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복 전통식생활문화연구원

메밀가루와 밀가루를 섞어 반죽한 다음 칼로 싹둑싹둑 잘라 이것을 멸칫국물에 김치를 썰어 넣고 팔팔 끓는 국물에 넣어 익힌 칼국수를 ‘메밀칼싹두기’라 하고 경기도와 강원도에는 ‘뜨덕국’ 또는 ‘뜨더기’라는 수제비가 있다.

어쩌면 ‘뜨더기’는 ‘수제비’의 유래가 되고 ‘메밀칼싹두기’는 오늘날 ‘칼국수’의 유래가 된 것이라 할 것이다.

우리의 한문 문화권이었던 조선시대 고문헌인 안동 장씨(安東 張氏, 1598~1680)가 딸과 며느리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1607년에 저술한 최초의 한글 조리서 <규곤시의방(閨壼是議方)>에서 ‘절면(切麵)’이라는 이름으로 지금의 메밀칼국수가 등장한다. 이후 이용기(李用基, 1870~1933)가 1924년 지은<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朝鮮無雙新式料理製法)>이나 1934년 방신영(方信榮, 1890년∼1977)의 조카 이석만(李奭萬)이 펴낸 <간편조선요리제법(簡便朝鮮料理製法)>에 등장하나, 면을 만드는 방법만 동일하고 칼국수로 조리하는 방법은 현대와 상이하다.

현대의 칼국수는 모두 우려낸 국물에 면을 끓이나 두 요리책에선 면을 따로 끓이고 <간편조선요리제법>에서는 익힌 면을 찬물로 씻겨내기까지 한다. 현대와 같은 칼국수 요리법은 해방 후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나, 경남 일부 지역에서는 아직도 건진국수 형태의 면을 따로 끓이기도 하며 면을 같이 끓이는 방식을 ‘제물국수’라고 구별하여 부른다. 즉, 면을 따로 끓여 건지는 방식이 칼국수의 원형에 가깝다고 봐야 할 것이다.

‘칼국수’ 국물은 지역별로 꽤 다르다. 부산 경남 지역은 멸치 육수 칼국수, 전라도는 바지락과 해물을 사용하여 시원한 맛을 내는 칼국수와 팥칼국수, 경기도는 멸치 육수에 닭고기 등을 넣어 깊은맛을 내는 칼국수 등이 있다. 충청도 지역에서는 디포리와 사골 육수를 배합하는 것이 정석이다. 서울에서는 쇠고기 고명과 육수를 사용하며, 좀 더 고급스럽게는 사골 육수로 국물을 내기도 한다. 사골만으로 국물을 하면 싱겁지만, 재료를 더 넣고 향을 강하게 내면 가격이 상승하는 만큼 맛은 더 좋다. 강원도 영동에서는 고추장을 이용한 장칼국수를 영서에서는 된장을 이용한다.

강원도 정선을 비롯해 강릉, 평창 일부 지역에 가면 된장을 이용한 칼국수 중에 ‘가수기’라는 손칼국수가 있다.

이 손칼국수의 유래는 1960~1970년대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당시 식솔(食率)이 많은 가정에서 양식을 늘려 먹기 위한 수단으로 밀가루에 콩가루를 더하여 양을 늘렸다는 의미로 ‘더할 가(加)’에 ‘콩 숙(菽)’자를 써서 ‘가숙(加菽)’이라 했고, 이를 ‘가수기’ 또는 ‘가쉬기’라고 부르고 있다.

특히 매년 5월이면 보리밭을 매는 시기고, 이때 새참이나 한 끼 식사로 ‘가수기’를 자주 먹었었는데, ‘가수기’는 밀가루에 콩가루를 첨가하여 반죽을 하므로 일반 칼국수보다 약간 노란 빛을 띤다.

‘가수기’는 밀가루와 콩가루를 3대 1의 비율로 약간의 소금물로 반죽하여 오래 치댄 다음 비닐봉지에 넣어 냉장실에 일정 기간 보관해 두었다가 다시 여러 번 치대고, 안반에 올려놓고 홍두깨로 0.3㎝ 굵기의 국수 면발을 뽑아 손칼국수를 준비한 다음, 국물은 ‘육수+된장’으로 만든다. 육수는 멸치, 표고, 양파, 대파, 무, 마늘, 다시마를 이용해서 만들고, 준비된 육수에 콩가루와 된장을 풀어 된장국을 끓이듯 국물을 만든다.

국물이 팔팔 끓을 때, 손칼국수를 넣으면 아주 쫄깃쫄깃한 ‘가수기’를 만들어 먹을 수 있다. ‘가수기’는 일종의 제물국수 방식이다. 고명으로 호박 채 친 것을 올리기도 한다.

특히 ‘가수기’는 계절에 따라 들어가는 재료가 달라지는 특색이 있다. ‘가수기’에 얼갈이배추를 듬뿍 넣어 그 맛을 내기도 하고, 얼갈이배추가 나지 않는 겨울이 되면, 얼갈이배추 대신 소금에 염장한 강원도 갓김치를 송송 썰어 넣어 ‘가수기’를 만들어 먹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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