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치에 대하여

박홍

옥상 화단에 심은 구기자 열매가 발갛게 익었다
차를 끓여 먹으려고 따는데 참새들이 멀찍이 처마 끝에 몰려서 나를 지켜보고 있다
내가 방으로 들어오자 우르르 날아와서 미처 따지 못한 구기자와 손이 닿지 않은 곳의 구기자까지 따 먹는다 커서 통째 삼키지 못한 것들은 물만 쭉 빨아먹고 쭉정이만 남겨 놓았다

염치가 보여서
다음날부터 참새가 있을 땐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시평]

요즘 도시에서는 단독주택 보기가 그리 쉽지가 않다. 대부분의 주거환경이 아파트로 바뀌었거나, 아파트가 아니면 주상복합의 건물로 바뀌어, 마당이 없는 집에 사는 것이 오늘 주거의 모습이다. 그래서 옥상에 흙을 퍼다 놓고는, 이것저것 식물들을 심어 보기도 하고, 때로는 이 채소들을 심어 식용으로 쓰기도 한다.

옥상에 심어놓은 구기자 그 열매가 빨갛게 익었다. 구기자를 따서 차로 마시면 그 향이나, 그 맛이 그럴 듯하다. 그래서 차로 쓰기 위해 구기자를 따는데, 참새라는 놈들이 멀찍이 처마 끝에 모여서 바라다보고 있다. 사람이 방으로 들어가자, 우르르 날아와 참새들이 구기자를 따먹기 시작한다. 사람의 손이 닿지 않는 곳까지 찾아 먹는다.

사람에게는 그저 한가로이 마시는 차로 구기자가 쓰이지만, 작디작은 참새들에게는 하루를 살아갈 양식, 일용할 양식이다. 그러니 같은 구기자이지만, 그 용도가 엄청나게 다르다. 없어서는 안 될 양식으로서의 구기자이니, 참새에게는 더 없이 소중한 것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생각에 이르니 소중한 양식이 되는 구기자를 혼자 독점해서 차로 먹어치우는 자신이 참으로 염치가 없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에 이른다. 비록 작은 일이지만, 그 일에서 느끼게 되는 ‘염치’. 어쩌면 사람이 살아가면서 지녀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 중 하나가 아니겠는가.   

윤석산(尹錫山) 시인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