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리스크’에 국제사회 파장
미 전현직 대통령 나토 이슈로 충돌
유럽 정상도 반발… “나토 안보 강화”
미 민주당은 물론 공화당 내에서도 비판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 문제도 불거질 듯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이른바 ‘나토 체납 국가’ 관련 발언에 미국 바이든 행정부뿐만 아니라 유럽 국가 정상들도 트럼프 전 대통령의 발언을 비판하면서 유럽의 안보를 강화하겠다고 나섰다. 사진은 12일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열린 카니발 퍼레이드에 등장한 트럼프 풍자 조형물 (출처: A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이른바 ‘나토 체납 국가’ 관련 발언에 미국 바이든 행정부뿐만 아니라 유럽 국가 정상들도 트럼프 전 대통령의 발언을 비판하면서 유럽의 안보를 강화하겠다고 나섰다. 사진은 12일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열린 카니발 퍼레이드에 등장한 트럼프 풍자 조형물 (출처: AP, 연합뉴스)

[천지일보=김성완 기자] 방위비를 내야만 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 동맹국을 보호하겠다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발언에 대한 후폭풍이 거세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멍청한 소리’라며 비난 수위를 높였지만, 트럼프 측에서는 돈을 충분히 내지 않는 회원국을 아예 나토 방위 대상에서 제외하는 방안까지 추진하겠다고까지 하는 등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동맹이라는 가치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듯한 행태가 우리에게도 결코 가볍지 만은 않은데, 더욱이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한반도에도 불안한 기류가 엄습하고 있는 모습이다. ‘트럼프 리스크’가 부각되면서 나토뿐 아니라 동맹국까지 국제사회를 뒤흔들고 있는 양상이다.

◆바이든 “트럼프 멍청한 소리”

러시아와 전쟁을 치르는 우크라이나를 추가로 지원하기 위한 안보 예산안이 밤샘 토론 끝에 13일(현지시간) 미국 상원에서 통과됐다.

바이든 대통령은 곧바로 하원 처리를 촉구하는 연설에 나섰고, 연설에서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나토 발언 비판에 집중했다. 방위비를 내지 않으면 보호하긴커녕 러시아를 부추기겠다는 발언은 멍청한 소리라는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연설에서 “나는 절대로 그렇게 안 한다. 멍청하고 부끄럽고 위험하고 미국답지 않은 것”이라고 직격했다. 또 “러시아가 공격해 오면 나토 영토 전체를 방어할 것”이라며 “모든 것을 거래로 보는 트럼프 전 대통령과는 다르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에서 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총장을 지낸 키스 켈로그 정책고문은 “국내총생산(GDP) 2%의 방위비 기준 목표에 미달하면 나토 조약 5조의 보호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밝혔다.

트럼프 안보 책사였다가 관계가 틀어진 존 볼턴 전 안보보좌관도 “트럼프 전 대통령은 나토 탈퇴에 매우 가까이 갔었다”며 “재집권에 성공해 탈퇴하면 나토의 종말을 의미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트럼프 캠프 측은 구체적인 답변을 내놓지 않았지만, 재집권 시 동맹에 분담금을 더 내게 하는 구체적인 논의가 이뤄진 것으로 전해졌다. 대선 재대결이 유력한 전‧현직 대통령이 나토 이슈로 충돌하는 양상인데, 당장 우크라이나 지원 예산부터 공화당이 다수인 하원 문턱을 쉽게 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트럼프 겁박에 유럽 발칵

사실상 돈 내라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겁박에 유럽은 발칵 뒤집혔다. 나토 조약 5조는 ‘회원국 중 하나가 공격받으면 전체가 공격당한 것으로 간주한다’는 집단 안보 체제를 규정하고 있고 작전은 사실상 미국이 지휘한다. 그런데 이 조약을 무시한 채 ‘나토 무력화’를 공언한 거라 반발이 터져 나온 것이다.

