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80이 지배하는 美 정치계
최고령 의원 20명 모두 80대
역대 고령 대선 후보에 우려
네살 차인데… 바이든만 타격
NYT “외모·화법·행동 차이”

사진 출처: 뉴시스, 편집 천지일보 2024.02.18.
사진 출처: 뉴시스, 편집 천지일보 2024.02.18.

[천지일보=이솜 기자] “내 기억력은 괜찮습니다(My memory is fine).”

지난 8일(현지시간) 자신에게 기억력 문제가 있다는 특별검사의 지적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분노하며 한 발언이다.

미국 역사상 가장 긴 대선 캠페인 기간 가장 큰 이슈 중 하나는 ‘나이’다.

이는 무엇보다 2기 집권에 도전하는 81세 바이든 대통령의 큰 걸림돌이다. 그런데 고령 문제가 거의 불거지지 않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도 77세로 결코 젊지 않다.

그런가 하면 지난 대선에 이어 미국 유력 대통령 후보가 또 ‘백인, 고령, 남성’으로 굳어지면서 “미국에는 젊은 정치인들이 없나”는 뼈 있는 농담도 나온다.

◆염색하고 태닝한 트럼프… 바이든과 비교

외국에서도 우려의 시선으로 미국 대선 후보자들을 보고 있는 가운데 자국의 운명을 결정해야 하는 미국인들의 걱정은 날로 커지는 양상이다.

지난 11일(현지시간) ABC방송과 여론조사업체 입소스가 발표한 여론조사(9~10일) 결과 ‘바이든 대통령이 재선 임기를 수행하기에는 너무 나이가 많다’고 답한 미국인은 86%에 달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직무를 하기에 너무 나이가 많다고 답한 미국인은 62%로 20%p 적었다.

최근 미국 전국적으로 실시된 NBC 여론조사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자의 절반을 포함한 유권자의 4분의 3이 바이든 대통령의 정신적, 신체적 건강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여러 중범죄 혐의에 대해 우려하는 유권자 61%와 비교되는 수치라고 지난 6일 NBC는 전했다. 이 조사에서 트럼프가 연임에 필요한 정신적, 신체적 건강을 갖추고 있는지 우려한다는 응답은 48%에 그쳤다.

트럼프 전 대통령(사진)의 선거 유세 스타일이 그를 더 젊게 보이게 만들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출처: 뉴시스)
트럼프 전 대통령(사진)의 선거 유세 스타일이 그를 더 젊게 보이게 만들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출처: 뉴시스)

그렇다면 바이든 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 모두 75세가 넘었는데 왜 바이든 대통령에게만 고령 문제가 정치적 타격이 될까.

이와 관련 지난 11일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외모와 화법, 행동의 차이가 유권자들의 엇갈린 인식을 불렀다고 분석했다. 무엇보다 직관적으로 보이는 신체적 차이가 크다는 설명이다.

지난 4년간 바이든 대통령은 더 쉰 듯한 목소리를 내고 있으며 머리카락은 더 가늘어지고 하얗게 변했다. 또 더 조심스럽게 움직이며 종종 상체를 뻣뻣하게 유지하고 있어 연약한 인상을 더한다. 여기에 자전거에서 넘어지거나 모래주머니 따위에 걸려 넘어지는 등 대중의 눈에 띄는 작은 사고들도 있었다.

반면 트럼프 전 대통령은 눈에 띄는 방식으로 세월의 영향을 받는 것 같지 않다고 NYT는 전했다. 그는 머리카락을 염색하고 피부를 그을려 건강하게 보이게 만들었다.

또 트럼프 전 대통령은 키와 덩치가 크고 군중 앞에서 자신의 신체적 특징을 이용해 힘을 과시한다. 선거 유세 중 그는 오프닝 곡에 맞춰 춤을 추며 몇 분 동안 박수갈채를 받고, 한 시간 이상 지속되는 마초적인 발언과 폭언으로 가득 찬 연설을 이어가며 체력을 뽐낸다.

피벗 이미지 컨설팅의 남성 스타일리스트인 패트릭 켕거는 최근 타임지에 바이든 대통령의 흰머리가 트럼프보다 3살 이상 더 나이 들어 보이게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켕거는 유전적 요인으로 트럼프의 피부가 바이든보다 더 젊어 보인다고 덧붙였다.

