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나발니 ‘옥중 사망’ 파문
연이어 사라지는 푸틴 정적들
나발니 사망 이후 국제사회 ‘술렁’
“美공화 우크라 원조 반대 어려울것”

17일(현지시간)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러시아 영사관 근처에 러시아 야당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의 촛불과 사진이 놓여 있다. (출처: 뉴시스)
17일(현지시간)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러시아 영사관 근처에 러시아 야당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의 촛불과 사진이 놓여 있다. (출처: 뉴시스)

[천지일보=이솜 기자] 러시아의 가장 저명한 야당 지도자인 알렉세이 나발니가 옥중에서 사망했다고 교도소 당국이 발표했을 당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환호성 가운데 있었다.

지난 16일(현지시간) 러시아 산업 도시 첼랴빈스크의 한 공장에서 직원과 학생을 모아놓고 연설하던 푸틴 대통령은 미소를 지으며 자신이 방금 본 기술 진보에 만족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나발니가 최북단 시베리아 교도소에서 숨졌다고 말하지 않았다.

2011년 창설한 반부패재단을 통해 반정부 운동을 이끌던 나발니는 불법 금품 취득, 극단주의 활동, 사기 등 혐의로 30년 이상의 징역형을 선고받고 2021년 1월부터 복역 중이었다.

47세의 나이로 나발니가 사망하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추가 군사 지원이 미 의회에서 막히고, 우크라이나 군대가 전장에서 후퇴하는 등 러시아 대선을 한 달 앞두고 많은 일이 푸틴 대통령의 뜻대로 흘러가는 듯하다.

17일(현지시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알렉세이 나발니를 추모하기 위해 꽃을 놓으려던 한 남성을 경찰이 제지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17일(현지시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알렉세이 나발니를 추모하기 위해 꽃을 놓으려던 한 남성을 경찰이 제지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모스크바에 본사를 둔 카네기 러시아 유라시아 센터의 선임 연구원 안드레이 콜레스니코프는 18일 워싱턴포스트(WP)에 “푸틴이 이제 어떤 경쟁에서도 자유로워졌다”고 평가했다. 나발니의 죽음은 멀게는 정치적 가시 하나를 제거했을 뿐만 아니라 푸틴의 잠재적 적대 세력을 경계하게 하는 또 하나의 사건이다.

지난 여름, 러시아 군 지도부에 대한 반란을 주도한 바그너그룹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을 태운 제트기가 추락한 사건은 푸틴에 반대하는 모든 이들에게 냉엄한 신호를 보냈다.

이번 달 러시아 선거 당국은 후보 등록에 필요한 서명에 부정이 있다며 진보적 반전 후보인 보리스 나데즈딘의 대선 출마를 급히 막았다. 나데즈딘은 사실상 당선 가능성이 거의 없었지만 크렘린궁은 사소한 반대 의견도 용납하지 않은 것이다.

콜레스니코프는 “푸틴은 이제 혼자 남았다”며 “그는 독불장군이다. 아무도 그의 승리를 막을 수 없다”고 말했다.

나발니의 죽음은 러시아에서 한 시대의 종말을 의미하기도 한다. 2021년 1월 러시아에 돌아온 나발니의 체포에 항의하는 시위에서는 수천명이 모스크바 거리에 나왔다. 그러나 WP에 따르면 이번 주말 모스크바에서 나발니를 애도하거나 꽃을 남기는 분위기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나마 놓였던 수백개의 꽃과 촛불은 검은 봉투에 담겨 밤새 사라졌다고 CNBC는 전했다.

2019년 9월 8일 러시아 야당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가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시의회 선거에서 투표를 마치고 아내 율리아(오른쪽), 딸 다리아, 아들 자하르와 함께 언론을 향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2019년 9월 8일 러시아 야당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가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시의회 선거에서 투표를 마치고 아내 율리아(오른쪽), 딸 다리아, 아들 자하르와 함께 언론을 향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일부는 푸틴 대통령이 무리수를 뒀다고 경고했다. 러시아 엘리트층 사이에서 나발니의 위상과 그가 순교자로 여겨질 가능성, 서방이 푸틴 정권에 대한 결의를 강화하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늘릴 수 있는 위험성 등이 제기된다.

러시아 정치 컨설팅 회사 R.Politik의 설립자 타티아나 스타노바야는 이날 엑스에 “나발니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인지도와 엘리트층의 중요성, 국내 정치 참여로 다른 야당 인물과 차별화돼왔다”며 “이것은 정권에 중대한 정치적 문제를 야기한다. 정권은 나발니의 유산을 처리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바로 미국에서는 최근 푸틴의 편에 섰던 공화당 의원들에 대한 비난이 나왔다. 조 바이든 대통령 역시 우크라이나에 대한 수십억 달러의 원조가 포함된 법안 통과를 막은 공화당을 비난했다. 한 모스크바 기업 임원은 WP에 “이제 공화당이 (우크라이나 원조를) 반대하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난 주말 세계 최대 안보분야 국제회의인 뮌헨안보회의(MSC)에서는 나발니의 죽음과 푸틴 대통령에 대한 성토, 이달 말 2년을 맞이하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논의가 주를 이뤘다.

러시아 야당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가운데)가 2018년 1월 28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집회에 참석해 구호를 외치는 모습. (출처: 뉴시스)
러시아 야당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가운데)가 2018년 1월 28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집회에 참석해 구호를 외치는 모습. (출처: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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