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의령군 의령읍 정암마을 인근 곽재우 동상 너머로 빛내림 현상이 보이고 있다.(출처: 뉴시스)
경남 의령군 의령읍 정암마을 인근 곽재우 동상 너머로 빛내림 현상이 보이고 있다.(출처: 뉴시스)

매년 6월 1일은 ‘의병의 날’

2010년 5월 법정기념일 제정

곽재우 장군 최초 의병 일으켜

양반부터 천민까지 계층 다양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그들은 그저 아무개다. 그 아무개들은 모두의 이름이 의병(義兵)이다. 얼굴을 가리면 우리는 얼굴도 이름도 없이 오직 의병이다.”

지난 2018년 상영한 tvN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내용이다. 자신의 이름도 없이, 오직 ‘의병’이라는 이름으로 나라를 위해 싸운 조국 투사들의 이야기는 국민에게 역사의 중요성을 일깨웠다. 그들에게는 두려움을 느낄 시간도 없었다. 싸우지 않으면 사랑하는 가족도, 나라도 지킬 수 없었다. 이와 관련, 6월 1일 ‘의병의 날’을 맞아 조국을 위해 목숨 건 의병들의 이야기를 담아봤다.

◆‘의병의 날’이란

의병은 임진왜란, 일제강점기, 6.25전쟁 등 국가적 위기 발생 시 백성이 스스로 조직한 군대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많은 침략을 당했다. 이때 백성은 너나 할 것 없이 힘을 모았다.

6월 1일 ‘의병의 날’은 지난 2010년 5월 법정기념일로 제정됐다. 이날은 임진왜란 당시 곽재우 장군이 최초로 의병을 일으킨 날인 음력 4월 22일을 양력으로 환산해서 지정됐다.

조선 군대는 임진왜란 때 왜군의 신식무기에 힘도 써보지 못하고 무너졌다. 조선은 20일 만에 한양을 넘겨준다. 선조(제14대 왕)는 백성을 버리고 멀리 의주까지 피난 갔고, 양반들도 자기들 살 궁리만 했다. 마치 부모를 잃은 듯한 백성들은 홀로 남겨졌고 삶의 터전마저 왜군에 빼앗겼다. 이에 곽재우 장군은 백성을 버리고 떠난 조정에 분노한다. 그리고 경남 의령지역에서 민초를 모아 의병을 조직한다. 당시 의병은 양반부터 천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층이었다.

곽재우 장군은 붉은 옷을 입고 왜군과 싸웠는데, 이에 ‘홍의장군’이라 이름이 붙었다. 의병 활동은 조직적으로 퍼져나갔고 왜군에 큰 타격을 줬다. 전략적 전술과 의병들의 강한 정신이 나라를 지켜냈다. 곽재우 장군은 ‘정암진 전투’에서도 큰 활약을 펼쳤다. 정암진은 경상도에서 전라도로 넘어가는 길목이다. 이로 인해 전라도로 들어가려는 왜군의 길을 차단했다.

무신 조헌 선생도 있다. 그는 왜군이 곡창지대인 전라도로 향한다는 소식을 듣고 금산으로 향한다. 그리고 금산 전투에서 의병 연합군은 목숨 걸고 왜군과 맞선다. 하지만 병력과 무기의 열세로 모두 전사하고 만다. 비록 패배했지만 조헌 선생의 전투는 전라도를 지켜내는 데 큰 기반이 됐다. 전사한 조헌 선생과 의병들의 시신은 수습 후 한 곳에 묻혔으며, 칠백명의 의사가 묻혔다는 의미의 ‘칠백의총(七百義塜)’이 됐다.

창녕 망우당_곽재우 유허비_전경(2015년 촬영) (출처: 문화재청) ⓒ천지일보 2022.5.30
창녕 망우당_곽재우 유허비_전경(2015년 촬영) (출처: 문화재청) ⓒ천지일보 2022.5.30

◆일제강점기 ‘항일 의병투쟁’

국력이 쇠해진 구한말, 일제의 국권 침탈 야욕은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풍전등화의 위기 속에서 백성들은 일제와 맞서기 위해 또다시 목숨을 걸었다. 항일 의병은 크게 ‘을미의병(1895년)’ ‘을사의병(1905년)’ ‘정미의병(1907년)’ 등으로 나뉜다. 을미의병은 을미사변과 단발령을 계기로 일어났다. 당시에는 위정척사계열의 관료 출신과 재지 유생들에 의해 주도됐다.

을사의병은 을사늑약(1905년)이 체결된 11월 이후 본격적으로 활동이 전개됐다. 이전보다 많은 지역에서 다양한 계층에서 일어났고, 각지 의병들이 연계해 작전을 펼쳤다. 산악 지형을 이용한 유격전도 등장했다.

정미의병은 고종의 강제 퇴위와 군대해산을 계기로 확대됐다. 정미의병의 특징은 해산된 군인들의 가세로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의병 활동이 전개됐다는 점이다. 항일 의병투쟁은 대부분 일본군에게 패하는 일방적인 결과를 낳았지만, 의병들의 항일 의지는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특파원 맥켄지가 쓴 책 ‘한국의 비극(1908)’에는 일제강점기에 투쟁한 의병들의 강인한 정신이 담겼다. “우리는 어차피 죽게 되겠지요. 그러나 좋습니다. 일본의 노예가 되어 사느니보다 자유민으로 죽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그렇다. 의병들은 무엇이 진정한 삶인지 이미 알고 있었다. 어려울 때 자발적으로 일어나서 싸운 호국 의병의 숭고한 정신은 국제 정세가 혼란스러운 오늘날 더욱 빛을 발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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