리더십 전문가인 캐럴 킨제이 고먼은 NYT에 “중요한 것은 소통 방식에 대한 인식”이라며 “트럼프는 그런(이름을 잊거나 잘못 말하는) 실수를 저질러도 그냥 넘어가고, 대중도 ‘아, 그가 늙었구나’라고 말하지 않는다”며 “트럼프도 적어도 바이든만큼은 실수하지만, 허세를 부리기 때문에 노쇠한 게 아니라 열정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분석했다.

트럼프가 공개 석상에 자주 모습을 드러내는 반면 바이든은 대중을 회피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같은 대중의 인식과는 별개로 두 후보가 자신의 의료 정보를 제한적으로 공개했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비교하기는 쉽지 않다.

거의 1년 전 백악관은 바이든 대통령의 신체검사 후 그를 “건강하고 활기찬 80세 남성”이라고 묘사한 의사의 편지를 공개했다. 백악관은 이 의사를 기자들에게 공개하지 않았다. 지난 11월 트럼프는 자신의 건강 상태를 “우수하다”라고 설명하는 모호한 건강 보고서를 발표했다.

피벗 이미지 컨설팅의 남성 스타일리스트인 패트릭 켕거는 최근 타임지에 바이든 대통령(사진)의 흰머리가 트럼프보다 3살 이상 더 나이 들어 보이게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출처: 뉴시스)
피벗 이미지 컨설팅의 남성 스타일리스트인 패트릭 켕거는 최근 타임지에 바이든 대통령(사진)의 흰머리가 트럼프보다 3살 이상 더 나이 들어 보이게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출처: 뉴시스)

흥미로운 점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고령 논란을 피해 가고 있긴 하지만 취약성이 아예 없진 않기에 나이 자체로는 바이든 대통령을 공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가 이번에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임기 중 지금의 바이든 대통령과 같은 나이가 되기 때문이다.

지난 9월 한 인터뷰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은 “바이든이 대통령이 되기에는 너무 나이가 많지 않냐”는 질문에 이같이 말했다.

“나이라는 것은 흥미롭다. 어떤 사람은 (나이가 들면서) 매우 예리해지고 어떤 사람은 그것을 잃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바이든)는 전혀 나이가 많지 않다. 다만 지독하게 무능하다. 세계 위대한 지도자들 중 일부는 80대였고 처칠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80대에도 경이로운 일을 해냈다.”

◆美 정치 고령화… 연령 제한 목소리도

바이든과 트럼프는 역대 미국 대통령을 역임한 세 명의 최고령자 중 두 명이다. 로널드 레이건이 대통령에 당선되기 전까지 140년 동안 윌리엄 헨리 해리슨이 역대 최고령 대통령 기록을 보유하고 있었다. 해리슨은 1841년 취임 당시 비교적 젊은 68세였고, 레이건은 1981년 첫 취임식 당시 69세였다. 레이건이 77세에 대통령직을 떠나면서 역대 최고령으로 등극했다.

트럼프는 74세에 퇴임해 레이건과 바이든에 이어 세 번째로 최고령으로 대통령직을 수행했다. 바이든은 미국 최초의 80대 대통령이다.

인구조사국에 따르면 미국의 평균 연령은 38.9세다. 하지만 하원과 상원의 평균 연령은 각각 58세와 64세로, 미국의 지배층을 묘사하는 데 자주 사용되는 단어는 ‘노년주의(gerontocracy)’다. 최근 젊은 유권자들에게 이 단어를 설명하는 기사를 게재한 틴 보그는 이 용어를 ‘노인에 의한 정부’로 정의했다.

민주당 다이앤 파인스타인 상원의원(사진)은 지난해 90세로 별세해 미국 최고령 정치인 타이틀을 내려놨다. 그는 건강 상태로 인해 의정활동을 몇달간 쉬기도 했다. (출처: 뉴시스)
민주당 다이앤 파인스타인 상원의원(사진)은 지난해 90세로 별세해 미국 최고령 정치인 타이틀을 내려놨다. 그는 건강 상태로 인해 의정활동을 몇달간 쉬기도 했다. (출처: 뉴시스)

