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겸 동국대 법학과 교수

음력으로 새해가 시작되는 날을 우리는 설 또는 구정이라고 하여 신정에 상대하여 부르고 있다. 구정은 1985년 ‘민속의 날’이란 이름으로 공휴일로 하였다가 귀향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1989년에 와서 ‘설’이란 공식 명칭으로 법정 공휴일이 되었다고 한다. 아무튼 설날은 민족의 명절로 가족이 모이는 좋은 날이다. 그런데 설 연휴에 술에 취한 아들이 어머니를 살해하는 패륜적인 끔찍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런 패륜적인 사건은 한 번만 발생해도 사회에 주는 충격이 너무나도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우리 사회가 많은 변화를 겪으면서 미풍양속도 시대의 변화에 따라 변하고는 있지만, 자녀가 부모를 살해하는 사건은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부모와 자녀는 인륜으로 엮어진 관계이고, 이는 시대와 지역을 불문하고 크게 다르지 않다. 개인주의를 강조하고 있는 서양이라고 하여도 부모와 자녀 간의 관계는 당연히 인륜이 우선시 된다.

우리는 가족 간의 살인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인륜에 근간이 되는 도덕과 윤리의 중요성을 말한다. 그렇지만 도덕과 윤리가 저절로 체득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아무리 이를 강조한다고 하여도 현실에서는 공허하게 들린다. 누구나 도덕과 윤리가 중요하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이를 인성에 녹이려면 교육을 받아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경쟁사회에 교육은 지식의 습득에만 집중하고 있다.

도덕과 윤리는 인간사회의 필수적인 덕목이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려면 의식주도 해결해야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도덕과 윤리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인간이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질서를 유지하면서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는 데 필요하기 때문이다. 국가공동체를 유지하는 데 기준이 되는 것은 법이지만, 법이란 규범은 인간사회를 유지하기 위하여 요구되는 도덕과 윤리를 기본적인 내용으로 하고 있다.

도덕이나 윤리를 법의 최소한이라고 하는 것은 법이 도덕과 윤리를 기반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다. 법치국가는 법질서를 국가의 기본적인 통치 질서로 한다. 국가법에서 최고의 법은 헌법이다. 우리나라 헌법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보장해야 한다고 선언하고 있다. 인간의 존엄이란 인격을 갖춘 인간은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인간의 인격은 도덕과 윤리에 기초하는 인간을 의미한다.

인간의 존엄을 보장하려면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보장되어야 한다.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해야만 인간의 존엄이 보장받을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헌법은 모든 인간에 대하여 무조건 그 존엄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으로서 품격을 가지고 있는 인격의 주체가 되는 인간에 대해서만 그 존엄을 보장한다. 인간의 존엄과 가치에는 인격주의가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이런 내용은 국가의 최고 규범인 헌법 여러 곳에서 볼 수 있다. 언론과 출판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실현을 위하여 중요한 기본권이지만, 언론과 출판이 다른 사람의 명예나 권리, 사회윤리와 공중도덕을 침해하는 경우 법적 책임을 지도록 하고 있다. 이는 언론의 자유가 중요한 정신적 기본권이라고 하여도 도덕이나 윤리를 침해하면 이에 대하여 법적 책임을 묻도록 함으로써 도덕과 윤리를 보호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헌법은 윤리적 인간이 되어야 인간의 존엄을 보장받을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요건을 충족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도덕과 윤리는 교육을 통하여 형성되는 것이다. 교육은 먼저 가정교육을 통하여 부모로부터 받는 것이고, 그다음 학교 등과 같은 공교육 제도를 통하여 받게 된다. 가정교육은 개인의 책임이지만, 공교육은 국가의 책임이다.

교육은 국가의 백년대계라고 한다. 근대 이전에 교육은 사교육에 근간하였지만, 근대 이후는 국가가 주도하는 공교육이 주를 이루고 있다. 국가는 학교제도를 운영하면서 공교육을 실시한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나라 공교육은 오로지 대학입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도덕과 윤리를 가르치는 인성교육은 입시과목이 아니기 때문에 존재 가치를 상실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그 결과가 나오고 있다. 인성을 상실한 반인륜적 범죄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고, 자기중심적 극단적인 이기적 물질주의가 팽배하고 있다. 돈만 벌면 된다는 부동산 투기 광풍, 온갖 사기 사건이 발생하는 등 천민자본주의가 판치고 있다. 인구소멸의 길에 접어든 시대에 인간답게 살아야 하는 이유를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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