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부동산 수익률 부진 영향
요구불예금·증시자금·대출↓
은행 고금리 특판 연이어 출시
조건 까다로워 ‘미끼상품’ 지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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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권. (출처: 뉴시스)

[천지일보=김누리 기자] 지난달 5대 은행의 예·적금이 약 한 달 만에 34조원 불면서 상반기 동안 유입된 자금보다 큰 규모를 기록했다. 사상 첫 빅스텝(한 번에 기준금리 0.50%p 인상) 영향으로 수신(예금) 금리가 뛰면서 은행 정기 예·적금에 시중 자금이 몰려든 것이다.

기준금리 인상으로 안전자산 선호현상이 커지면서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개인들이 주식 등 위험자산을 매도해 예·적금에 넣거나 가계대출이 뚜렷하게 줄어드는 등 ‘역(逆) 머니무브’가 본격화되고 있다. 

이에 최근 은행들이 고금리 예·적금 특판 상품을 잇달아 내놔 ‘완판 행렬’을 이어가고 있지만, 우대금리 조건이 까다로워 미끼상품을 판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 11일 기준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은행의 정기 예금과 정기 적금의 잔액은 각각 718조 9050억원, 38조 5228억원으로 전월 말보다 6조 4599억원, 4061억원 늘었다.

지난달 5대 은행 정기 예·적금이 28조 56억원 늘었던 것을 고려하면 약 40일 만에 34조원 이상 급증한 셈이다. 이 기간 늘어난 정기 예·적금은 올해 상반기(1∼6월) 증가액(32조 5236억원)보다도 많다.

주식, 부동산 등 자산의 수익률이 부진해지자 투자처를 찾지 못한 자금이 상대적으로 안전한 은행 정기 예·적금으로 돌아온 것으로 분석된다. 

실제로 한은의 빅스텝 직후 시중은행들은 예·적금 금리를 즉각 최대 0.90%p 인상한 바 있다. 14일 은행연합회 공시에 따르면 5대 은행이 판매하는 1년 만기 정기예금과 적금 금리(우대 적용 단리 기준) 상단은 각각 3.60%, 5.50%였다.

증시와 부동산 시장 등 부진한 흐름을 보이면서 위험투자 회피 심리가 이어지고 안전자산을 선호하는 현상이 뚜렷해지면서 은행 요구불예금과 증시 주변 자금, 가계대출 등이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대기성 자금으로 분류되는 은행 요구불예금은 7월 빅스텝 단행 이후 한 달 동안 36조 6033억원 줄어든 데 이어 이달에도 지난 11일(잔액 661조 3138억원)까지 12조 464억원이 추가로 빠져나갔다. 요구불예금과 수시입출금식 저축성예금(MMDA) 등은 통상적으로 금리가 연 0.1% 수준에 불과한 저원가성 핵심예금으로 자금조달 비용으로 쓰이고 있다. 

증시 주변 자금도 7월 초(169조 3000억원)보다 2조 2509억원 줄어들어 167조 504억원 수준을 기록했다. 가계대출 잔액도 696조 6191억원으로 전월 말(699조 6521억원) 대비 3조 330억원 줄었다.

이 같은 추세에 은행들이 최근 고금리 예·적금 특판 상품을 내놓고 있지만, 실제 혜택 대상군이 소규모로 설정되거나 달성하기 쉽지 않아 ‘낚시 마케팅’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카카오뱅크는 출범 5주년을 맞아 지난달 말부터 ‘26주적금’에 5%p 우대금리 쿠폰을 발급해 최대 8.5% 금리를 제공하고 있다. 해당 상품의 기본금리는 3%로, 26주 연속 자동이체하면 0.5%p, 1만명 추첨 이벤트에 당첨되면 5%p 추가 우대금리가 주어진다. 다만 광고에 나온 8.5% 금리를 받기 위해선 추첨 이벤트에 당첨돼야 한다. 

신용카드 신규발급 및 일정 금액 이용을 조건으로 내세우는 예·적금 상품도 적지 않다. 우리은행의 최고 연 7.00% 금리를 제공하는 ‘우리 Magic 적금 by 롯데카드’는 우대금리(5.50%) 중 롯데카드 관련 우대금리가 5.00%에 달한다. 이를 다 받기 위해선 적금 가입일 월초부터 최종만기일 전월까지 600만원 이상 신용카드를 사용해야 하며 자동이체 건수를 매월 1건 이상 보유해야 한다. 우리은행 관련 우대금리 0.50%포인트는 오픈뱅킹 서비스에 가입하고, 상품·서비스 마케팅에 동의해야 받을 수 있다.

신한카드와 우정사업본부가 판매하는 ‘우체국 신한 우정적금’의 최고금리는 9.7%지만 이를 위해 신한카드 신규발급, 우체국 예금 신규가입, 자동이체 8회 등 까다로운 조건을 만족시켜야 한다.

하나은행의 ‘내집마련 더블업 적금’은 연 5.50% 금리를 주지만, 하나은행의 주택청약종합저축에 가입한 날 단 하루만 가입할 수 있어 가입 조건 자체가 다소 까다로울 수 있다.

신용카드 발급으로 고금리 혜택을 받는다고 무조건 이익을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예·적금과 연계해 신용카드를 발급받으면 네이버페이·카카오페이 등에서 진행하는 신용카드 신규발급 이벤트에 참여할 수 없게 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다. 네이버페이·카카오페이 등에서 진행하는 이벤트는 카드 발급 시 15만원 안팎의 현금성 혜택을 제공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적금을 받기 위해 금융소비자가 사실상 손해를 보는 구조라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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