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

2023년 12월 7일, 틱톡은 2023 글로벌 톱 음원과 아티스를 발표했는데 글로벌 인기 음원 부문에서 피프티피프티의 ‘큐피드’가 1위를 차지했다. ‘큐피드’는 단 4개월 만에 빌보드 핫 100 차트에 안착하기도 했던 곡이다. 이렇게 좋은 반응을 끌어냈던 이유는 스페드 업(Sped Up) 버전이 크게 유행을 했기 때문이다. 스페드 업(Sped Up)은 원곡의 BPM을 130~150% 빠르게 만든 음원을 말한다. 그럼 왜 이렇게 인기를 끌게 된 것일까?

이런 스페드 업이 크게 인기를 끌게 된 것은 틱톡의 특성 때문이다. 틱톡에는 1분 정도의 짧은 영상으로 올려야 하기 때문이다. 시작은 해외 팬이 올린 큐피드 영문 버전의 프리코러스였다. 즉, 후렴구 직전의 짧은 소절을 따서 빠르게 속도를 높인 스페드 업 버전을 만들어 2023년 최고의 프리코러스라는 이름으로 게시물을 올린 것이 유행의 출발이었다. 이 뒤에 스페드 업 버전은 베이킹 영상이나 언박싱 영상들에 배경음악으로 사용되었다. ‘큐피드’의 원래 버전은 느리고 쉬운 멜로디의 곡인데, 이렇게 스페드 업으로 탄생하니 팬들의 기호와 취향에 맞게 재창작한 셈이었다.

이는 어떻게 보면 일반상품의 모디슈머 현상과 같다. 이는 기존 공산품을 자신의 필요에 맞게 바꾸는 것을 말한다. 짜파게티와 너구리를 섞은 짜파구리처럼 말이다. 해외에서도 그랬지만 짜파구리는 아예 고급 식당의 메뉴로 정식 등장하기도 했다. 이처럼 스페드 업은 이용자가 자신의 취향대로 개조한 것인데 이것이 하나의 장르가 되는 듯 스페드 업 곡을 공식적으로 발표하는 가수들이 늘어나고 있다.

팝 가수 시저는 2022년 12월 ‘킬빌’ 음원 공개 뒤에 2023년 2월 스페드 업 버전의 음원을 내놨다. 서머 워커는 ‘라스트 데이 오브 서머’, 데미 토마토는 ‘쿨 포 더 서머’의 스페드 업 버전을 선보였다. 또한, 스티브 레이시(Steve Lacy), 레이(RAYE), 올리버 트리(Oliver Tree), 썬더캣(Thundercat) 등도 연이어 선보였다. 우리나라에서도 2022년 김새녘이 국내 최초의 스페드 업 앨범 ‘새빛깔’을 발매했고, 스페드 업 버전을 내놨다. 에스파는 애플tv 플러스 OST ‘홀드 온 타이트’를 스페드 업 버전으로 내놨다. 그룹 틴탑은 타이틀곡 ‘휙’, 015B는 ‘기억을 가진 채 14살로’ ‘코펜하겐’의 스페드 업 버전을 앨범에 넣었다.

버전을 따로 만드는 것을 넘어 옛노래를 새롭게 부각하는 효과도 있다. 2005년 발매된 허밍 어반 스테레오 정규 음반에 실린 ‘바나나 쉐이크’가 2023년 3월 스페드 업으로 재탄생했는데, ‘나문희 첫사랑’ 챌린지 배경으로 쓰여 눈길을 끌었다. 무려 18년 만의 부각이었다. 이 때문에 원곡의 존재에 대해서 궁금해하고 탐색을 하는 일이 잦아졌다. 물론 그때는 태어나지도 않았던 이들이 찾은 것이다. 특히, 레이디 가가의 ‘블러디 메리(2012)’가 스페드 업을 통해 차트를 역주행했는데, 무려 11년 만이었다. 에미넴(Eminem), 라나 델 레이(Lana Del Rey), 브루노 마스(Bruno Mars) 등의 예전 곡들이 SNS에서 새로운 세대에게 주목을 받는 것도 스페드 업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 그 문화적 배경은 무엇일까? 사실 틱톡만이 아니고 유튜브 숏츠, 인스타그램 릴스 등에 걸쳐 전반적으로 SNS는 모두 길이 제한에 민감한 청소년을 중심으로 확산했다. 물론 길이 제한만이 아니라 음악의 속도를 빠르게 하는 것은 노래의 중심 테마를 집중해서 들을 수 있게 하며 몰입감을 높여 만족도를 높이는 효과가 있다. 이러한 점은 도파민을 더 분비하여 성취감을 느끼고 재미를 더 많이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신경생리학적인 메커니즘이 실제로 작동하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호주 멜버른 대학의 신경학 박사 과정 논문을 보면 스페드 업이 최고의 구간만을 빠르게 느끼려는 욕구, ‘도파민’ 메커니즘이라고 밝히고 있다.

어떻게 보면 새로운 창작품이라는 점을 부정할 수 없다. 2차 창작의 영역이기 때문에 하나의 장르로 인정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핵심적인 음악의 요체를 누리려는 적극적인 팬들의 문화예술 행위로 볼 수 있다는 긍정적인 관점이 있다. 밈 수준으로 돌았던 변형곡이 하나의 정식노래 버전을 자리를 잡는 배경이다.

하지만 단점도 있다. 원작자의 의도가 달리 전달이 될 수 있다. 음악을 제대로 들을 수 없을 수 있다. 원곡이 갖는 의미와 가치를 왜곡할 수 있다는 점이다. 더구나 기존의 곡들을 사랑하는 팬들이 배제될 수 있다. 물론 원곡에 관한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스페드 업이 옳은가 그른가 논쟁을 하지 않아도 이미 젊은 세대를 그렇게 자신만의 방식으로 음악을 누릴 수 있다는 점이다. 너무 많은 정보 사이에서 자신에게 맞는 방식으로 재구성할 수 있는 툴로 콘텐츠를 만들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티스트도 애초에 스페드 업 판으로 만들어 낼 상황이다. 이는 결국 팬들과 소비자가 만들어낸 시대적 흐름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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