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 좋아해 치마 입고 학교가라 하면 울면서 거절”

초·중·고에 없었던 배드민턴부 창단해 선수생활 지속

16살, 최연소 배드민턴 국가대표로 발탁 “온몸 전율”

2006년 배드민턴선수권대회 세계랭킹 7위 꺾고 ‘우승’

발등신경손상, 선천성 무릎 슬개골 이분증에 은퇴 결심

‘먹는 백옥주사’ 아이디어, 사업 5개월만에 10억원 매출

“인생 굴곡 많지만 포기 안 해… 좋은 제품 위해 노력”

[천지일보=김빛이나 기자] “최근 새롭게 시작한 유튜브 방송을 통해 국민들에게 배드민턴에 대한 모든 것을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고요. 또 하나는 사업가로서 제가 만든 제품의 브랜드 가치를 한층 더 높이고 싶어요.”

장수영 전(前) 배드민턴 국가대표는 지난 15일 천지TV 보이는 라디오 ‘운동극장’의 여덟 번째 주인공이자 첫 여성게스트로 출연해 자신이 가진 꿈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그는 2006년 베트남 세트라잇 배드민턴선수권대회 여자 단식 1위, 2006년 몽고 세트라잇 배드민턴선수권대회 여자 단식 1위, 2009·2011년 전국봄철종별배드민턴리그전 여자대학부 단체 1위 등 우수한 성적을 거뒀다.

장 대표는 2003년 제13회 세계배드민턴선수권대회 최연소 국가대표를 시작으로 2006년 세계청소년배드민턴선수권대회 국가대표 등의 선수생활을 했고, 현재는 사업가로서 정원에스와이의 대표를 맡고 있다.

장 대표는 어떻게 최연소 국가대표가 될 수 있었을까? 그는 어려서부터 활동을 좋아하는 아이였다고 했다. 장 대표는 “어머니가 예쁜 치마를 사와서 입고 학교에 가라고 하시면 울면서 안 입겠다고 했다”며 “치마를 입고선 뛰어놀기 불편해 바지를 선호했다”고 말했다.

어머니가 배드민턴 선수이자 동호회 회원이었기에 그는 어머니를 따라 배드민턴을 치게 됐다. 당시 초등학교 3학년이었는데 언니·오빠들을 상대로 연전연승이었다.

장 대표의 인생길은 늘 새로운 개척의 길이었다. 배드민턴 선수가 되기로 마음을 먹은 그와 장 대표를 지원하기로 결심한 그의 어머니는 학교에 건의, 배드민턴부를 창단하게 했다. 운동부가 무엇인지 잘 몰랐던 아이들이 호기심에 신청해 100여명이 모였었다고 장 대표는 회상했다.

하지만 100명이 모두 운동선수로 활동하기엔 무리가 있었기에 곧 테스트가 진행됐고 “왜 체력장을 하냐”고 불만을 토로하며 하나둘 신청을 취소, 결국 7명만 남게 됐다.

장 대표는 “팀은 창단됐지만 학교엔 체육관도 없어서 야외에서만 배드민턴을 치게 됐다”며 “결국 체육관이 있는 학교로 7명이 함께 전학을 가게 됐고 그 학교도 배드민턴부가 없어 재창단을 했다”고 말했다.

장 대표가 함께한 선수단의 활약은 대단했다. 그와 선수단은 초등학교 6학년 때 전국소년체전에서 우승을 했다. 당시 서울시가 18년 만에 전국체전에서 우승을 했었기에 그와 선수단은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게 됐다. 그와 선수단은 중학교에 가서도, 심지어 고등학교에 입학해서도 선수단을 창단해가며 선수생활을 이어갔다.

장수영 전(前) 배드민턴 국가대표가 지난 15일 천지TV 보이는 라디오 ‘운동극장’의 여덟 번째 주인공이자 첫 여성게스트로 출연해 자신이 가진 꿈에 대해 말하고 있다. (출처: 천지TV) ⓒ천지일보
장 전(前) 배드민턴 국가대표가 지난 15일 천지TV 보이는 라디오 ‘운동극장’의 여덟 번째 주인공이자 첫 여성게스트로 출연해 자신이 가진 꿈에 대해 말하고 있다. (출처: 천지TV) ⓒ천지일보

장 대표가 국가대표로 발탁된 것은 그로부터 3년 뒤인 그의 나이 16살 때였다. 그는 대회에 나가서 단식·복식 3가지 종목을 소화하며 3관왕에 올랐다. 당시 중국인 코치가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는데 장 대표의 기량에서 가능성을 발견했고 그를 국가대표로 발탁했다.

장 대표는 “당시 주니어 담당 코치님이셨던 안재창 현(現) 감독님이 축하한다며 국가대표가 됐다고 설명해주셨다”면서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났다는 생각에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고 회상했다.

