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환 유라시아전략연구소장/전 주러시아 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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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히말라야 국경에서 무력충돌이 자주 일어나면서 인도-중국 간 대립의 골이 깊어지는 가운데 러시아는 양국과의 관계에서 묘한 행보를 함으로써 3국 관계가 복잡해지고 있다. 3국 간 상호관계를 살펴보고 한국 외교에 대해 어떤 시사점이 있을까 생각해 보고자 한다.

인도와 중국은 3488㎞에 달하는 긴 구간에 대해 여전히 국경을 획정하지 못하고 소위 ‘실질통제선’을 사이에 두고 대치하고 있다. 지난 6월 15일 갈완 계곡에서의 충돌에서는 인도 측에 20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했으며, 8월에는 서로 상대방이 라다크 지방에서 ‘실질통제선’을 넘으려 했다고 주장했다. 이미 양국은 1962년에 국경분쟁으로 전쟁을 겪었는데 이 때문에 1970년대 이래 인도-파키스탄 대립에서 중국은 파키스탄 편을 들어 왔고 이것이 더욱 양국 관계를 악화시키고 있다. 한편 소련은 1962년 전쟁 당시 같은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을 지지하지 않고 인도 쪽으로 기운 행동을 보였으며, 1960년대 중소분쟁은 이러한 소련의 태도가 주요인의 하나였다. 인도-중국 관계에서 또 하나 갈등요인이 있는데 중국 공산정권의 폭압통치에 항거하는 티벳인들의 1959년 무장봉기 때 달라이 라마가 인도로 피신해 망명정부를 수립한 것이다.

중국-소련 사이에는 1969년 만주-연해주 국경 우수리 강의 다만스키 섬에서 무력충돌이 발생했다. 당시 소련은 핵 공격까지 검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양국 관계는 1990년 소련의 해체 이후 회복됐다. 양국은 냉전 종식 이후 유일 초강국이 된 미국의 행동에 대처한다는 데 이해를 같이하고 관계를 강화해 왔다. 특히 중국의 시진핑은 2013년 취임하자마자 모스크바를 방문, 푸틴 대통령을 만나는 등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으며, 미국의 압력에 대처하기 위한 우군으로서 러시아에 대한 구애는 지속되고 있다. 최근에 양국은 합동군사훈련도 실시해 서방에서는 중국과 러시아가 거의 동맹 수준으로 결속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도 있다.

소련은 사회주의권의 종주권에 도전하는 중국을 매우 거칠게 대했으나 소련을 계승한 러시아는 양국 관계 개선을 모색해 2006년에 40여년 계속된, 4천 킬로미터가 넘는 중국과의 국경 획정 협상을 타결 지었고 양측 합의에 따라 러시아는 2008년에 국내 반대여론에도 불구하고 아무르 강에 있는 일부 섬을 중국 측에 넘겨주었다. 이를 통해 러시아는 중국과의 국경 획정 문제가 일단락되기를 기대했다. 그런데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7.2자 보도에 따르면 주중 러시아 대사관이 트위터에 올린 블라디보스토크 건설 160주년 기념행사 영상을 보고 중국인들이 격노했다고 한다. 중국 사람들의 19세기 후반 러시아에 ‘빼앗긴’ 땅에 대한 생각이 여전한 것 같다. 러시아와 중국은 미국의 일방주의에 대처한다는 점에서는 이해관계가 일치하나 양국 관계 전반을 보면 동상이몽(同床異夢)이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해 말 국민과의 대화에서 ‘러시아는 중국과 군사동맹을 맺고 있지 않으며 계획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러시아는 올해 초 중국에 대해 미국의 사드와 유사한 S-400을 판매하기로 했으나 현재까지 표면적으로는 코로나 사태를 이유로 거래가 미루어지고 있다. 반면 오랫동안 러시아(소련)산 무기를 수입해온 인도와는 S-400의 판매를 서두르기로 합의했다고 한다. 러시아는 기나긴 국경을 맞대고 있는 중국이 언제든 위협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인도와 중국 사이에 힘의 균형을 유지하려고 하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이 ‘중국몽’과 ‘일대일로’ 기치 아래 현재와 같이 해양으로 뻗어 나가기 위해서는 북방 국경이 평온해야 하는데 빼앗긴 땅을 찾는다고 러시아를 자극하기보다는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려고 할 것이다. 한편 미국은 자신에 도전하는 중국에 대해 손을 보겠다는 태세인데 미-중 갈등이 무력 충돌로까지 전개된다면 과연 러시아가 어떤 입장을 취할지 궁금해진다. 최근의 미국·인도 전략적 파트너십 포럼에서 미국은 사실상 중국을 견제하는 4자협의체(미국, 인도, 일본, 호주)를 만들 뜻을 밝혔다. 심지어 인도가 러시아에 대해 이런 움직임에 동참을 권유하였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현재로서는 중국에게 우군이 없어 보인다. 격랑이 일고 있는 인도·태평양 국제정치에서 한국은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국익에 일치하는지 아무쪼록 현명하게 판단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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