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하 시인 (사진제공: 건국대학교)
김지하 시인 (사진제공: 건국대학교)

민주화활동 활발히 전개

민청학련 사건에 사형선고

韓 최초 노벨문학상 거론도

‘죽음의굿판’ 칼럼 비판받기도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타는 목마름으로’ 등의 시를 남긴 김지하(본명 김영일) 시인이 8일 향년 81세로 별세했다.

토지문화재단에 따르면 김 시인은 이날 오후 강원도 원주 자택에서 타계했다.

김 시인은 지난 1년여간 계속 투병 생활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고인의 빈소는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다.

김 시인은 1941년 2월 4일 전라남도 목포에서 태어났다. 1954년엔 원주에서 지내면서 자랐고, 이후 서울로 이주해 1959년 서울 중동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64년엔 서울대학교 미학과를 졸업했다.

졸업에 앞서 김 시인은 1963년 3월 ‘목포문학’에 김지하(金之夏)라는 필명으로 ‘저녁 이야기’라는 시를 발표했다. 지하라는 필명은 지하(地下)에서 따온 것으로 전해졌다.

김 시인의 공식 등단은 1969년 11월이었다. ‘시인’을 통해 ‘황톳길’ ‘비’ 등 5편의 시를 공개했다.

등단 이듬해인 1970년 김 시인은 저항시 ‘오적(五賊)’을 발표했고, 반공법 위반으로 구속기소됐다. 1972년 ‘비어(蜚語)’ 발표 이후 또다시 반공법 위반으로 입건됐고, 이후 김 시인은 민주화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다.

이미 4.19 혁명 이후 학창시절부터 학생운동을 하던 그였다.

1974년 김 시인에겐 큰 변곡이 있었다. 당시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돼 사형 선고까지 받았다. 박경리 작가의 딸 김영주 토지문화재단 이사장과 결혼한지 1년여밖에 안 된 시점이었다. ‘타는 목마름으로’도 그즈음인 1975년 나왔다.

다행히 김 시인은 무기징역으로 감형됐고, 1980년 석방됐다.

또 김 시인은 한국인 최초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등 세계적 명망을 떨쳤다.

다만 1991년 명지대 강경대 군이 전경의 폭력으로 사망한 뒤 이에 항의하는 청년들의 분신 등이 이어지는 걸 두고 조선일보에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라는 칼럼을 개재해 많은 비판을 받았다.

아울러 2012년 박근혜 대통령 후보를 공개 지지하는 등의 행보로 기존과 평가를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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