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기업 지분율 25% 이상 시
최대 7500달러 보조금 제외
한중 합작사 지분율 조정 중
추가 투자금 부담 커질 우려도
위기냐 기회냐 기업 예의주시

산업통상자원부 1차관(오른쪽 세번째)이 2일 오후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 해외우려기관 관련 민관합동 대응회의'에 참석해 있다. (연합뉴스) 2023.12.03.
산업통상자원부 1차관(오른쪽 세번째)이 2일 오후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 해외우려기관 관련 민관합동 대응회의'에 참석해 있다. (연합뉴스) 2023.12.03.

[천지일보=정다준·최혜인 기자] 미국 재무부가 중국 자본 지분율이 25% 넘는 합작법인을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키로 하면서 한국 정부와 기업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미 정부가 중국에 있는 모든 기업을 사실상 전기차 보조금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한 건데, 중국 배터리 업체와 활발하게 협력하던 한국 기업들의 셈법도 복잡해지게 됐다.

3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 재무부와 에너지부는 1일(현지시간)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상 ‘해외우려기업(FEOC)’ 세부 지침을 발표하고 중국, 러시아, 북한, 이란 정부의 소유·통제·관할에 있거나 지시받는 기업을 FEOC로 규정했다. 여기에는 중국 정부와 관련된 합작회사 지분율이 25% 이상인 경우도 포함됐다. 한국 등 외국 기업과 합작법인을 세워 미국의 규제를 피하려는 중국 기업의 시도를 막으려는 의도다.

현재 미국은 배터리 부품과 핵심광물 원산지 요건을 충족하고 북미에서 최종 조립된 전기차를 대상으로 최대 7500달러(약 1000만원)의 세액공제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이 혜택을 받으려면 배터리 부품은 2024년부터, 배터리에 들어가는 핵심광물은 2025년부터 우려 기업으로부터 조달하면 안 된다.

이에 따라 이번 조치는 중국과 합작사를 설립한 국내 배터리 기업들에 적잖은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발표를 예의주시해온 업계에서는 최대로 하더라도 지분율을 25%가 아닌 50%까지 허용할 것이란 예상을 해왔기 때문이다. 최근 IRA 적용 이후 미국 수출 우회로를 찾으려는 중국 기업과 안정적인 원료 공급처가 필요한 한국 배터리·소재 업계가 한중 합작회사를 설립하려는 움직임을 보여온 점도 우려 요소다.

실제 LG에너지솔루션은 중국 리튬 화합물 제조업체 야화와 모로코에서 수산화 리튬을 생산하는 MOU를 맺었고, 화유코발트와는 중국에 합작 배터리 리사이클 합작법인을 세우기로 했다. LG화학도 화유 코발트와 배터리 전구체 합작공장을 짓고, 화유 그룹과 모로코에 LFP 양극재를 연 5만톤 생산하는 공장을 지어 북미에 공급한다는 계획이었다.

LG에너지솔루션이 7일 오후 중국 저장성에 위치한 화유코발트 본사에서 ‘배터리 리사이클 합작법인 계약 체결식’을 개최했다. (제공: LG에너지솔루션)
LG에너지솔루션이 7일 오후 중국 저장성에 위치한 화유코발트 본사에서 ‘배터리 리사이클 합작법인 계약 체결식’을 개최했다. (제공: LG에너지솔루션)

SK온과 에코프로는 중국 거린메이와 전구체 생산을 위한 3자 합작법인을 설립한다는 계획이고, 포스코홀딩스와 포스코퓨처엠도 중국 CNGR과 이차전지용 니켈과 전구체 생산 공장을 짓는 합작 투자 계약을 맺은 바 있다.

중국 측의 투자 지분을 낮추기 위해 우리 기업의 추가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는 점도 우려 요인으로 꼽힌다. 생산 설비 설립에 조 단위 자본이 들어가는 점을 고려하면 지분 추가 매입을 위해 수천억원을 더 투자해야 할 수도 있다.

포드와 중국 CATL의 합작공장처럼 중국 배터리 기업의 우회로 진출이 인정될 여지가 있는 것도 K-배터리에는 부담이다. 미 정부는 배터리 부품과 핵심광물 생산에 필요한 기술을 사용하는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할 경우 기술을 제공하는 중국 기업이 생산 전반을 실질적으로 통제하는가를 기준으로 삼았다. 현재 포드와 CATL은 포드가 지분 100%를 갖고 CATL은 기술을 지원하고 공장 운영에만 참여하는 형태로 미시간주에 배터리 공장을 짓고 있다.

이러한 우려를 아는 정부는 미 발표가 나온 날 산업통상자원부 1차관 주재로 민관합동회의를 열고 영향분석 등 긴급점검에 나섰다. 산업부는 이날 LG에너지솔루션, SK온, 삼성SDS 등 배터리 3사를 비롯한 기업·협회와 회의를 열고 향후 현재의 공급망을 긴급점검하고 공급선 다변화 등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중국 LFP 배터리 장착 배터리. (자료: 각 사) ⓒ천지일보 2023.10.08.
중국 LFP 배터리 장착 배터리. (자료: 각 사) ⓒ천지일보 2023.10.08.

또 “중장기적으로는 핵심광물을 적게 사용하는 배터리 개발에도 힘쓰겠다”고 말했다. 중국의 흑연 수출통제까지 겹친 가운데 배터리 핵심광물을 절대적으로 중국에 의존하는 현재의 공급망 구조에 변화를 주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중국은 이달부터 전기차 배터리 생산에 쓰이는 흑연에 대해 수출을 통제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산업부는 미국의 세부 규정 가운데 불명확한 부분에 대해선 “업계 의견을 수렴해 미국 측에 의견서를 제출하고 협의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번 발표로 오히려 불확실성이 해소됐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일부 국내 배터리·소재 기업은 일단 불확실성이 해소된 데 안도하면서 장기적으로 미칠 영향 등을 따져보고 있다. 산업부도 “이번 발표로 기업의 경영·투자 불확실성이 상당히 개선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출 기회라는 시각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의 움직임에 발맞춰 공급망 다변화와 수직 계열화, 차세대 배터리·소재 개발에 더욱 속도를 낼 수 있다고 밝혔다.

LG화학, 화유그룹과 손잡고 양극재 사업 본격 진출. (제공: LG화학)
LG화학, 화유그룹과 손잡고 양극재 사업 본격 진출. (제공: LG화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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