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세서 받고 있지 않다’ 17%
위반에 과태료 부과 고작 5건
계약서 작성·교부 위반도 22%
“‘법 안 지켜도 돼’ 의식 팽배”
“적극적인 법 집행 이뤄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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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일보=박준성 기자]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소속 조합원들이 2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광장과 숭례문 일대에서 열린 ‘7.2전국노동자대회’에서 임금·노동시간 후퇴 저지, 비정규직 철폐, 물가 안정 대책, 민영화 저지 등을 촉구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2.07.02

[천지일보=최혜인 기자] #1.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아 등록된 회사명을 모릅니다. 구인정보에 4대 보험·기본급·식대 등이 적혀 있었는데 계약서도 안 쓰고 있어요. 임금·근무시간·연차 등을 전혀 알 수 없는 상태라 월급 계산도 안 되고 4대 보험도 됐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2. 백화점에 입점한 회사입니다. 근로계약서도 쓰지 않았고 월급명세서도 주지 않았습니다. 퇴사한 직원은 2주가 넘었는데도 월급을 주지 않아 회사에 얘기해서 겨우 받았다고 하더라고요. 공제내역도 모르고 그냥 월급을 받고 있는데 방법이 없을까요.

근로기준법 제48조(임금 대장·명세서)에 따르면 사용자는 임금을 지급할 때 근로자에게 임금의 구성항목과 계산방법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항을 적은 임금명세서를 서면(전자문서 포함)으로 교부해야 한다. 이를 위반할 경우 최대 500만원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근로계약서와 임금명세서는 일터에서 약속이라고 할 수 있는데, 계약서를 통해 본인의 임금·노동시간·휴가 등을 확인할 수 있고 임금명세서를 통해 월급이 제대로 지급됐는지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주당 윤건영 의원실이 고용노동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법이 시행된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6월까지 8개월간 노동부에 신고된 ‘임금명세서 작성·지급 의무위반’ 사건은 854건이었으며, 그중 과태료를 부과한 건수는 5건, 고작 0.6%에 그쳤다. 개선지도 378건(44.2%)과 기타 종결 381건(44.6%)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특히 노동부의 ‘근로계약서 위반사건 처리현황’을 보면 지난 3년 6개월간 5만 1481건이 신고됐는데 ‘기타 종결’이 2만 6729건(51.9%)으로 가장 높았고, 기소가 1만 7734건(34.4%)을 차지했다. 신고사건 3건 중 1건만 벌금형으로 기소되고 있는 셈이다.

또 올해 1~7월까지 시민단체 직장갑질119에 접수된 신원이 확인된 제보를 보면 총 1101건 중 직장 내 괴롭힘이 719건(57.1%)으로 가장 많았고, 임금 265건(21.0%), 징계·해고 233건(18.5%), 근로계약 121건(9.6%) 순으로 이어졌다.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고 임금명세서를 주지 않는 ‘불법 사장’들이 여전히 우리 사회에 많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또 직장인들을 상대로 ‘월급도둑 신고’를 받아 사업장 10곳에서 근로기준법 위반 사실도 확인했다. 10곳 중 8곳이 30인 미만 사업장이었지만 2곳은 100명이 넘는 중견기업에 속했다. 이에 이들 단체는 노동부에 이달 공문을 보내 신고인의 신원이 드러나지 않도록 법 위반 사업장에 대해 근로감독 등의 조치를 취하고 과태료를 부과할 것을 요청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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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일보=남승우 기자] 근로자의 날을 하루 앞둔 30일 서울 종로구 청계천로 아름다운청년 전태일기념관에서 ‘전태일 기념관 개관식’을 마친 뒤 시민들이 전시공간을 둘러보고 있다.

◆비정규직·저임금, 위법에 더 노출

“간호사로 다른 병원에 파견 나가 일하고 있는데 병원에서 월급명세서를 한 번도 주지 않았습니다. 월급이 잘못 들어왔으면 이야기하라고 하는데 명세서를 주지 않으니 확인을 할 수가 없는 거죠. 몇 번이나 달라고 했지만 기다리라는 말만 계속하더라고요.”

직장갑질119와 공공상생연대기금이 지난 6월 여론조사 전문기관에 의뢰해 전국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임금명세서를 교부받고 있다’는 응답이 82.6%, ‘받고 있지 않다’는 응답이 17.4%로 나타났다. 임금명세서를 통해 기본급이 얼마인지, 연장·야간·휴일근무를 몇 시간해서 총급여가 얼마인지, 세금을 제외한 실수령액이 얼마인지를 알 수 있음에도 못 받고 있는 근로자들이 적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특히 일터의 약자인 비정규직(30.8%)과 5인 미만(48.1%), 월 150만원 미만(35.1%) 노동자들이 임금명세서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임금명세서 교부·허위작성에 과태료를 부과하고 있는 것에 대해 ‘모르고 있다’는 응답도 51.8%로 ‘알고 있다’는 응답(48.2%)보다 높았다.

임금명세서의 경우와 같이 근로기준법 제17조에 따르면 사용자는 임금의 구성항목·계산방법·지급방법, 소정근로시간, 휴일, 연차휴가에 대한 사항이 명시된 계약서 서면을 근로자에게 교부해야 한다. 그러나 계약서 작성·교부와 관련해 ‘작성하고 받았다’는 응답이 77.4%, ‘작성했지만 받지는 않았다’ 11.7%, ‘작성하지도 않았다’ 10.9%로 법을 지키지 않았다는 응답이 22.6%나 됐다. 마찬가지로 비정규직(32.8%), 5인 미만(43.5%), 월 150만원 미만(40.4%)에서 법 위반이 높게 나타났다. 임금명세서와 근로계약서 모두 사용자 10명 중 2명 가까이가 법을 위반하고 있는 것이다.

박성우 노무사는 “노동자가 어렵게 사용자의 노동법 위반행위를 신고해도 사용자가 그때 시정만 하면 처벌받지 않는 것이 노동법 집행의 실태”라며 “임금명세서 위반 과태료 부과가 고작 5건이라는 사실은 노동법을 안 지켜도 되는 법이라고 정부가 앞장서 홍보하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노동부는 법 위반 사업장에 대해 벌금과 과태료를 부과하고 근로기준법·임금명세서 위반 신고가 재발한 사업장에 대해 근로감독을 벌여 불법을 바로잡아야 한다”며 “정부가 적극적인 법 집행을 통해 새 제도가 정착할 수 있도록 철저한 준법의 사회적 신호를 줘야 할 것”이라고 요구했다.

한편 이번 조사는 여론조사 전문기관 엠브레인퍼블릭에 의뢰해 지난달 10∼16일 온라인으로 이뤄졌다. 오차범위는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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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내 괴롭힘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천지일보 2022.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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