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일 서울특별시청소년수련시설협회 사무국장

외국을 여행해 본 사람들은 잘 알겠지만 적지 않은 나라의 저녁 풍경은 적막한 느낌이 들 정도로 고요하고 청소년은 물론 성인들에게까지 주류의 판매가 금지되는 곳도 많다. 상대적으로 우리나라는 밤거리가 휘황찬란하다 못해 밤새 어디를 가도 술을 마실 수 있는 참으로 행복한(?) 나라인데, 이는 상대적으로 외국에 비해 밤거리 치안이 잘 돼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화려함 이면에 미래의 주역인 청소년들이 두려움과 공포를 느끼고 있다면 다시 생각해 봐야 할 일이다.

최근 서울특별시청소년수련시설협회가 서울 거주 청소년 1038명을 대상으로 서울을 아름답게 만들기 위한 희망사항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 중 17.5%인 182명이 귀갓길이 무섭다고 가로등 설치를 확대해 달라고 응답했다. 청소년들이 얼마나 밤거리에 많이 노출돼 있었기에 이 같은 응답이 나왔을까. 한 연구소의 조사 결과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한국사회조사연구소가 2007년 11월 조사한 청소년 생활환경 결과에 따르면 청소년의 54.5%(일반고 63%)가 평일 밤 10시 이후에 집에 들어가고 청소년의 73.1%(일반고 77.8%)가 밤 10시 넘어 끝나는 학원에 다니며 12시가 넘어서 끝난다고 한 사람도 44.1%(일반고 47.8%), 심지어 밤 1시가 넘어서 끝난다고 답한 사람도 6.3%(일반고 6.95)나 된다.

가로등을 늘려달라고 답한 청소년들의 대답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는 단순히 안전한 귀갓길 확보 문제뿐이 아니라 전반적인 청소년 보호 인프라 구축 차원에서 접근해야 함을 시사하는 것이고 학원의 심야 학습 제한과도 그 맥을 같이 한다. 여성가족부가 최근 학원 교습 시간을 밤 10시로 제한하는 시도교육청 조례제정 추진, 청소년들의 수면권을 보장하는 제도를 마련하겠다고 밝힌 바 있으며 서울시가 추진하고 있는 청소년 수면권 보장을 위한 10시 학원 규제 점검 강화와 학파라치 제도 도입이 공식적으로 거론되고 있음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6.2지방선거 결과 서울과 경기를 비롯 6개 지역에서 진보성향의 교육감이 당선됨으로서 이러한 청소년들에 대한 적극적인 권리와 인권확대 정책도 보수일변의 교육계에 새롭게 물결칠 것으로 예상된다. 청소년의 관점에서 교육과 사회 서비스의 시각이 전환되는 이 움직임을 통해 사회적 환경과 제도적 장치를 구비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책임져야 할 책무이자 청소년들을 위한 진정한 사랑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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