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정치평론가

 
국민이 무섭다. 아니 우리 국민이 정말 대단하다. 남양유업 한 영업사원의 ‘막말전화’파문이 급기야 소비자들의 불매운동으로 확산되고 있다. 편의점 등의 가맹점주들이 남양유업 제품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대형 마트나 동네 가게에서도 남양유업 제품들이 팔리지 않고 있으며, 심지어 왜 남양유업 제품을 갖다 놓느냐고 따지는 소비자들도 많다고 한다. 남양유업 측은 창사 이래 최대 위기라고 하소연이다. 사실 대기업이 우월적 지위를 남용해 협력사나 대리점 등에 각종 횡포를 부려왔으며, 이는 비단 남양유업만의 문제는 아니다. 이른바‘갑을관계’로 상징되는 ‘힘 있는 사람들’의 횡포와 ‘힘 없는 사람들’의 눈물, 그 간극은 우리 사회에서 이미 깊고 오래된 갈등구조의 핵심 요소였다.

경제민주화, 정치담론의 위력

우리 경제가 대기업 중심으로 고속성장을 할 때 누군가는 그 희생을 감수해야만 했다. 시장경제에서의 공정성이나 합리성 같은 것은 먼 나라 얘기였고 대기업의 독점과 횡포 심지어 수탈에 가까운 억압에서도 그저 살기 위해 눈물과 고통을 감내했던 사람들의 분노가 이처럼 공론화된 적이 별로 없었다. 유통과 물류 등의 업계를 비롯해 대기업과 거래하는 자영업자들까지 조직적인 반격에 나서고 있다. 말 그대로 ‘을의 반란’이 시작되는 모양새다.

물론 ‘갑을관계’가 생긴 것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오래 전부터 재벌 중심의 시장경제가 강화되면서 ‘갑을관계’는 더 뚜렷하게 사회경제적 지배구조를 형성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원청업체와 하청업체 그리고 정규직과 비정규직 등 곳곳에서 이러한 갑을관계는 이미 일상화되다시피 했다. 그 지배구조 속에서 을은 부당한 줄 알면서, 사실상 수탈에 가까운 폭력적인 지배구조인 줄 알면서도 침묵하거나 홀로 눈물을 삼켜왔던 것이다. 괜히 잘못 보이면 회사가 망할까봐, 또는 쫓겨날까봐 침묵의 고통을 감내했던 것이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고 있다. 2011년 ‘10.26 서울시장 보선’은 사회적 복지 인프라에 관한 공론의 장을 만들어 냈다. 무상급식이 그 화두가 된 셈이다. 그 이후 정치권이 복지정책을 놓고 경쟁하고 또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대선에서 무상보육 공약을 내건 것도 이러한 시대의 흐름을 제대로 간파했기 때문이다. 남양유업의 막말 사태도 그 자체만으로는 별 것 아니다. 그동안 너무도 흔한 일이었으며, 심지어 갑의 횡포로 인해 목숨까지 버리는 을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러나 무서운 것은 역시 시대가 바뀌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 중심에 민심이 있다는 사실이다. 남양유업 막말사태가 현 시점에서 갑을관계라는 보다 본질적인 문제로 공론화가 이뤄지고 화난 민심이 불매운동으로까지 확산되는 데는 시대적 흐름과 그 흐름을 주도하는 사회적 화두와 직결돼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경제민주화론’이다.

동네 편의점에 가보면 남양유업 제품을 거부한다는 안내문이 적혀있다. 그 이유로 경제민주화를 거론하고 있다. 그동안 편의점들도 을의 입장에서 얼마나 많은 고통을 느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경제민주화는 동네 편의점에서도 거론할 정도로 이미 시대적 화두가 된 것이다. 사실 경제민주화의 기본 취지가 바로 갑의 횡포를 국민의 이름으로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어디 그 뿐인가. 국회에서도 경제민주화법이 하나씩 입법화되고 있다. 이처럼 시대가 바뀌고 국민의 수준도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시대변화에 밀리면 개인이든 기업이든 살아남기 어렵다. 이것이 발전이요, 희망의 근거이다. 정치민주화가 권력의 독점과 전횡을 막았듯이, 경제민주화도 자본의 독점과 횡포를 해소할 수 있을지 자못 귀추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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