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환 유라시아전략연구소장/전 주러시아 공사

중국은 78년 개혁개방을 시작했을 때 한국의 경제발전을 부러워하고 한국으로부터 배우려 했다. 거대한 영토와 엄청난 인구를 가진 중국의 국내총생산이 1990년대 초에는 한국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그랬던 중국이 중국의 값싼 노동력을 활용하고자 하는 서방 기업들의 투자가 쇄도하면서 매년 두 자릿수의 경제성장률을 보이며 ‘세계의 공장’으로 부상했다. 이제 여러 분야에서 한국의 기술적 우위를 추월할 수 있는 수준이 됐고 국내총생산은 오래전에 한국을 추월해 2022년에는 한국의 10배가 넘는 규모이다. 중국은 현재 G2로 불리며 중국 중심 인류공동체의 구축이라는 거창한 목표를 설정해 놓고 있다.

다민족 국가인 중국은 개혁개방을 시작하면서 내부적 통합을 견고히 하기 위해 여러 역사공정을 추진했는데 우리 민족과 관련해서는 소위 ‘동북공정’ 사업을 벌여 고구려와 발해가 중국왕조의 지방정권이라는 터무니없는 논리를 개발했다. 중국이 최근 들어서는 왜곡의 범주와 대상을 확대해 한국에서 특히 청년층이 반발하고 있다. 그들은 한글은 한자 발음을 정확하게 표기하기 위한 것에 불과하다고 하고 김치와 한복은 중국이 원조이거나 중국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제3국에서 개최되는 동아시아 문화와 관련된 대학 강의 또는 국제학술행사에서 중국 유학생들 또는 학자들은 태권도, K-POP은 물론이고 심지어 김밥, 떡국, 떡볶이, 막걸리, 삼계탕 등 한국의 대중 음식까지 그 기원이 중국이라고 우기고 있다. 나아가 한국 민족은 중국에서 유래했다, 한국은 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문명인 중국의 영향 아래 문명화됐다, 한국 사람들은 한국의 거의 모든 것이 중국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잊고 있다, 한마디로 한국은 파렴치하게도 중국 문화를 ‘도둑질했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심지어 안중근과 윤봉길이 중국인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의 근거로 ‘한국이 중국의 속국이었다’라는 허구를 제시하고 있다. 중국의 젊은이들이 한국에 대해 이처럼 말도 안 되는 인식을 갖고 있다면 양국 관계의 장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

지난 20여년 사이 한국의 음악, 드라마, 영화 등 대중문화 콘텐츠가 해외에서 많은 사랑을 받아 전 세계적으로 한국어 학습 붐까지 일고 있다. 한류가 큰 성공을 거두면서 이에 비례해서 한국 대중문화의 이런저런 요소들에 대한 관심도 생겨났다. 반면 중국은 그들의 전통문화는 전 세계에 오랜 기간 알려졌으나 현시대에는 세계인의 관심을 끌 만한 문화콘텐츠를 생산하지 못하고 있다. 영국의 한 매체가 지적했듯이 한국의 대중문화가 세계인의 사랑을 받으면서 중국과 일본이 아니라 한국이 아시아의 대표로 인정받고 있다. 우리가 현재 보고 있는 중국의 행태는 문화열등생으로 전락한 중국이 세계인의 주목을 받는 한국의 대중문화를 자기 것으로 알리고 싶은 욕구에서 나오는 현상이라 할 수 있겠다. 중국인들의 마음속 깊은 곳에는 질투심과 시기심이 있는 것이다. 또한 우리 독립투사들과 관련해서는 중국의 항일 역사에는 그러한 영웅들이 없는 데서 오는 콤플렉스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17년 4월 미·중 정상회담에서 시진핑 주석이 ‘한국은 중국의 속국이었다’고 했다고 한다. 최근 중국인들의 언행을 보면 이런 생각이 단순히 최고지도자만이 아니라 일반 중국인들에게까지 교육기관과 언론매체를 통해 주입돼 내면화된 것 같아 심히 우려된다. 중국인들의 이런 경향에 대해 우리 사회에서 장년층은 상대적으로 둔감한 편이나 젊은 세대는 용납할 수 없다는 태도를 보이는 것은 다행스러운 현상이다. 그리고 해외에서 중국인들의 억지 주장에 대해 외국 학자들이 터무니없는 소리라고 반박하고 있는 것도 고무적이다. 우리 자신의 반박보다도 제3자 특히 서구 학자들의 논박은 중국인들의 억지 주장이 설 땅이 없게 만들 것이다. 해외에서 한국학의 보급과 진흥을 위해 더 많은 노력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본다. 어찌 보면 중국인들의 열등감을 그냥 지나칠 수도 있겠으나 적개심으로 발전할 수도 있는 바 앞으로도 계속해서 이웃으로 함께 살아가야 할 중국이기에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중국에 더해 일본과 관련해서도 생각해 볼 점이 있다. 우리는 일본에 대해 고대에 우리가 이런저런 것들을 전해 줬다고 하여 우월감을 느끼지만, 우리의 지리적 위치가 아시아 대륙과 일본 열도 사이라 대륙의 문물이 한반도를 통해 일본 열도로 흘러들어간 것을 갖고 우쭐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 한·중·일 세 나라의 조화로운 미래를 위해서는 국민들이 과거에 대해 그리고 서로에 대해 올바른 인식을 갖는 것이 긴요하며 세 나라 정부는 그러한 방향으로 특별한 노력을 기울여야 마땅하나 현재 진행 중인 과거사를 둘러싼 역사전쟁을 고려할 때 그러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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