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한일 중심 인태 전략 추진
러, 아태 군사협력 유지·강화
아시아 두고 러중-미 줄다리기
러 “美 패권에 지역 긴장 고조”
서방은 러중 ‘아태 위협론’ 제기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이 30일 중국 베이징에서 '공통의 안보, 지속적 평화'를 주제로 열린 제10차 베이징 샹산 포럼에 참석해 연설하고 있다. 쇼이구 장관은  미국이 자국의 헤게모니를 유지하기 위해 지정학적 긴장을 부추기고 있다며 주요 국가 간의 대립 위험성을 경고했다. (AP/뉴시스) 2023.10.31.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이 30일 중국 베이징에서 '공통의 안보, 지속적 평화'를 주제로 열린 제10차 베이징 샹산 포럼에 참석해 연설하고 있다. 쇼이구 장관은 미국이 자국의 헤게모니를 유지하기 위해 지정학적 긴장을 부추기고 있다며 주요 국가 간의 대립 위험성을 경고했다. (AP/뉴시스) 2023.10.31.

[천지일보=최혜인 기자] 미국이 최근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회원국 중 일부 국가들과 군사안보 협력 활동을 강화하면서 아세안과 아세안+3 등 기존 결속체들에 균열이 가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런 와중에 러시아는 아시아태평양 지역(APR)의 관심 국가들과 장비공급과 합동훈련을 포함한 군사협력 및 군사기술협력(MTC)을 지속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어, 아세안 국가들의 군사안보를 둘러싼 방정식이 갈수록 복잡해지고 있다.

◆샹산 포럼서 서방 견제 나선 러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중국 후난성 샹산에서 열린 ‘제10차 샹산 안보포럼’에서 “미국은 아세안 중심 메커니즘을 인도·태평양 지향의 폐쇄적 블록 구조로 대체, 아세안의 중심 역할과 이를 중심으로 발전한 안정적인 안보 구조를 훼손하려고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쇼이구 장관에 따르면 미국은 호주·영국과 함께 앵글로색슨 동맹인 오커스(AUKUS)를 중심으로 쿼드(호주·인도·일본·미국)와 아태 4국(일본·호주·뉴질랜드·한국)을 아우르고 있다.

쇼이구 국방장관은 이 자리에서 “미국 주도의 각종 안보 모임에 참여하는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나라들은 오커스의 틀 안에서 상호작용을 통해 재래식 무기 중심의 현대화를 도모하고, 핵 비확산 체제에 해로운 핵 구성 요소를 개발할 수도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보이는 미국의 군사안보 전략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나토)의 군사적 영향력을 넓히는 차원으로 읽힌다는 관측이다.

중국판 ‘샹그릴라 대화’로도 불리는 ‘샹산(香山) 포럼’이 지난달 30일 미국 등 90여개국 대표단이 참석한 가운데  ‘공동안보, 지속가능한 평화’를 주제로 베이징 후난성 샹산에서 열렸다. 사진은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오른쪽)과 중국군 서열 2위 장유샤 중앙군사위 부주석이 샹산 포럼에서 만나고 있는 모습. (EPA/연합뉴스) 2023.10.31.
중국판 ‘샹그릴라 대화’로도 불리는 ‘샹산(香山) 포럼’이 지난달 30일 미국 등 90여개국 대표단이 참석한 가운데 ‘공동안보, 지속가능한 평화’를 주제로 베이징 후난성 샹산에서 열렸다. 사진은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오른쪽)과 중국군 서열 2위 장유샤 중앙군사위 부주석이 샹산 포럼에서 만나고 있는 모습. (EPA/연합뉴스) 2023.10.31.

‘샹산(香山) 포럼’은 중국판 ‘샹그릴라 대화’로도 불린다. 중국인민해방군 산하 중국군사과학학회에서 주최하는 포럼으로,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비롯한 국제 안보를 주요 의제로 한다. 지역 안보를 논의하기 위한 대화 채널이지만, 중국과 러시아는 이 자리를 빌어 미국의 도발 행위를 비난하고 서방을 견제하는 의지를 내비쳐왔다.

이번 대회에는 영국과 이란, 러시아, 사우디아라비아, 미국 등 90여개국 대표단이 참석했다. 대표단의 약 3분의 1은 국방장관과 참모총장급으로 구성됐다. 올해는 미국 측 대표단이 참석함으로써 중단된 미·중 양국 간 군사 대화 재개의 발판이 마련될 수 있을지에 관심이 모아졌다. 이번 포럼의 주제는 ‘공동안보, 지속가능한 평화’였다.

◆미-러 ‘아시아 영향력 확대’ 경쟁

러시아는 미국이 한국, 일본과 함께 주도하는 미사일 발사 관련 정보교환을 두고 러시아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것으로 본다. 미국 주도의 인도·태평양전략에 따라 미국과 동맹국들이 구축한 미국 중심의 네트워크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나토의 선봉 역할을 할 것이란 시각이다. 반면 미국은 러시아와 중국이 아태지역에 불확실성을 가중시킨다고 보고 있다.

실제 중국 환구시보에 따르면 이번 샹산 포럼에서 미국의 싱크탱크인 퀸시연구소의 마이클 스웨인 동아시아국장은 “중국의 발전이 아시아태평양지역의 전망에 불확실성을 가중시킨다”며 중국위협론을 제기하기도 했다.

