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환 유라시아전략연구소장/전 주러시아 공사

바이든 대통령은 2월 20일 폴란드에 이어 전격 우크라이나를 방문했다. 어느 국내 유력지는 ‘첩보영화 같았던 우크라이나 방문’ ‘백악관 출입 기자들도 속인 바이든의 우크라이나 방문 007 작전’ 등 제하에 보도했고, 엘리옷 코언 존스홉킨스대 석좌교수는 어느 학술지 기고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키예프 방문이라는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행보를 취함으로써 푸틴의 복부에 강하게 한 방 먹였다”라고 평가했다. 그런데 러시아 매체에 따르면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이 “우리는 바이든 대통령이 워싱턴을 떠나기 수 시간 전에 러 측에 키예프 방문 계획을 통보했다”고 밝혔다. 메드베데프 전 러시아 대통령은 자신의 SNS에서 ‘바이든은 모스크바로부터 안전보장을 받았다’고 하며 그러한 보도를 뒷받침했다. 이번 키예프 방문은 미국 내에서 비난을 받기도 했다. 2월 초 독극물을 운반 중이던 열차가 오하이오주에서 탈선하면서 엄청난 양의 독극물이 유출돼 환경재앙이 발생했는데도 바이든 대통령은 그곳은 방문하지 않고 유럽 순방을 강행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우크라이나 전황이 불리해지거나 우크라이나에 대한 퍼주기식 지원을 놓고 여론이 악화하면 이번과 같은 쇼(?)를 벌였다. 지난 연말에는 젤렌스키 대통령을 미국으로 불러 바이든 대통령과 면담하고 미국 의회에서 연설하도록 했다. 최근 미국과 유럽연합은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추가했고 동맹국들에 대해 이에 적극 동참하라고 요청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미국은 자신의 이익이 걸린 분야에 대해서는 계속 제재를 유보하고 있다. 그간 미국과 유럽연합이 러시아에 대해 수많은 제재를 했지만 아직은 러시아 경제가 건재한 것 같다. 연초 국제통화기금은 올해에는 플러스 성장을 시현할 것으로 전망했다. 제재로 인해 러시아에서 푸틴 대통령의 입지가 흔들리기를 기대했으나 반대로 푸틴에 대한 지지가 상승했다.

그간 서방 각국이 이른바 ‘게임 체인저’라며 우크라이나에 각종 정밀 무기를 지원했지만, 전세를 역전시키지는 못하고 있다. 최근에는 러시아군의 대대적인 공세로 인해 특히 동부전선에서 우크라이나군이 밀리고 있다. 비 서방권 언론이 보도한 이스라엘 정보기관의 자료에 따르면 러시아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엄청난 병력 손실을 본 우크라이나는 현재 나이를 따지지 않고 남성들을 노상에서 강제징집하고 있다. 서방은 러시아가 무기와 포탄이 달린다고 하는데, 미국은 우크라이나 지원 목적으로 주한 미군을 비롯해 해외 미군 기지에서 장비와 포탄을 빼내고 있다. 미국에서 이번 전쟁으로 이득을 보는 집단은 바이든 대통령을 비롯한 민주당, 방산업체, 에너지 기업 등뿐이고 절대다수 미국 시민들은 전쟁이 계속되는 것을 반길 이유가 없다.

미국은 전쟁 발발 이전부터 분명히 했듯이 미군의 희생 없이 우크라이나를 이용해 러시아에 대해 제한전을 펴고 있는데 미국이 추구하는 바는 과연 무엇인가? 이제 1년을 넘긴 전쟁의 양상을 보면 미국 등 서방이 계속해서 무기를 지원한다 해도 우크라이나가 승기를 잡을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우크라이나인들의 희생만 늘어날 뿐이다. 우크라이나인들이 아무리 더 많이 희생되더라도 러시아를 약화시킬 수만 있다면 전쟁을 계속하라고 부추길 것인가? 전쟁이 계속되더라도 러시아가 점령한 영토를 회복한다는 보장이 없으며 우크라이나만 피폐해진다는 점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은 하루바삐 결단을 내려야 한다. 러시아도 적지 않은 병력 손실은 물론 막대한 전쟁비용 때문에 앞으로 국내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는바, 전쟁의 목표가 영토 획득이 아니라 나토로부터의 안보 위협을 해소하고 돈바스 지역의 러시아계 주민을 우크라이나 정부의 핍박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이라면 이제 정치적 타결을 모색할 때이다. 미국과 나토가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2월 하순 중국이 우크라이나 사태 해결을 위한 평화 안을 제시한 바 있다.

한편 전황이 우크라이나에 불리해질수록 전황에 대한 서방의 왜곡 보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그런데 국내 매체들은 현지 취재 능력이 없음을 고려하더라도 편향적인 보도로 일관하고 있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은 지난 1월 말 방한해 한국도 우크라이나에 대해 살상 무기를 지원하라고 요청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지난 24일 한국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지원을 희망한다고 하면서 “한국에 관해 다른 나라들과 의논 중인 구체적 사안들이 있다”고 덧붙였다. 또한 포노마렌코 주한 우크라이나 대사는 지난달 27일 한국국방연구원이 주최한 특별 세미나에서 “한국 정부가 살상 무기를 공급할 수 있는 해결책을 찾길 희망한다”고 했다. 나토와 우크라이나의 살상 무기 지원 요청이 점점 압박 수준이 돼 가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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