미국 정치의 고령화 추세는 바이든과 트럼프만이 아니라 초당적이다. 민주당 척 슈머 상원 원내대표는 73세, 공화당의 미치 맥코넬 원내대표는 82세다. 민주당 다이앤 파인스타인 상원의원은 지난해 90세로 별세해 미국 최고령 정치인 타이틀을 내려놨지만 척 그래슬리 공화당 상원의원이 올해 90세로 그 자리를 이었다. 그는 은퇴 계획이 없다.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도 82세로 은퇴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하원에서는 캘리포니아 민주당 소속이며 전 하원의장이었던 낸시 펠로시 의원이 84세의 나이로 19번째 임기를 채우기 위해 재선에 출마한다고 발표했다. 뉴저지 민주당의 빌 파스크렐 주니어 의원과 민주당의 엘리너 홈즈 노턴 의원은 모두 87세다. 켄터키주 공화당 해롤드 로저스 의원과 캘리포니아주 민주당 맥신 워터스 의원도 86세, 메릴랜드 민주당의 스테니 호이어 의원은 85세다. 이들 정치인 중 은퇴 의사가 있는 의원들은 없다.

몇 년 전 국회의사당의 한 지역 약사가 국회의원들의 알츠하이머 치료제 처방전을 작성하고 있다고 밝혀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최고령 의원 20명은 모두 80세 이상이며, 하원과 상원은 1789년 이후 세 번째로 늙은 의회다.

고령 정치인들이 공직에 계속 머물고 싶어 하는 것은 당연하며, 이는 미국에 국한된 상황은 아니다.

일리노이대학교 어바나 샴페인 캠퍼스에서 불확실성과 위험 평가 하에서의 의사 결정을 연구해온 컴퓨터 공학 교수 셸던 제이콥슨은 미국의소리(VOA)에 “정치에 있어 가장 어려운 점은 사람들이 권력을 갖고 싶어 하고 가능한 한 오랫동안 그 권력을 유지하고자 한다는 것”이라며 “그리고 일반적으로 인간은 그런 종류의 결정을 너무 오래 미루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자신의 개인적인 상황에 관해서는 위험을 이해하고 평가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선출직 공무원의 경우 나이 상한이 있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연방 법 집행관의 경우 57세에 의무적으로 은퇴해야 한다. 미국 대통령이 되려면 최소 35세 이상이어야 한다. 하원의 최소 연령 요건은 25세, 상원의 경우 30세다. 그러나 이들의 최대 연령 제한은 없다.

제이콥슨 교수는 공직자 연령 제한과 같은 해결책을 법제화하려는 시도는 저항에 부딪힐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새로운 세대’의 리더십을 위해 2025년에 퇴임하겠다고 밝힌 76세의 밋 롬니 상원의원처럼 나이 든 지도자들이 자발적으로 물러나는 것이 이상적일 것이라고 제시했다.

76세인 공화당 밋 롬니 상원의원은 ‘새로운 세대’의 리더십을 위해 2025년에 퇴임하겠다고 밝혔다. (출처: 뉴시스)
76세인 공화당 밋 롬니 상원의원은 ‘새로운 세대’의 리더십을 위해 2025년에 퇴임하겠다고 밝혔다. (출처: 뉴시스)

또 다른 공화당 대선 경선 주자인 니키 헤일리 전 주유엔 미국대사는 앞서 75세 이상의 선출직 지도자를 대상으로 정신 능력 테스트를 의무적으로 실시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미국의 고령화 추세도 이런 상황에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보인다. 데이터에 따르면 미국인들은 점점 더 오래 살고 있다. 2021년 미국에는 100세 이상 인구가 8만 9739명으로 20년 전보다 거의 두 배나 늘었다. 국립보건원에 따르면 노년층은 이전 세대보다 오늘날 더 건강한 경향이 있으며, 건강한 습관은 60대, 70대 이후에도 활동적이고 건강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고 한다.

노년층은 나이가 들면서 목적의식을 잃는 경향이 있는데, 선출직 공무원은 목적이 다양하고 뚜렷한 만큼 노년기까지 장수하는 데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조지타운대학교의 건강한 노화 센터 운영위원회에서 활동 중인 심리학 조교수 케이시 브라운은 VOA에 “노화는 획일적인 현상이 아니며, 사람마다 인생의 시기마다 강점과 약점이 다를 수 있다”며 “따라서 몇 살이 리더가 되기에는 너무 나이가 많다는 질문에 대한 간단한 답은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나이가 들면) 목적의식이 떨어지고 사회에 대한 참여가 줄어드는 경우가 많다”며 “따라서 매우 높은 지위에 오른 총명한 노인들 중 일부는 자신의 목적을 유지하면서 그것을 포기하고 싶지 않을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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