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겸 동국대 교수 

 

대의제 민주주의는 국민의 대표에게 국정을 위임해 운영하게 하는 간접민주주의의 가장 대표적인 방식이다. 모든 국민이 국정운영에 참여한다면 이상적이지만, 국가는 최소한 수백만명 이상의 국민으로 이루어진 공동체이기 때문에 모든 국민이 직접 국정을 운영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 시민계급이 등장하면서 인류 역사에서 차츰 신분으로 인한 차별이 외형적으로 사라지기 시작했다.

자유인이라는 시민이 등장하면서 누군가에 예속돼 자유를 갖지 못한다는 것은 인간의 존재를 부정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됐다. 인간의 기본적 권리에 대한 인식은 이미 오래 전부터 싹을 키웠지만, 시민계급이 등장하면서 본격적으로 진행됐다. 시민사회의 구성은 근대국가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했고, 20세기에 들어오면서 급속하게 발전했다. 이제 신분이 아닌 보통사람의 시대가 열린 것이었다.

대의제 민주주의의 발전은 의회민주주의의 발전과 같이하면서 국민에 의해 선출되는 대표에 관한 관심을 확산시켰다. 즉 대의제 민주주의의 실현과 그 발전에는 대표선출의 방법인 선거제도가 핵심적인 역할을 한 것이다. 선거제도는 선거의 제 원칙의 확립을 통해 발전했고, 신분제도의 철폐로 인한 보통선거가 정착되면서 확립됐다. 즉 일정한 나이가 되면 선거권을 행사할 수 있는 보통선거가 선거제도의 정착과 확산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근대 선거제도는 1789년 프랑스 혁명 이후 본격적으로 시작됐고, 19세기 미국과 유럽의 많은 나라에 퍼졌다. 당시 선거제도를 도입한 국가들은 일정한 재산을 갖고 있는 백인 성인 남성에게만 투표권을 부여했다. 특히 미국은 납세능력이 있는 21세 이상의 백인 남성에게만 투표권을 주다가 1870년에 와서야 흑인 남성에게도 투표권을 주었다. 그 후 미국은 1920년에서야 수정헌법 제19조를 통해 여성에게도 투표권을 부여했다.

영국은 19세기 초 지주층에게만 참정권을 주었다가, 1832년에 도시 선거구의 유권자들을 포함한 다수의 중산층에게 참정권을 부여했다. 영국은 1928년 국민대표법을 시행하면서 21세 이상의 남성과 30세 이상의 여성에게 처음으로 선거권을 부여했다. 이때부터 영국은 보통선거원칙이 도입됐고, 여성의 선거권이 확대되면서 직업 전선에서 활동하던 많은 여성으로 인해 노동당이 자유당을 대체하면서 보수당과 의회 의석을 양분하게 됐다.

세계적으로 보면 뉴질랜드가 1893년 처음으로 여성에게 참정권을 부여했고, 1906년 핀란드가 뒤를 이었다. 그 후 1944년 프랑스, 1945년 이탈리아가 여성들의 투표권을 인정했다. 우리나라는 1948년 헌법을 제정하면서 보통선거제도를 규정했고, 이란은 1963년, 스위스는 1971년 보통선거제를 도입했으며 2015년에는 사우디가 여성에게 투표권을 부여함으로써 보통선거제도를 도입했다.

보통선거는 제한선거에 반대되는 것으로 성별 인종 신앙 교육 재력 등을 요건으로 하지 않고, 일정한 연령에 도달한 모든 국민에게 선거권을 인정하는 선거원칙을 말한다. 헌법재판소는 국회의원선거에서 과도한 공탁금제도나 지나치게 많은 추천자서명을 입후보요건으로 요구하는 것은 보통선거원칙에 위배된다고 했다. 즉 공탁금이 지나치게 고액이면 선거가 재력을 요건으로 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와서 선거참여의 기회를 박탈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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