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겸 동국대 교수

헌법 제32조 제3항을 보면 근로조건의 기준을 인간존엄성의 보장에 맞추면서 법률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그런데 근로조건에 대해서는 노사 간에 단체협약을 통해 자율적으로 정하도록 헌법이 권리를 보장하고 있어서 국가가 간섭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노사가 근로조건을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받는다고 해도, 국가가 근로조건에 대하여 전혀 개입할 수 없다는 것은 아니다. 국가는 정의로운 경제질서와 공정한 노사관계 및 합리적인 노동생활을 실현해야 할 의무가 있어서 자율적인 노사협약에 대해서도 헌법의 테두리에서 근로조건의 정당한 기준을 위한 입법을 할 수 있다.

근로권이나 근로3권은 사회적 기본권으로 그 보장은 법률을 통하여 구체화된다. 헌법이 근로조건의 기준에 대하여 법률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것은 입법자에게 법률을 통하여 사회국가원리를 실현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물론 헌법은 근로3권을 보장함으로써 근로조건을 정함에 있어서는 일차적으로 노사 간 자율에 맡기고 있다. 그렇지만 헌법이 요구하는 것은 단순히 근로조건의 기준만 법률로 정하는 것이 아니고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기 위하여 법률로 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헌법이 요구하고 있는 것을 노사가 자율적 협약을 통해 해결하지 못하는 경우 국가는 근로자의 보호와 다른 중대한 공익을 보호하기 위해 노사의 협약에 개입할 수밖에 없다. 물론 국가는 사회국가원리에 따라 보충적으로 개입해 근로조건의 최저 기준을 정해야 한다. 여기서 입법자는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기 위해 어떠한 수준의 근로조건을 규정해야 하는지에 대해 광범위한 입법형성권을 갖는다.

헌법재판소는 근로조건에 관한 노사단체의 자율적인 단체협약과 관련해, 헌법이 제33조 제1항에서 노사단체에게 근로조건에 관한 자율적인 결정을 위임한 것은 국가가 노동영역에서 근로조건에 관하여 독자적인 규율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래서 헌법재판소는 헌법이 제32조 제1항에서 국가에게 사회적·경제적 방법을 통해서 근로자에게 적정임금을 보장하도록 노력할 의무 및 최저임금제의 실시의무를 부과하고, 제3항에서는 국가에게 인간의 존엄성에 부합하는 근로조건의 기준의 법정의무를 부과하고 있으며, 제119조 제2항에서는 국가가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해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함으로써 노사의 자율적인 단체협약원칙에 수정을 가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했다.

헌법은 근로조건에 관한 규율을 전적으로 노사단체에 의한 집단적 자치에만 맡겨두어 국가가 헌법적 과제를 이행하기 어려운 경우에 근로조건을 필요한 범위 내에서 규율할 수 있는 권한을 입법자에게 부여하고 있다. 물론 입법자는 헌법 제33조 제3항으로부터 구체적인 조치를 취하거나 정책의 구체적 내용을 도출할 수 없고, 그런 권한도 찾을 수 없다. 근로자 역시 이 헌법 조항을 통해 입법자에게 구체적인 특정의 근로정책 실현이나 특정한 기준의 근로조건을 확정하도록 요구할 수도 없다. 입법자는 근로기준법을 제정함으로써 헌법이 요구하는 바를 충족시키고 있어서, 근로기준법을 위반하는 합의는 무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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