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환 유라시아전략연구소장/전 주러시아 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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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통령 선거가 채 두 달도 남지 않았다. 공화당 후보 트럼프 대통령과 민주당 후보 바이든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가운데 지난 8월 하순 여론조사에서 바이든이 트럼프를 5~7%p 앞서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자 국내 언론에서는 한국 내 ‘바이든 인맥’을 거론하는 보도가 잇따랐다. 그런데 ‘인맥’ 개념에 깔린 사고가 상식적인 것인지, 그리고 바람직한 것인지 질문을 던지고 싶다.

우선 한국 입장에서 초강대국이자 동맹국인 미국의 차기 대통령이 누가 되느냐는 당연히 중대한 관심사이다. 특히 두 후보가 방위비 분담금 및 주한 미군 주둔 등 한미 동맹 현안 그리고 대북 정책에서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어 더욱 그러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차기 미 행정부와의 원활한 소통을 위한 통로로서 인맥을 이야기할 수는 있겠다.

국어사전에 따르면 인맥이란 ‘학문, 출신, 경향, 친소(親疎) 등의 관계로 한 갈래로 얽힌 인간관계’를 말한다. 언론에서 ‘바이든 인맥’으로 지목한 인사들을 보면 바이든을 공적인 자리에서 한두 번 만난 적이 있거나 또는 바이든과 직접 연결되기보다는 과거 민주당 정부 인사들과 업무상 접촉이 있었다는 정도이다. 이 정도를 갖고 ‘바이든 인맥’이라고 할 수 있을까? 만일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어떤 배경에서든 바이든과 상당한 친분이 있고 언제든지 직접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한국의 입장에서 그를 바이든 ‘인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스라엘처럼 미국 내 강력한 유대인 이익단체를 갖고 있고 그 단체가 미국 사회에 광범위한 네트워크를 갖고 있는 경우 차기 대통령 후보 ‘인맥’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미국 대통령 또는 한국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인맥’ ‘지도자간 친분 쌓기’ 등을 강조하는 것은 매우 실망스런 언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맥 내지 인간관계 무용론을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라 인맥이라는 것이 동아시아 문화권에서와 같은 정도로 서구 문화권에서도 작용할 수 있느냐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한국이나 중국에서는 인간관계가 큰 요소로 작용하는 것이 사실이나 미국에서도 그럴까? 공직에 있는 미국인이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어떤 한국인이 부탁한다고 해서 한국이 원하는 방향으로 결정을 내릴 것으로 기대할 수 있을까?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그 미국 관리는 미국 정부의 조사 대상이 될 것이다. 아마도 대세에 영향을 주지 않는 범위 안에서 조그만 문제에 있어 한국 지인의 부탁을 들어줄지는 모르겠다. 더욱이 미국 대통령이 한국 대통령과의 친분 또는 한국 인맥의 영향을 받아 정책적으로 호의를 베푼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어느 나라이든 국익은 오랜 세월에 걸쳐 정립된 것으로서 다른 나라에 대한 외교 정책 결정에 있어 상수(常數)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가 인간관계 또는 친소 관계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경향이 있다고 해서 남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참으로 순진하고 유치한 발상이다.

한편 언론 보도에 따르면 지난 8월부터 외교부가 11월 미국 대선과 관련해 태스크포스를 가동하고 있다고 하는데, 태스크포스란 기본적으로 어떤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졌을 때 이에 대처하기 위한 한시적 조직이다. 예를 들어 아덴만 해역에서 우리 선박이 소말리아 해적의 공격을 받아 한국인 선원들이 납치됐을 때 설치해 가동하는 그런 것이다. 미국 대선 자체 또는 바이든이 민주당 후보로 나선 것이 그런 경우에 해당될까? 미국 대선 후보들의 성향과 공약이 대한국 정책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을 분석하고 대비하는 것은 외교부가 평소 수행해야 할 업무라고 본다. 4년 전 뜻밖의 트럼프 당선에 놀랐던 한국 외교부가 이번에는 어떤 결과에 대해서도 충분히 대비하겠다는 뜻이겠는데 굳이 ‘태스크포스’ 용어를 사용해서 선거가 석 달 앞으로 다가와서야 본격 준비하는 것 같은 인상을 주는 것이 안타깝다.

국익이 심각하게 부딪히는 국제 관계에 있어서 어설프게 인맥을 찾고자 하거나 그에 매달리기보다는 평소에 지속적으로 미국의 정책결정 계층과 여론 주도층을 상대로 한국의 입장을 잘 알려 납득시키고 지지케 하는 것이 정답이다. 한국에는 자칭 미국통 또는 미국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이 넘쳐 나는데 그들이 그러한 노력의 첨병이 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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