 국가보훈처, 광복회와 공동으로 대구사범학교 항일 비밀결사 ‘다혁당(茶革黨)’ 조직 80주년을 맞아 다혁당을 이끌었던 독립운동가 권쾌복·배학보·유흥수 선생을 2021년 2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고 공훈을 기리는 전시회를 개최한다.

전시회는 2월 한달간 독립기념관 야외 특별기획전시장(제5·6관 통로)에서 대구사범학교 사건 예심종결서 등 8점을 전시한다.

권쾌복(權快福, 1921년~2009년, 경북 칠곡), 배학보(裵鶴甫, 1920년~1992년, 경북 성주), 유흥수(柳興洙, 1921년~2016년, 충남 서산)는 1937년 대구사범학교 심상과(尋常科) 9기생으로 입학했다. 1939년 7월 민족차별에 저항해 일어난 왜관사건으로 선배들이 대거 퇴학당하자 세 선생은 비밀결사 백의단(白衣團)을 결성하고 정세를 논의하는 모임을 가졌다.

비록 백의단 활동은 오래 지속하지 못했으나, 후일 학생들이 비밀결사 조직을 통해 항일운동을 전개하는 밑거름이 됐다. 이후 대구사범학교 8기생을 주축으로 1940년 문예부(文藝部), 1941년 연구회(硏究會) 등 비밀결사가 조직됐다. 하지만 8기생들의 졸업으로 유지가 어려워지자 세 선생은 동기생들을 규합해 새로운 비밀결사로 ‘다혁당’을 조직했다.

대구사범학교 학생들이 발간한 문예지 ‘반딧불’(1940년 1월). (제공: 독립기념관) ⓒ천지일보 2021.1.30
대구사범학교 학생들이 발간한 문예지 ‘반딧불’(1940년 1월). (제공: 독립기념관) ⓒ천지일보 2021.1.30

다혁당은 1941년 2월 15일, 대구사범학교 학생 17명이 유흥수의 하숙집에 모여 결성한 항일 비밀결사 조직이다. 다혁당은 당수-부당수 아래 총무·문예·예술·운동 분야의 4개 부서를 두었고 학생들의 실력 양성을 통해 독립 이후 새로운 국가 건설에 힘을 보탰다. 백의단 활동을 이끌었던 권쾌복은 당수를 맡았고 배학보는 부당수를, 유흥수는 문예창작부 책임을 맡아 다혁당 지도부로서 활동을 이끌었다.

다혁당은 한글로 된 역사·문화서적을 읽는 토론회를 비롯해 독립을 준비하며 군사훈련을 실시했다. 또한 야학(夜學)을 통한 문맹퇴치운동을 전개했으며 후배들을 지도해 민족의식을 일깨우는데도 앞장섰다.

그러나 결성 5개월여 만에 일제 경찰에 발각돼 세 선생을 비롯한 관련자들이 일제히 검거되면서 다혁당의 활동은 중단됐다. 일제 말 대구사범학교 학생들은 다혁당을 통해 조직적인 항일 비밀결사 운동을 전개했고 그 중심에는 세 선생의 활약이 있었다. 정부는 선생들의 공훈을 기리어 1963년 권쾌복·유흥수 선생에게 독립장, 1991년 배학보 선생에게 애국장을 수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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