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논란에 인식 나빠져
한국인 종교적 성향도 옅어
"종교 ,정체성에 해답 줘야"

[천지일보 대구=송해인 기자] 교회 지붕 위에 걸린 십자가. ⓒ천지일보 2020.12.29
[천지일보 대구=송해인 기자] 교회 지붕 위에 걸린 십자가. ⓒ천지일보 2020.12.29

[천지일보=임혜지 기자] “전 태어날 때부터 선택의 여지 없이 교회를 다녔어요. 그런데 최근 들어 내가 왜 교회를 다니는지 모르겠더라구요. 그래서 ‘탈 종교’를 했습니다.” 

기독교 모태신앙을 갖고 태어난 최모씨는 한달 전부터 교회 출석을 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담임 목사의 설교가 지루할 정도로 애초 ‘신심’도 깊지 않았던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종교에 대한 인식이 갈수록 안 좋아지면서 스스로 종교인이라 밝히기도 거북스러운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최씨는 “어디가서 ‘나 교회 다닌다’고 말하기가 어느 순간 부끄러웠다”며 “차라리 무교를 택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해서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우리 사회에서 종교를 갖지 않은 ‘무교인’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이는 한국에서 종교의 영향력이 약화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최근 몇 년 새 하루가 멀다 하고 일부 종교단체 및 성직자들이 사회적으로 큰 논란을 일으키면서 종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확산했고, 급기야 ‘종교 기피’ 현상으로까지 번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13일 직장인 허모(34, 남)씨는 “교회를 다니면서 한번도 숨긴 적이 없었는데 최근 사이비를 다룬 프로그램 등이 논란이 되니 밖에 나가서 신자라고 밝히기 두렵다”며 “차라리 종교를 내려놓고 무교인이 되고 싶을 정도”라고 말했다. 

허씨의 말과 같이 최근 기독교복음선교회(JMS) 정명석 총재의 여신도 성폭행 혐의 등에 대한 영상물이 화제가 된 이후 기성 종교를 묶어 비판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직장인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자기들끼리 밥그릇 싸움을 하는 기존 종교도 다를 바 없지 않느냐’는 취지의 글이 올라와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 글에는 점점 세속화되는 종교계에 대한 ‘뼈 있는 지적’이 담겼다. 

개신교 등 기성 교계의 재정비리, 성추행, 종단 내 교권다툼, 각종 범죄로 인한 법정 소송, 코로나19 대면예배 강행 등은 꾸준히 사회 전반적으로 문제를 낳았다. 

세상을 가르쳐야 할 종교가 도리어 각종 문제를 일으키면서 부정적 인식이 확산하기 시작했다. 그래서일까. 최근 각종 통계에서는 종교가 없는 ‘무교인’들이 증가하는 추세가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한국리서치가 전국의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2 종교인식조사’에 따르면 ‘종교 없음’이라고 응답한 이들이 51%인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관이 4년 전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무교 비율이 48%인 것과 비교했을 때 3%p 늘어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여론조사업체 갤럽이 지난해 실시한 조사에서는 무교인의 절반이 넘는 61%가 “호감 가는 종교가 없다”고 답한 것으로 집계됐다. 

최근 갤럽이 세계 61개국 성인 5만 7768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종교적 성향과 실재에 대한 인식’ 설문에서는 한국인의 종교성이 유독 희미해졌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조사에서 신이나 사후세계, 천국, 지옥의 존재에 대해 60여개국 국민 60%가 ‘믿는다’고 답했지만, 한국인은 절반 수준에 불과했다.

또 다른 나라의 무신론자 비율이 10%에 그친 반면 한국은 34%에 달했다.

‘신의 존재’에 대한 인식도 극명한 차이를 보였는데 전 세계적으로 평균 72%가 신이 존재한다고 답했지만, 한국인은 41%만이 그렇다고 답했다.

천국과 지옥의 존재에 대해서는 전 세계 국민 각각 59%, 53%가 ‘있다’고 했지만, 한국인은 각각 30%, 29%에 그쳤다. ‘나는 종교적인 사람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도 61개국 평균 62%가 ‘그렇다’고 했지만, 한국인은 36%에 불과했다. 

종교계는 신자 수 급감 등 위기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일부 성직자들 사이에서는 “위기를 뚫을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다”는 호소도 나온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대한민국의 ‘종교 기피’ 현상이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적지 않다. 

무종교인이 폭증하는 이때 ‘개인과 공동체에 종교가 왜 필요한가’라는 종교의 정체성에 대한 해답을 줘야 한다는 제언이 나온다.

성해영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는 ‘종교 간 대화 추이와 전망’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통해 “무종교인들이 종교를 향해 품는 다양한 온도의 무관심은 종교의 부정적 행태나 폐해에 경종을 울리면서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종교의 새로운 역할을 찾도록 채근한다”며 “‘종교에 관한 대화’는 종교들의 상호 이해를 비롯해 종교의 근본적인 의미와 역할을 재발견하게 만듦으로써 종교가 공동체 구성원의 행복을 달성하는 밑거름이 되는데 촉매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종교가 개인과 공동체에 위안과 행복을 제공하지 못한다면 탈종교 현상은 한층 가속화될 것”이라며 “탈종교가 심화하면 종교의 소멸로 이어질 것이기에 ‘종교에 관한 대화’가 종교의 미래를 가늠하게 만드는 시금석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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