그는 잡지에서만 봤던 선배들과 선수촌에서 생활한다는 게 꿈만 같았다. 장 대표는 그 다음날 오전 6시부터 훈련이 있었는데 못 일어날까봐 걱정하면서 결국 한숨도 자지 못하고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고 했다.

국가대표 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는 2006년 베트남 세트라잇 배드민턴선수권대회 여자 단식이었다. 결승 때 태국선수와 붙었는데 이변이 일어났다. 아무도 장 대표가 우승하리라고 생각지 않았는데 그런 그가 세계랭킹 7위인 그 태국선수를 이기고 당당히 1위에 오른 것이다. 그는 그때의 그 희열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한창 운동선수로서 활동할 그 시점에 장 대표에게 시련이 찾아왔다. 주치의에게 주사를 잘못 맞아서 발등 신경 손상이 발생한 것이다. 신경을 다치다보니 다친 상처가 쓸리는 듯한 고통이 계속됐고, 발은 만질 수도 없는 심각한 상태가 됐다.

게다가 그는 선천성 무릎 슬개골 이분증을 앓고 있어서 무릎에서 오는 통증도 심각했다. 결국 선수로서는 제일 중요한 시기에 시합을 나가지 못하게 됐다. 일상생활조차 힘들었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쇠구슬을 발가락으로 집어서 옮기는 등 피나는 재활을 통해 다시 선수생활에 복귀했다.

하지만 복귀도 잠시 그에겐 또 다시 무릎의 고통과 함께 발의 통증 재발이라는 시련이 찾아왔다. 그러던 어느 날 병원에서 진료결과를 기다리다가 은퇴를 결심하게 됐다.

그는 “계단을 오를 수 없을 정도의 극심한 통증이 있었다”면서 “왜 안 되는 무릎을 갖고 이렇게까지 버텨왔을까? 너무나 슬펐다”고 회상했다. 이어 “이제는 스스로의 아픔을 인정해야겠다는 생각이 은퇴를 마음먹게 됐다”고 설명했다.

장수영 전(前) 배드민턴 국가대표가 지난 15일 천지TV 보이는 라디오 ‘운동극장’의 여덟 번째 주인공이자 첫 여성게스트로 출연해 자신이 가진 꿈에 대해 말하고 있다. (출처: 천지TV) ⓒ천지일보
장 전(前) 배드민턴 국가대표가 지난 15일 천지TV 보이는 라디오 ‘운동극장’의 여덟 번째 주인공이자 첫 여성게스트로 출연해 자신이 가진 꿈에 대해 말하고 있다. (출처: 천지TV) ⓒ천지일보

장 대표가 사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어머니를 따라 중국을 방문하면서부터다. 그는 “운동을 그만두고 3~4개월 동안은 멘탈붕괴였다”며 “무엇을 할까 고민하면서 대학원도 다니고 어머니를 따라 중국으로 박람회 같은 곳을 갔고 거기서 화장품을 담당하며 참여했는데 완판했다”고 말했다.

이어 “심지어 테스트용으로 가져갔던 제품까지 모두 구입해갔다”며 “중국시장이 참 특이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나중에는 내가 나의 제품을 만들어서 팔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본격적으로 사업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한 그는 국내 전시회·박람회 등을 찾아다녔다. 창업 아카데미도 다니며 수강했고, 여러 가지 제품 구상을 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독감에 걸려서 병원에 누워있었는데 병원 관계자가 마음에 들면 맞으러 오라며 백옥주사를 추천해줬다.

그는 “백옥주사를 주사가 아니라 먹는 방식으로 만들면 어떨까하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며 “바로 실행에 들어가 제품을 만들었고 1년 만에 중국박람회에 물건을 들고 참여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장 대표는 그 박람회에서 완판했다. 심지어 한 중국인은 장 대표의 물건을 모두 사겠다며 결국 3000만원어치를 구입해 갔다고 했다. 그 일 후 한국을 방문하는 중국인들이 한국 약국에서 장 대표의 제품을 찾게 되면서 한국 약국들에서 문의와 주문이 들어오게 됐다.

그는 단 5개월 만에 1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하지만 운동에서처럼 굴곡진 인생은 그를 가만히 놔두지 않았다. 그 짧은 5개월 만에 그의 제품을 카피한 제품이 나왔다. 심지어 그의 제품에 3분의 1 가격으로 출시됐다.

고난과 역경의 순간이 계속됐으나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지금도 그는 좋은 제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장 대표는 자신이 가진 꿈에 대해 “최근 새롭게 시작한 유튜브 방송을 통해 국민들에게 배드민턴에 대한 모든 것을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라며 “사업가로서는 제가 만든 제품의 브랜드 가치를 한층 더 높이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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