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스포츠 칼럼니스트·스포츠학 박사

태권도장 사범들은 요즘 우렁찬 기합소리가 넘쳐나던 시절을 그리워한다. 어머니 손을 잡고 도장에 온 많은 ‘고사리손’ 원생들이 “얏, 얏” 소리를 지르며 하얀 도복을 입고 손발짓을 하던 때였다. 사범들은 2000년 시드니올림픽 때부턴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돼 국기 태권도를 이끌어 나갈 태권 꿈나무들을 지도한다는 긍지와 사명감으로 넘쳐났다. 

하지만 요즘 태권도장 분위기는 확 달라졌다. 원생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도장에는 썰렁한 찬바람이 불 뿐이다. 예전에 비해 원생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세계 최악인 저출산 분위기가 태권도장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합계 출산율이 0.78명으로, OECD 38국 중 유일하게 출산율이 1명 미만인 국가다. 1991년만 해도 합계 출산율 1.71명, 한 해 출생아 수 71만명이었는데 한 세대 만에 출산율은 절반으로, 출생아 수는 3분의 1로 추락했다. 이대로 가면 나라와 사회가 붕괴할 수 있다는 우려가 눈앞의 현실로 다가와 있다. 

지난 28일 국기원 주최로 열린 ‘국기태권도 법제화 이후의 과제연구포럼’에선 태권도의 국기지정 의미와 당면과제, 그리고 미래 전략 등에 대해 발표와 토론이 이어졌다. 이날 포럼에서 관심을 끌었던 것은 일선지도자인 신명희 고려태권도장 관장이 전한 ‘태권도 바우처에 대한 현장의 목소리’였다. 신 관장은 “저출산의 위기가 일선 태권도장의 위기가 됐다”며 “지금 일선 도장에선 원생들이 눈에 띄게 줄어 생존을 걱정해야 할 판”이라고 밝혔다. 

2020년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지난 3년간 ‘마스크’ 속에 원생 교육을 진행했던 태권도 도장들은 심각한 저출산 상황으로 악전고투를 하고 있는 모습이다. 태권도장 교육생은 90% 이상이 초등생 이하이다. 따라서 저출산 여파를 직접 체감할 수밖에 없다.

도장마다 원생들이 급감하는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는 게 신 관장의 말이다. 한 도장이 100~150명 이상을 받아야 정상적 운영이 가능하지만 이미 수년 전부터 100명 이하로 떨어지며 운영에 심각한 차질을 빚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지난 2018년 국기태권도 법제화 이후 일선 태권도장에서 크게 달라진 것을 느낄 수 없다”며 “오히려 안전 문제를 내세워 원생들을 실어나르는 어린이 통학버스 운영 규정이 크게 강화됐고, 도장 세부 운영지침도 까다로워졌다”고 말했다.    

세계태권도 중앙도장인 국기원은 국내 태권도장의 운영난을 덜어주기 위해 각종 정책지원을 모색하고 있다. 국기태권도 법제화 이후 정책의 효율성과 실효성을 거두기 위한 다양한 지원책을 내놓고 있기도 하다. 정부의 태권도 지원금으로 문재인 정부 시절 1700여억원을 받았지만, 윤석열 정부에선 아직 지원금 규모를 책정하지 못하고 있는데, 좀 더 많은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모습이다.

신 관장을 비롯한 일선 태권도장 관장들은 저출산 대책과 연계해 최근 결혼하는 신혼부부 10쌍 중 1쌍이 다문화 가정임을 고려해 ‘다문화 태권도 바우처’ 사업을 정부지원으로 운영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다문화 지원을 저출산 대책의 하나로 꼽고 있는 만큼 다문화 태권도 바우처 사업을 연계하면 출산율 반전의 기회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국기 태권도는 우리나라의 무도에서 세계의 무도로 질적인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저출산 대책과 함께 우리나라와 가까운 동남아 국가 출신의 다문화 가정 아이들이 어릴 적부터 태권도를 배울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태권도를 배우고 자란 다문화 가정 아이들이 커서 ‘태권도 문화 전도사’로 앞으로 우리나라의 중요한 시장으로 떠오른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1억 이상의 인구 대국인 동남아시아에서 ‘K-컬처’를 이끌어 나가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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