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강 김덕수

삼보(三寶) 중 불보(佛寶) 즉, 부처님에 대해서 알아볼 차례다.

삼신일불(三身一佛)은 법신불(法身佛, 진리를 몸으로 삼은 부처님), 보신불(報身佛, 수행하여 진리를 깨달아 성불한 부처님), 화신불(化身佛. 진리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여러 가지 몸을 나투신 부처님) 곧 한 부처님 안에 세 가지 몸의 부처님이 갖춰져 있다는 사상이다.

우리가 부처님에 대한 예의로 삼배(三拜)를 드리는 건 이 ‘삼신일불’ 사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번 지면에서는 부처님께 올리는 절을 비롯해 ‘절’에 대해서 고찰해보고자 한다.

절이라고 하면 가람(伽藍)․정사(精舍)를 가리키는 절(寺)이 있고, 절(節)이 있다. 그래서 ‘절(寺)은 절(節)하는 곳이다’라고도 한다. 절(節)에는 ‘절도에 맞게 한다, 알맞게 한다’는 뜻이 포함돼 있는데, 주역 육십사괘(六十四卦) 중에 태하감상(兌下坎上) 곧 절(節)괘가 있다. 여기서 ‘절’자는 마디 절 자인데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고 딱 맞아 있다는 뜻이다. 즉 절도(節度)에 맞는다는 의미로 범절(凡節) 체절(禮節) 충절(忠節) 명절(名節) 모두 절도에서 나온 말이다.

우리가 하는 절에는 일배, 이배, 삼배가 있고, 불가에는 7배, 21배, 108배, 1000배, 3000배가 있다. 유불선이 그 절에 차이가 있으나 따지고 보면 이치는 둘이 아니라 하나임을 알 수 있다. 여기서는 불가의 절을 중심으로 살피기로 한다.

원래 절은 어디서 나왔을까? 매우 어렵고 심오한 질문 같지만 의외로 우리의 삶 속에서 늘 보여주고 있는데, 주의 깊게 관찰하지 않아서 간과했다고 할 수 있다.

사람이 태어나기 전 태중에서 10개월을 채우면 평상시 취했던 자세를 최대한 작고 둥글게 만들어 반 바퀴를 돌아 산도(産道)로 나오게 된다. 이때 산모나 출생하는 아기 둘 모두에게 위험할 수 있다. 그래서 아기는 자기를 태중에서 10개월을 키워 처음 세상에 내보내주는 어머니에게 최고의 예의를 갖춰 어머니를 배려하고 존중해주는 자세를 취하게 된다.

산모는 일생 중 가장 깊은 호흡에 돌입하며 또한 가장 큰 힘을 쏟아 붓는다. 그리고 태아는 가장 산도를 쉽게 빠져 나올 수 있는 자세를 자연스럽게 취하게 된다.

이 위험한 순간에 태아가 가장 자연스럽게 취하는 자세가 바로 무릎을 꿇고 왼발이 오른발 용천혈에 올라가도록 겹치고 두 손을 모아 두 무릎 앞에 대고 상체를 굽혀 머리를 땅에 조아리는 자세이다. 유가나 불가, 선가의 절은 약간의 차이가 있으나 근본은 태아가 산모의 태중에서 산도를 빠져나오는 자세에서 모두 출발한다. 불가의 절은 천기가 하강하고 지기가 상승하는 원리가 손의 자세에 가미되었다.

절을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절도에 맞을까? 절의 출발이 이치에서 나왔기에 절하는 법도 이치에 맞게 해야 한다. 모든 이에게 절을 바르게 가르쳐 보면 금방 몸이 바르게 펴지고 온 몸에 기혈이 소통하며 차분해짐을 볼 수 있다. 한마디로 올바른 절 수행은 뒤틀어진 육신을 바르게 잡아주며 숨을 제대로 쉬도록 한다는 것이다.

요즘의 군생들을 보면 거의가 호흡이 가빠지고 얕아져서 병에 걸린다고 할 수 있다. 숨만 제대로 쉬게 해도 질병에서 자유로워지며 삶에 여유가 생겨 마음이 느긋해진다.

결국 마음의 여유는 호흡이 얼마나 유장해지느냐의 문제이다. 한 호흡이 거칠고 가쁘면 그만큼 심장이 빠르게 뛰어 피가 탁해진다. 물질에 팔려 정신을 놓아 버리니 불에 기름을 끼얹는 격이 되는 것이다.

절에도 몸을 구부리고 몸을 펴는 굴신의 동작이 호흡에 맞추어져야 한다. 이 절 한 배에 이 세상 모든 이를 감동시키리라는 마음을 담으면 한 배만 절을 해도 기운이 숙연해져 온 몸에 땀이 삐적삐적 나는 경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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