러시아는 미국이 기후변화와 재난 등 각종 긴급상황에 대해 동맹국들과 군사안보 지평을 넓히고 있는 점도 눈여겨보고 있다. 쇼이구 장관은 “이전에는 인권 보호 문제에 중점을 뒀지만, 요즘은 인권침해 혐의를 제3국에 군대를 배치하기 위한 공식적인 근거로 간주되고 있다”고 판단했다.

러시아는 미국과 나토가 아태지역에서 군사 안보적 영향력을 확대, 강화하려는 움직임에 진작부터 맞불을 놔 왔다. 아시아태평양 지역(APR)의 관심 국가들과 장비공급과 합동훈련을 포함한 군사협력 및 군사기술협력(MTC)을 지속해왔고, 앞으로도 한층 돈독한 협력을 다짐하고 있다.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은 샹산 포럼에서 “우리는 군사 장비공급·유지, 인력 훈련, 합동훈련, 선박 방문 및 기타 관련 행사를 포함해 관심 있는 국가와 군사 및 군사 기술 협력을 지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세계는 러시아에 외교정책 우선순위를 조정할 것을 요구했으며,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는 아시아태평양 지역 국가들은 러시아 연방의 지리적 위치로 인해 전통적으로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며 아태지역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다만 러시아는 자국 국내법과 국제기준에 따라 군사기술협력 관련 활동을 수행하고 있으며, 제3국에 맞서기 위해 수행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내세웠다.

쇼이구 장관은 특히 “러시아는 미국과 우방국의 강력한 압력에도 불구하고 대다수가 반러시아 제재에 참여하지 않은 동남아시아 국가들과 협력을 늘리기 위해 일관된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달리 서방 일각에선 아시아에서 권력 교체가 일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을 포함한 러시아의 역할에 대해 불확실성이 크다고 보는 시각도 제기된다.

◆美 일극 체제서 ‘다극 세계’ 될까

러시아는 아세안을 중심으로 형성된 다자간 플랫폼에서 영향력을 강화하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쇼이구 장관은 “러시아는 ASEAN 회원국 국방장관 회의 체계가 맺고 있는 ‘대화 파트너(ADMM Plus)’ 국가들의 일원으로서 이미 2020~2023년 반테러 협력에 상당한 기여를 해왔다”고 했다. 그러면서 “러시아는 미얀마가 공동의장을 맡은 ‘SMOA+’에 지난 9월 말 12개국 군부대가 참가, 러시아 극동 지역에서 국제 대테러 훈련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고 설명했다.

위안화의 중국과 루블화를 내세운 러시아에 이어 인도네시아 등 신흥국가들이 통화 다극화 대열에 가세하고 있다. 사진은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가운데)이 지난달 5일(현지시간) 자카르타에서 제43차 아세안(ASEAN, 동남아시아국가연합) 정상회의 본회의를 주재하는 모습. (AFP=연합뉴스) 2023.10.03.
위안화의 중국과 루블화를 내세운 러시아에 이어 인도네시아 등 신흥국가들이 통화 다극화 대열에 가세하고 있다. 사진은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가운데)이 지난달 5일(현지시간) 자카르타에서 제43차 아세안(ASEAN, 동남아시아국가연합) 정상회의 본회의를 주재하는 모습. (AFP=연합뉴스) 2023.10.03.

SMOA+는 동남아시아 10개국(아세안) 국방부와 2010년 4월 베트남의 주도로 창설된 소위 ‘대화 파트너(ADMM Plus)’국들과 상호작용을 위한 메커니즘이다. 아세안의 ‘대화 파트너’ 국가에는 호주·인도·중국·뉴질랜드·한국·러시아·미국·일본 등이 포함된다.

이번 훈련에는 브루나이와 베트남, 인도, 인도네시아, 캄보디아, 중국, 라오스, 말레이시아, 미얀마, 러시아, 태국, 필리핀 출신의 군인 643명이 참여했다. 쇼이구 장관은 러시아가 오는 2024~2027년 열리는 ‘인도주의적 지뢰 제거에 관한 ADMA Plus 전문가 실무 그룹’ 회의에서 라오스와 공동 의장국으로서 협력을 강화할 준비를 마쳤다고 밝혔다.

호주·뉴질랜드·싱가포르·미국·한국·일본은 SMOA+ 훈련 참여를 거부했다. 쇼이구 장관은 “친서방 진영에서는 SMOA+ 메커니즘 작동의 실용적 지향성에서 벗어나 인권과 성별, 기타 핵심적이지 않은 점들을 문제 삼아 이 의제를 정치화하려고 시도해 왔다”고도 했다.

러시아는 지구촌 군사안보 측면에서 상하이협력기구(SCO)의 역할이 점점 더 분명해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쇼이구 장관은 “단일하고 불가분한 안보 원칙과 문화 다양성 존중을 바탕으로 공정한 다극 세계 질서를 형성해야 한다”며 “테러리즘과 분리주의, 극단주의, 마약 밀매, 국경을 넘는 조직범죄에 맞서 싸우고 정보 보안을 보장하기 위한 SCO의 노력이 지역 안정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난 2005년부터 정기적으로 치러온 합동군사훈련(평화사절단)이 점증하는 다단계 도전과 위협에 대응하는 SCO의 작전 잠재력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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