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련 도중 등줄쥐에 감염돼

발열 진단감별 키트 미사용

 

경찰, ‘업무상과실치사’ 입건

검찰 ‘혐의없음’ 불기소 결정

유족, 재정신청·인권위 진정

 

“후송 빠르면 상황 달랐을 것”

軍에 ‘신속 대응체계’ 마련 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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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사단 신병교육대대 각개전투훈련장에서 훈련병들이 훈련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천지일보=최혜인 기자] 최근 ‘신증후군출혈열(한타바이러스)’에 감염된 육군 병사의 사망이 군 의료의 부실 탓이라는 판단이 나왔다.

국가인권위원회는 A일병 사망 사건에 대해 군 당국이 장병의 생명권·건강권 보호 의무를 다하지 못한 사건으로 판단하고 국방부 장관에게 재발방지대책을 마련하라고 권고했다.

16일 인권위에 따르면 지난 2020년 7월 강원도 철원 육군 6사단에서는 A일병(당시 22세)이 오한·발열 증상으로 대대 의무실 진료를 거쳐 사단 의무대에 입원한 일이 발생했다.

A일병은 입원 후에도 39.3℃에 이르는 증상이 나아지지 않아 혈액검사를 받으려 했으나, 사단 의무대에 있던 혈액검사 기기의 고장으로 한타바이러스 감염을 제때 진단받지 못했다.

이후 병세가 급격히 나빠져 국군 모 병원에서 분당 모 민간병원으로 전원 조치됐고, 결국 다음날 ‘한타바이러스 감염으로 인한 패혈성 쇼크’로 숨졌다. A일병이 걸린 한타바이러스는 등줄쥐 등 설치류를 통해 감염되는 바이러스로 급성 발열성 질환인 신증후군출혈열을 발병시킬 수 있다. 주로 건조된 설치류의 배설물에서 호흡기를 통해 전파된다.

그의 사망 이후 국군의무사령부는 역학조사에 들어갔다. 먼저 A일병 소속 부대 주둔지에서 한타바이러스를 가진 등줄쥐 총 8마리를 채집했으나, 유전자 분석 결과 사망자 유전자와 60%만 일치한다는 결과를 얻어 이 지역을 감염지역으로 단정할 수 없었다.

이어 장소를 옮겨 A일병이 머무른 훈련장을 대상으로 조사가 진행됐다. 이곳에서 채집된 등줄쥐와 사망자 유전자는 99.9% 일치했다. 결국 A일병은 ‘마일즈 훈련’에 참여해 훈련장에서 야외식사하던 중 등줄쥐라는 감염원에 노출돼 감염된 것으로 밝혀졌다.

◆軍 수사·재판 진행 과정 보니

같은 해 군사경찰은 피해자의 담당 군의관 임무를 수행하던 대위와 당직 군의관 대위 2명 등 3명을 ‘업무상과실치사’로 각 입건했다.

담당·당직 군의관들이 발열 원인 파악과 치료 등 환자 생명을 보호하는 데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해야 할 업무상 주의 의무가 있음에도, 사단 의무대에서 보유 중인 혈액검사 장비의 고장으로 혈액검사를 시행하지 않았다는 혐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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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들이 대전시 유성구 국군대전병원에 이송되고 있다. (출처: 뉴시스)

특히 여기에는 한번이라도 39.0℃ 이상 발열이 있을 시 차상급 의료기관으로 즉각 후송해야 함에도 후송하지 않았다는 점, 한타바이러스 등 5대 감염병을 진단할 수 있는 검사 키트를 사단 의무대가 보유하고 있는 것을 인지했음에도 적극적으로 검사하지 않는 등 ‘군 발열 환자 관리지침’을 준수하지 않았다는 점도 반영됐다. 

또 당직 군의관 2명이 피해자의 증상을 ‘상기도 감염(감기)’으로 판단하고 해열제·수액 처방 등 대증치료(피해자의 증상에 따른 치료)만 했을 뿐 군의관으로서 피해자의 발열 원인을 찾기 위한 노력과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군 경찰은 판단했다.

그러나 군 검찰(보통검찰부)은 위 군의관 3명에 대한 업무상과실치사 사건을 접수한 다음 해인 2021년 3월 이 사건을 ‘혐의없음’으로 불기소 결정했다. 당시가 한타바이러스의 호발 시기(10∼12월)가 아니었던 점, 한타바이러스에 대해 특별한 치료법이 없어 대증치료가 일반적인 점 등을 이유로 업무상 과실이나 과실과 피해자의 사망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다만 ▲피해자의 증상을 감기로 진단한 사실 ▲발열 진단감별 키트의 존재를 알면서도 사용하지 않은 사실 ▲예방접종 여부를 확인하지 않은 사실 ▲제초작업 및 야외훈련 활동 여부를 확실하게 문진하지 않은 사실 ▲군 발열 환자 관리지침을 위반한 사실 등은 인정됐다.

이후 군은 보병사단 의무근무대 담당 군의관 대위에게 ‘명령 불복종’으로 견책이라는 징계를 내렸다. 아울러 군은 사건 발생 이후 당초 위험지역(경기·강원 전 지역과 질병 발생지역 부대) 장병을 대상으로만 한타바이러스 예방백신을 접종하던 것을 2021년 5월부터 전군 대상으로 확대하기도 했다.

