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

호머의 우화와 전설은 아주 오랜 전통을 지녔다. 수백년 동안 발전한 전설의 언어는 다양한 고대어와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 문법의 특징을 보여준다. 호머가 이야기한 영웅들의 세계는 그의 시대가 아니라 훨씬 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사시에 언급된 도시 가운데 미케네, 티린스, 필로스, 트로이는 BC 1200년 이전에 이미 소멸되었다. BC 8세기에 아시아 해안에 등장한 이오니아 식민도시들은 아직 생기지도 않았다. 칼, 단검, 화살은 BC 8세기부터 철로 만들었다. 호머의 서사시에서는 이러한 무기를 청동으로 만들었다고 했다. 호머 직후에 활동했던 다른 유명한 시인은 철이 없었고, 모두 청동으로 만들었던 옛날을 이야기한다. 호머의 서사시에 등장하는 무기 가운데 일부는 훨씬 더 오랜 BC 14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확실한 것은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의 시인이 미케네 문명과 동시대인 트로이 문명과 히타이트 문명의 가장 위대했던 시대 이후 이어진 전통에 따랐다는 점이다.

이러한 모든 것을 감안하고도, 우리가 이 서사시의 내용을 그 시대에 일어난 실제 역사적 사건과 일치한다고 믿을 수 있는가? 믿을 수 있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사건인가? 그리스 공주 헬렌이 트로이로 납치된 사건인가? 아가멤논은 미케네 제국의 왕이었는가? 트로이는 과연 대규모 그리스 함대의 공격을 받았는가? 트로이 침공 당시 아이아스, 오디세우스, 디오메데스, 아킬레우스, 헥토르가 있었는가? 당시 트로이의 통치자는 프리아모스였는가? 헥토르와 파리스가 트로이 전쟁에 참가했는가? 이러한 질문 리스트는 끝도 없이 이어질 수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영웅에 대한 서사시와 전설은 역사로 간주할 수 없다. 기록된 역사와 전설을 서로 대조해 보면, 역사적 사건이 크게 다르게 표현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문서가 없이는 역사적 사실에 이르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전설은 오스만어로 ‘멘키베(Menkibe)’라고 한다. 이 단어에 해당하는 터키어는 없지만, 어느 정도 역사적 현실과 유관하면서도 정치적 이유로 지나치게 과장된 텍스트를 가리킨다. 그러한 의미에서 멘키베는 현실주의적 측면이 있다. 멘키베는 정치적으로 중요한 기능을 발휘하는 동시에 사건의 연대기적 유형으로 표기된다. 로마 건국 초기의 사례를 보자.

전설에 따르면 로마는 BC 750년 무렵 티베르 해안에서 늑대의 젖을 먹고 자란 로무스와 로물루스 형제가 세웠다. 이 전설과 지리를 연결한다면, 늑대는 유럽에서 이 지역에만 생존했어야 한다. 티베르 해안은 늑대가 사는 곳이고, 아이들이 늑대에게 잡혀갔을 가능성도 있다. 고고학적 발굴을 통해, 티베르 해안에 그러한 마을을 찾기도 했다. 그러나 로마가 이 작은 마을에서 성장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고고학적으로도 확인되었다. 로무스와 로물루스 이야기는 로마라는 도시를 신성시하는 효과를 낳았다. 그러므로 멘키베에는 신성한 영웅들이 등장한다. 아우구스투스 시대의 시인 베르질리우스는 서사시 아이네이아스에서 로마인의 조상을 아이네이아스라는 트로이 영웅과 연결했다. 이처럼 어떤 사실은 다른 사실과 조합되어 조각 맞추기식으로 신성한 역사를 구성하기도 한다.

이고르(Igor) 이야기에 대한 러시아 전설에서도 비슷한 경향을 볼 수 있다. 이 전설에 대한 기록은 훨씬 오래전부터 있었다. 그러나 1817년 나폴레옹의 모스크바를 공격했을 때 모두 소실되었다. 이후 푸시킨이 타고 남은 문서를 기반으로 다시 전설을 만들었고, 이는 러시아 건국 전설로 남았다. 오스만 건국 신화에도 멘키베적 특징을 볼 수 있다. 특히 오스만이 건국된 쇠위트 마을과 그 주변의 신성한 역사에 대한 조작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이 가운데 어디까지가 사실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제국이 특정 시기에 어느 지역에서 탄생했고, 이후 엄청난 정치세력으로 성장한 것은 확실하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