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격 ‘파라오’만 즐겼던 포도주
초기 왕조시대 왕묘 군서 나와
포도씨·유기물 등 잔류물 확인
주변 남성 파라오보다 큰 왕묘
“당대 최고 영향력 발휘한 왕”

이집트 최초의 여성 파라오로 추정되는 메르네이트 여왕의 무덤에서 발견된 포도주 항아리들. (빈 대학교) 2023.10.17.
이집트 최초의 여성 파라오로 추정되는 메르네이트 여왕의 무덤에서 발견된 포도주 항아리들. (빈 대학교) 2023.10.17.

[천지일보=최혜인 기자] 이집트 최초의 여성 파라오로 추정되는 여왕의 무덤에서 온전한 상태의 포도주 항아리가 수백개 무더기로 발견되면서 이목이 쏠리고 있다.

16일(현지시간) 폭스 뉴스와 데일리뉴스 이집트 등 외신을 종합하면 이집트 고고학자들은 이달 아비도스에 있는 제1왕조 메르네이트 여왕의 무덤에서 5000년 된 포도주 항아리 군을 발견했다. 그중 일부는 아직도 온전한 상태로 고대 포도주의 흔적이 남아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번에 비엔나 대학교의 고고학자 크리스티나 쾰러가 이끄는 독일-오스트리아 조사팀이 발굴한 대규모 유적물 중에는 수백 개의 대형 포도주 항아리가 포함됐다. 그중 많은 항아리가 양호한 상태로 고대 포도주의 잔류물로 보이는 유기 잔류물과 포도씨 등을 포함하고 있다. 성분은 과학적 기법을 동원해 분석 중이다.

크리스티나 쾰러는 “최근 아비도스에 있는 메르네이트의 무덤에서 고고학 발굴을 시작했다”며 “발견한 일부 와인 항아리는 매우 잘 보존돼 있고 원래 상태로 봉인돼 있었다”고 설명했다.

포도주 항아리가 발견된 메르네이트의 무덤은 초기 왕조 시대의 왕묘군인 아비도스 움엘카브 유적에 자리 잡고 있다. ‘Y 무덤’이라고 표기된 그의 무덤은 수십 개의 부속 무덤에 둘러싸여 있으며, 주변의 남성 파라오들 무덤과 견줘볼 때도 큰 규모에 속한다. 그는 아비도스에 있는 왕실 조상 묘지에 자신의 고유한 무덤을 받은 유일한 여성인 것으로 전해졌다.

빈 대학 조사팀은 “메르네이트 무덤군은 그녀 자신의 무덤 외에도 41명의 귀족과 하인의 무덤을 포함하고 있으며, 햇볕에 구운 진흙 벽돌과 점토·목재로 지어졌다”며 “신중한 발굴과 다양한 고고학 신기술 덕분에 우리는 무덤이 여러 건설 단계를 거쳐 오랜 기간 지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고 부연했다.

고고학자들에 따르면 고대 이집트는 초기엔 포도주를 생산하지 못한 채 전량 수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원전 3150년 무렵에 만든 스코르피온 1세의 무덤에서 발굴된 포도주 항아리가 이를 증명한다. 항아리의 재료는 이집트가 아닌 성경 속 이스라엘 민족이 차지했던 가나안 지역의 찰흙과 유사한 것으로 파악됐다.

당시 포도주는 돈이 있다고 구할 수 있는 게 아닌, 특권층을 위한 희귀한 음료였다. 오직 신을 위해 바쳐졌고, 신으로 추앙받던 ‘파라오’만이 음미할 수 있었다. 파라오가 죽으면 내세에서도 포도주를 마시도록 미라와 함께 무덤에 매장했는데, 이번에 그게 나왔다는 게 학자들의 분석이다. 조사팀은 “또 무덤에서 그간 베일에 가려진 메르네이트에 대한 새로운 중요한 정보를 발견했다”고 소개했다.

◆‘첫 여성 파라오’ 메르네이트

메르네이트는 기원전 3000년경 고대 이집트 제1왕조의 가장 카리스마 넘치는 인물이자 왕실의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이면서 가장 베일에 싸여 있는 인물로 꼽힌다. 고고학·비문학 자료에 따르면 학자들은 그가 제르(제1왕조의 3대 파라오)의 딸이자 제르의 왕위를 계승한 제트(4대 파라오, Djet 또는 Wadj)의 아내, 5대 파라오 덴(Den)의 어머니였다고 추측하고 있다. 왕실 혈통의 연속성을 확보함으로써 당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는 평가다.

비엔나 대학교의 고고학자 크리스티나 쾰러가 이끄는 독일-오스트리아 조사팀의 조사 모습. (빈 대학교) ⓒ천지일보 2023.10.17.
비엔나 대학교의 고고학자 크리스티나 쾰러가 이끄는 독일-오스트리아 조사팀의 조사 모습. (빈 대학교) ⓒ천지일보 2023.10.17.

다만 무덤 내부에서 나온 각종 기록물과 비석에 쓰인 그의 이름은 당시 왕명을 쓰는 데 따라붙었던 ‘세레크’와 함께 적히지는 않았다. 이는 여성이 처음으로 신으로 추앙받던 파라오 역할을 맡는 데 대한 당대 사회적 저항이 만든 결과라고 학자들은 보고 있다.

메르네이트의 역사적 중요성은 과거 1899년경 영국 이집트학자 플린더스 페트리가 그의 무덤을 발견한 이후 논쟁의 대상이 됐다. 그의 어린 아들이자 왕위 계승자가 성인이 될 때까지 정부를 책임진 섭정 왕후를 지낸 것부터 완전히 독립적인 통치자에 이르기까지 그 역할은 다양하다.

최근에는 독일 고고학연구소가 지난 1978년부터 아비도스의 움 엘-캅 왕실 묘지를 집중적으로 조사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조사에서도 메르네이트의 무덤과 그의 통치, 그리고 초대 파라오 국가 형성기에 가장 중요한 여성 중 한 명으로서의 인물상은 충분한 관심을 받지 못했다. 이러한 논쟁은 주로 비문학적 증거의 부족과 당시 그녀의 정확한 혈통과 정치적 중요성을 둘러싼 많은 의문 때문에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이와 관련 빈 대학 조사팀은 “비문은 메르네이트가 재무부와 같은 중앙 정부 기관을 책임졌음을 증명한다. 메르네이트 왕비는 당시 가장 강력한 여성이었을 것”이라면서 이는 그의 역사적 중요성에 관한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초기 왕조 시대의 왕묘 군인 아비도스 움엘카브 유적에 자리 잡고 있는  제1왕조 메르네이트 여왕의 무덤. 중앙에 있는 여왕의 묘실은 40개의 귀족과 하인들의 무덤에 둘러싸여 있다. (빈 대학교) ⓒ천지일보 2023.10.17.
초기 왕조 시대의 왕묘 군인 아비도스 움엘카브 유적에 자리 잡고 있는 제1왕조 메르네이트 여왕의 무덤. 중앙에 있는 여왕의 묘실은 40개의 귀족과 하인들의 무덤에 둘러싸여 있다. (빈 대학교) ⓒ천지일보 2023.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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