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제 언론인

겨울 철새인 떼까마귀 140여 마리가 약물 중독으로 땅바닥으로 추락하는 광경이 얼마 전 제주도에서 벌어졌다. 동공이 풀린 채 날갯짓도 못하고 널부러져 죽음의 문턱에 다다른 상황이었으나 다행히 주민 신고와 동물구조사 돌봄으로 대부분 살아났다는 뉴스를 접했다. 독극물 해독제를 맞고 하루 만에 자연 방사되는 모습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너무도 씁쓸한 일이다.

텃새인 까마귀와 달리 떼까마귀는 몽골과 시베리아에서 매년 10월쯤 한반도 남쪽으로 내려와 6개월 정도 머물다 북쪽으로 이동하는 철새라고 한다. 몇 년 전 울산에 갔다 마을과 논밭에서 먹구름 같은 엄청난 떼까마귀 무리를 보고 그 장관에 놀란 적이 있다.

이들은 뾰족한 부리로 땅을 쪼고 농작물을 파헤친다는 죄목(?)으로 ‘유해 야생동물’로 낙인찍힌 상태다. 이번 제주 마을에서도 떼까마귀의 피해를 막으려고 논밭에 농약을 뿌려두었다는 주민 증언이 있다.

수의사도 “움직이지 못하고, 과도한 침 흘림 증상이 전형적인 농약 반응”이라고 진단했다. 제주에서 이렇게 농약을 뿌려 떼까마귀를 죽이고, 포획해 소각하는 야만성을 보이는 반면 울산에서는 떼까마귀 피해를 지원해주면서 관광자원화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얼마 전 세상을 뜬 푸들강아지를 17년간 키우다 보니 동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강아지와 매일 세차례 산책을 했는데, 그러다 보면 길가에 피는 풀과 꽃이 눈에 확연히 들어오고 계절 변화도 실감할 수 있었다.

어느 날 풀밭에 내려앉은 까치와 대화도 하게 됐다. 물끄러미 나와 강아지를 쳐다보는 까치의 눈길이 마음에 와닿았다. 순간 선한 생명의 고귀함이 감동으로 다가왔고 친절함이 절로 솟구쳤다. 까치의 애절한 눈동자를 아직도 잊지 못한다.

요즘 하늘을 올려다보면 청둥오리 떼가 큰소리를 내며 날아가는 모습을 자주 본다. 사력을 다해 머리를 앞으로 내밀고 열심히 날개 젓는 자태와 기를 쓰는 표정이 웃음짓게 한다. 지상에서 나 홀로 지켜보는 청둥오리의 하늘 나는 모습이 귀여우면서도 한편 애처롭기도 하다.

아내가 2년 전 제주도에서 ‘한해살이’를 할 때 나와 자주 가던 곳이 추사 김정희 귀양살이 고장인 대정읍 송악산 위쪽의 해안이었다. 모슬포항~미쁜제과 사이 해변을 지나치다 보면 남방 돌고래가 자주 출몰한다.

맑은 날보다 바람이 다소 심하게 불고 해가 가려진 어두운 날씨에 마치 팀을 이뤄 물살을 가르며 남쪽 또는 북쪽을 향해 헤엄치는 무리 모습을 볼 수 있다. 길 가던 사람들이 멈춰서서 탄성을 지르고 감탄을 연발한다, 우연히 마주친 남방 돌고래 쇼 덕분에 바닷바람을 맞으며 가슴이 트이고, 자연의 신비를 만끽한다. 그 해변에 갈 때마다 돌고래와의 설레는 만남을 기대하게 된다.

제주 앞바다에서 남방 큰돌고래를 불법 포획돼 공연시설에 팔아넘기는 일이 한때 흔했다. 2012년 서울대공원이 돌고래쇼를 중단하고 제돌이, 춘삼이 등 남방 돌고래를 고향 제주로 자연 방류해 박수를 받았다. 아직 롯데월드 아쿠아리움 등 국내 수족관에 21마리의 돌고래가 갇혀있어 동물애호가들이 ‘고래쇼 중단’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5000만 년 전 땅에 살던 고래가 바다로 간 이후 바다속에 사는 유일한 포유류로 남아있다. 인간처럼 새끼를 낳고 젖을 먹여 키우며, 폐로 호흡하기에 수면 위로 올라와 코로 숨을 쉰 뒤 잠수하기를 반복한다. 호기심 많고 사교적인 성격의 흰돌고래 ‘벨루가’는 롯데월드 수조 안을 9년 동안 돌아다니고 있다. 북극해 연안에서 자유롭게 무리 지어 다니지 못한 채 엄청난 스트레스를 안고 살아간다.

울산 반구대 암각화에서 발견된 향유고래는 석유를 대체하는 최고급 기름(뇌유)을 한 마리 당 1만 리터나 내놓을 수 있어 무자비하게 포획당했다. 산업혁명과 함께 18~20세기 한 해에 수만 마리씩 고래를 잡는 포경산업에다 지구온난화에 따른 먹이 부족으로 굶주린 북극곰의 고래 사냥, 바다 속 미세 플라스틱, 선박 충돌 사고 등으로 고래가 사라지는 참담한 현실이다.

고래는 엄청난 양의 탄소를 몸속에 품고 일생을 살다 죽더라도 심해에서 수만 년 동안 탄소를 저장하는 ‘탄소 지기’ 역할을 한다.

소설 ‘모비딕’에서 향유고래 모비딕은 수 없는 작살에 꽂히고도 복수의 화신 선장과 피쿼드호를 침몰시키고 유유히 바다로 사라진다. 욕망과 분노에 사로잡힌 인간을 조롱하듯 모비딕의 승리를 그린다. 선장처럼 되지 않으려면 수족관에 갇힌 고래들을 자연으로 돌려주고, 따듯한 남쪽을 찾아온 떼까마귀에게 농약을 살포해서는 안된다.

이제 반(半) 야생적인 도시, 지속가능한 생태환경을 만들지 않으면 인류 절멸을 재촉할 뿐이다. 모비딕에 당한 선장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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