이와 별개로 고인의 부친은 검찰의 불기소 결정에 불복해 재정신청을 제기했다. 재정신청은 검사가 고소나 고발 사건을 불기소하는 경우, 그 결정에 불복한 고소인 또는 고발인이 법원에 그 결정이 타당한지를 다시 묻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고등군사법원은 같은 해 12월 재정신청서와 기록만으로 군 검사의 처분이 부당하다고 인정하기엔 부족하고, 또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재정신청을 기각했다. 이에 고인의 부친은 군에서 적절한 의료조치가 이뤄지지 않아 피해자의 생명권이 침해됐고, 이들에 대한 적절한 수사와 처벌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내용의 진정을 인권위에 제기했다.

◆직권조사 들어간 인권위, 결과는?

진정을 접수한 인권위는 곧바로 직권조사에 착수했다. 조사결과 이 사건 피해자는 한타바이러스 감염에도 불구하고 보병사단 의료진의 미흡한 문진, 발열 진단감별 키트 미사용, 혈액검사기 고장의 사유로 인해 초기에 확진을 받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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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시 국군수도병원에 마련된 예방접종센터에서 육군 수도군단 장병들이 백신을 맞기 위해 줄지어 서 있다. (출처: 뉴시스)

인권위가 각 군 사단급 의무실별 급성 발열성 질환 혈액검사기(자동 혈구 분석기)와 발열 진단감별 키트 보유현황을 확인한 결과 각 군 사단급 부대 대부분은 급성열성 질환을 조기에 진단할 수 있는 발열 진단감별 키트를 보유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그렇지 않은 경우는 인근 국군병원이나 민간병원으로 위탁해 검사하는 체계를 갖추고 있었다. 반면 군의 최근 5년간 급성열성 질환 감염 통계에 따르면 사단 의무대에서 급성열성 질환에 대해 확진 판정을 내린 사례는 한 건도 없었다.

이에 인권위는 군 당국이 A일병에게 증상이 생겼을 때 제초작업·야외훈련 여부를 확인하고, 그에 따라 발열 진단감별 키트 등을 사용해 조기에 확진 판정을 한 다음 상급의료기관으로 후송했더라면 사망까진 이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봤다. 군 당국이 장병에 대한 생명권·건강권 보호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는 결론이다.

게다가 군이 한타바이러스 예방백신 접종 대상을 전군으로 확대했다곤 하나 백신 접종률은 2020년 62.8%에서 2021년 42%로 더욱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3차 접종의 경우에는 13.5%에 불과한 것으로 확인됐는데, 이는 최초 접종 이후 자대 배치에 이르기까지의 접종 이력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풀이될 수 있는 대목이다.

◆국방부에 재발방지대책 마련 권고

이에 인권위는 전 장병을 대상으로 한타바이러스의 위험성·예방의 중요성을 알리는 한편 일선 부대 지휘관들에게 접종 이력 관리의 중요성을 주지시키고, 국군의무사령부를 중심으로 관리체계를 확립할 것을 국방부 장관에게 권고했다.

이번 권고에는 사단급 의료진에게 발열 환자 진료 시 군부대 특성을 고려해 야외활동 이력 등을 파악하는 구체적인 문진을 하도록 할 것과 사단급 의무근무대 이상 군 의료시설에 급성열성 질환을 진단할 수 있는 발열 진단감별 키트를 빠짐없이 갖추도록 할 것, 발열 환자 진료 시 가용한 검사장비를 적극 활용해 조기 진단할 수 있도록 할 것도 포함됐다.

이밖에 상급병원이나 민간병원을 포함한 인근 병원으로 급성발열 환자를 후송할지 판단할 때 군 발열 환자 관리지침을 위반해 환자 이송을 지체하는 사례가 재발하지 않도록 대책을 수립할 것을 주문했다.

인권위 군인권조사과 조사관은 본지에 “국방부가 사고 이후 접종 대상을 전 장병으로 확대한 건 의미가 있지만 그 이후에 관리가 잘 안 된 점이 확인됐다”며 “백신 접종 이력 관리가 1차까지만 되고 나머지 2차·3차까진 안 되고 있고, 파상풍 접종률이 90%에 달하는 것에 비해 한타바이러스 접종률은 너무 낮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한타바이러스 접종이 강제접종이 아닌 데다 치료법이 따로 없고 대증치료 해야 하는 바이러스다 보니 국군의무사령부 주도의 철저한 접종 이력 관리와 함께 적극적인 홍보가 필요하다”며 “야외활동이 잦다는 군인들의 특성을 고려해 발열 진단 키트와 혈액검사 등을 통한 즉각적인 진단이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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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한 청해부대 34진 문무대왕함(4천400t급) 장병들이 탑승한 버스가 지난 20일 오후 경기도 이천시 국방어학원에 마련된 생활치료센터로 들어가고 있는 모습. (출처: 연합뉴스)

한편 한타바이러스 발생 환자는 질병관리청의 감염병 감시 연보(2021년) 기준 전년 270명 대비 14.8% 증가한 310명인 것으로 집계됐다. 지역별로 전북 76명, 전남 45명, 충남 43명, 강원 32명 순이다.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에서 발생하는 한타바이러스 감염병의 치사율은 최대 15% 수준이고, 미국을 포함한 북미, 남미 대륙의 경우 폐부종을 일으키기에 치사율이 35∼40%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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