나토 수장인 스톨텐베르그 사무총장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나토 위협’ 발언을 연일 작심 비판했다. 11일에는 “동맹이 서로를 방어하지 않을 거라는 암시는 미국과 유럽을 위험하게 만들 것”이라고 지적했고 14일에는 “우리 스스로 나토 억지력의 신뢰성을 훼손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샤를 미셸 EU(유럽연합) 정상회의 상임 의장은 “이 무모한 발언이 푸틴 러시아 대통령만 도울 뿐”이라고 주장했고, EU 외교 수장은 “나토는 ‘단품 메뉴’ 군사 동맹일 수 없고 미국 대통령의 유머에 따라 작동하는 군사 동맹도 될 수 없다”고 꼬집었다.

독일, 프랑스, 폴란드 등 유럽 국가 정상들도 12일 트럼프 전 대통령의 발언을 비판하면서 유럽의 안보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무책임하고 위험하다”고 일갈했고,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나토를 보완하는 유럽 방위산업을 강화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미국 내에서는 민주당은 물론이고 트럼프 전 대통령이 속한 공화당 내에서도 거친 비판이 이어졌다. 방위비 분담의 필요성을 강조한 취지는 알겠지만 블라디미르 푸틴을 도울 것처럼 말한 건 지나치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트럼프 전 대통령과 경선을 치르고 있는 니키 헤일리 전 미국 유엔대사는 비판의 강도가 높았다. 헤일리 대사는 “도널드 트럼프가 토요일에 한 말을 보면서 속이 역겨웠다”고 날선 비난을 쏟아냈다.

◆트럼프 ‘나토’ 압박에 한국도 불안

트럼프 전 대통령이 한미동맹을 직접 거론하지 않았지만, 나토한테 저 정도라면 우리에게도 비슷한 요구를 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그의 동맹 경시가 여전하다는 게 확인된 만큼 한미동맹도 마찬가지란 설명이다.

지지율 측면에서 현재 바이든 대통령과의 격차가 더욱 벌어지고 있고 스윙스테이트인 경합주에서도 모두 앞서는 등 재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나토 발언과 함께 한반도를 더욱 불안하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실제로 트럼프 전 대통령은 대선 후보 때나 과거 집권 1기 시절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른바 ‘무임승차론’을 제기하며 방위비 인상을 압박했고 심지어 재임 중에도 주한미군의 완전 철수를 주장했다는 측근들의 전언이다.

결국 트럼프 전 대통령의 생각은 미국의 핵심 동맹국들이라고 하더라도 자국 안보를 스스로 책임져야 하며 미국에 합당한 비용을 지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북중러가 포진하고 있는 지정학적 관계상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많지만, 주한미군 철수 문제도 재차 거론될 가능성이 높다.

이는 결국 한국인들의 안보 불안 심리를 자극할 수 있는데,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집권 가능성이 가시화할수록 방위비 문제는 물론, 미국의 확장억제에 대한 신뢰성 하락과 이에 따른 한국 내 자체 핵무장론 확산 등 극우 보수 세력을 중심으로 안보 문제가 제기될 것으로 예상되는 이유다. 일각에선 한미동맹이 흔들릴 수 있다는 진단도 나온다.

뉴욕타임스(NYT)는 11일 관련 발언을 전하며 1950년 애치슨 미국 국무장관이 한국을 방위선에서 제외시킨 이른바 ‘애치슨 라인’을 발표하고 5개월 뒤에 북한이 침략한 역사를 언급하기도 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집권할 경우 한반도를 포함해 미군이 빠져나간 지역에서 실제 전쟁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경고를 한 것으로도 읽힌다. 한반도 화약고 될 수 있다는 굉장히 위협적인 분석인데, 실제화할 수 있으니 대비하라는 것처럼 들린다.

국제사회가 트럼프 행정부 2기 현실화를 가정한 대응팀을 꾸리고 있는 가운데 윤석열 정부도 관련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와의 관계상 내놓지는 못하지만 트럼프 행정부 출범을 상정해 범정부 TF(특별팀)를 가동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전문가들은 “트럼프 전 대통령은 1기 시절부터 협상하는 걸 즐겼다”면서 “트럼프와의 협상 시에는 전략적 마인드가 필요하다. 내줄 건 내주고 지킬 건 지켜야 하는 데 이 정부가 잘할지는 의문이다. 그간 행태를 보면 친미 편향의 사대주의 외교로 점철돼 있어 다 내 주지 않을까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