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명지전문대 겸임교수 법학박사 이문성
(전)명지전문대 겸임교수 법학박사 이문성

민심만을 따라 하면 망한다.

정치인이 민심에 갇히게 되면 정상적이고 합리적인 자원 배분이 어렵게 된다.

국가의 경쟁력과 지속가능성이 아닌 바로 내일의 뉴스 헤드라인이 국가정책 수립 기준이 되면 일관성 있는 정책 담보도 확보할 수 없다.

그래서 정치인은 민심의 대변인이면서도 민심에 대한 계몽자로서의 이중적인 모순된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사실 민심은 추상적 개념이지 구체적인 형태나 모습을 갖고 있지 않다. 그러다보니 민심은 장소도 가리지 않는다. 설 밥상머리에서 노동현장, 러시아워 출근길에서 촛불시위 그리고 일면식 없는 낯선 사람들 간의 거래가 집합적으로 이뤄지는 재래시장터에서도 민심은 예측할 수 없게 나타나기도 한다.

민심을 알기 위해 쫓다 보니 최첨단 컴퓨팅을 통해 얻은 통계수치와 분석 데이터가 어느 때부턴가 언론매체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고 있다.

통계데이터를 보면 사회현안별, 세대별, 직능별, 성별, 지역별 민심의 추세를 추론할 수 있는바, 여론분석가들의 풀이과정을 통해 정치뉴스의 소비자인 대중이 이를 소비할 수 있게 된다.

의문이 든다. 통계에 따라 민심의 지지도가 높게 반영된 사안이라면 정당하고 합리적인가. 국가의 자원을 모두 민심의 향방에 맡겨도 되는가. 

예비타당성조사제도를 보자. 예비타당성조사는 대규모 재정사업의 타당성을 확인하고 자의적 재정집행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이다.

물론 예외도 있다. 국가ㆍ경제 안보, 안정적인 산업 공급망 확보, 미래 경쟁력 확보 등을 위한 사업은 예비타당성조사를 면제한다. 

그러나 약 13조가 소요되는 부산 가덕도 국제공항과 최소 6조원 규모의 대구·광주 달빛철도 건설사업에 대해 거대양당은 정무적 판단에 따라 각각 특별법을 제정하여 예비타당성 조사를 면제했다. 전문가들이 예측한 경제성 평가가 틀리거나 예상하지 못한 수요가 발생하기만을 기다려야 하는 형국이다.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던 사업 실패가 현실화되면 누가 뒷감당을 해야 하나.

지방자치단체도 한몫하고 있어서 단체장의 인기부합적인 현금형태 선심성 복지정책은 지방재정의 지속가능성을 도외시한 무책임한 표퓰리즘으로서 이미 오래된 문제거리로 전락한 상황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여론조사 통계자료는 거의 매주 업데이트된다. 통계를 보면 사안별로 민심이 요동치고 있다. 

그러나 파도와 같은 민심을 넘어서 거대한 해류의 흐름과 방향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민심은 역사성과 사회성을 반영한 연장선에 있기에 이기적인 개인의 증폭된 결과로 단순 해석해서는 곤란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70년대 정부주도의 산업화, 80년대 정보통신의 혁명, 90년대 IT 등 첨단기술 주도 산업개편, 2000년대 디지털 시대의 개막이라는 각기 시대적 과제를 수행해 왔으며 그 과정에서 한국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80년대 민주화 격변, 90년대 전자정부 실현과 중국·러시아와의 국교 체결, 2000년대 세계화시대 주축세력으로서 FTA를 통한 확장을 이뤄왔다.

그에 그치지 않고 생산적 복지라는 새로운 비전 제시를 통해 사회적 보험과 연금제도 안착을 통해 사회복지국가로서의 틀도 갖추는데 나름 성공했다.

그 과정에서 국가적 자본 축적을 위해 국민은 많은 고통을 분담하고 희생을 감수해야 했으며 아픈 기억도 공유해야 했다. 하지만 거대한 민심이라는 해류는 시대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묵묵히 전진하여 누구도 부정하지 못하는 세계 10대 강국이라는 오늘에 이른 것이다.

하지만 민심이 처한 상황은 그야말로 고난하다.

AI 신기술 등장이 초래한 직업형태의 대폭적인 변화예고, 첨단 자동화설비투자 급증에 따른 노동시장 불확실성, 경제성장률 정체 현상에 기인한 자산소득의 불안감, 정부에 대한 낮은 신뢰성, 초저출생 현상이 가져올 텅빈 미래, 세대간·성별간 자원 획득을 둘러싼 높아가는 갈등․대립 등에 대해 민심은 정치계를 비롯한 각 계의 지도자들에게 경종을 울리고 있다.

시대적 과제는 시대적 도전으로 대응해야 한다.

정치지도자는 민원해결사가 아니다. 칭찬받고 존경받고 싶으면 변호사, 의사, 목사, 방송인 등 전문가나 성실한 동네 생업 종사자로 근무하면 된다. 

통계에서 보이는 민심을 넘어서서 민심이 요구하고 우려하는 시대적 과제를 정치인은 구체적으로 제시할 수 있어야 하며 민심에게 고통분담을 요구하면서도 미래의 청사진을 담보할 수 있는 용기와 배짱이 있어야 한다.

이준석 대표가 이끄는 개혁신당의 노인무임승차 폐지와 보편적 노인교통복지 부여 방안과 경찰 등 일정한 분야의 공무원을 지망하는 여성의 공무담임권을 우선보장하기 위한 여성군복무 부여방안 등의 정책 제시는 그 내용이 뜨악하기는 하지만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숙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적 담론을 형성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반가운 마음도 든다.

지방단체장 입장에서도 노인의 보편적 교통복지권 실시에 관한 중앙정부의 지원 그리고 지방 공무원 사회에 위계적 질서를 체득한 군복무 여성 경험자를 확대 채용할 수 있는 방식 등은 눈길을 끄는 방안이 아닐 수 없다.

애를 낳으면 기본소득으로 몇 푼 더 준다느니, 규제를 풀어 아파트 몇 층 더 올릴 수 있다느니, 철도 몇 ㎞ 더 건설하느니 하는 나눠먹기식 공약보다는 더 담대한 시대적 담론을 제시할 수 있는 정책적 이슈를 기다리게 된다.

파도가 요동친다고 하여 거함도 요동치지 않는다. 파도를 이겨나가며 해류를 바라보고 좌표를 확인하며 항해해야 한다. 24년 총선이 중요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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