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복 전통식생활문화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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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흔히 숙육(熟肉)을 수육(水肉) 또는 머리고기라는 의미로 수육(首肉)으로 잘못 알고 있다.

그러나 수육의 원말은 숙육(熟肉)이다.

문헌 자료에 의하면 숙육(熟肉)을 소육(燒肉)이라고 했고 동물의 이름 뒤에 익을 숙(熟)자를 넣어 부르기도 했다.

해남 연동 해남윤씨 녹우당에 소장된 1629년 봉림대군방(鳳林大君房) 은사물목(恩賜物目) 에는 ‘얇게 썰어 장에 재워서 익힌 절육(切肉)과 삶아내서 물기를 뺀 고기를 소육(燒肉)이라 했다.

조선시대 종묘에서 거행되던 제례에는 우숙(牛熟 소 숙육)·양숙(羊熟 양 숙육)·시숙(豕熟 돼지 숙육)이라 해 각각 소, 양, 멧돼지를 끓는 물에 익힌 고기를 차렸다. 여기에 소의 장(腸), 위(胃), 폐(肺)를 익힌 것과 돼지의 갈빗살을 익힌 것도 곁들였다. 숙육(熟肉), 양숙(羊熟)은 혜경궁 홍씨의 수라상에도 차려졌다.

조선 영조 때의 지리학자로서 김정호(金正浩)와 함께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지도를 제작한 정여일(鄭汝逸, 1678~1752)은 ‘가례(家禮)’에 ‘시조에게 제사 지내는 조항에 숙육(熟肉)을 진설한다’라고 했다.

조선 후기 문신 김재로(金在魯, 1682∼1759)는 ‘예기보주(禮記補註)’에서 ‘성갱급정(盛羹及定)’이라고 갱(羮)은 육즙(肉汁)이고 정(定)은 익은 고기이니, 삶아서 이미 익으면 장차 시동을 맞이해 묘실로 들어가려 할 적에 마침내 먼저 조(俎)에 고깃국과 삶은 고기를 올려놓고 당(堂)에서 신에게 고하니 라고 했다. 여기서 삶은 고기 즉 숙육(熟肉)이 언급됐다.

죽석(竹石) 서영보(徐榮輔, 1759~1816) 역시 ‘죽석관유집(竹石館遺集)’에서 『의례(儀禮)』 [향사례(鄕射禮)]와 [향음주례(鄕飮酒禮)]에 ‘갱정(羹定)’이라는 글이 있는데, 주(註)에 말하기를 “고기를 넣고 끓인 것을 갱이라 하며, 정은 숙과 같다. (肉謂之羹 定猶熟也, 육위지갱 정유숙야)”라고 했는데, 여기서 정유숙야(定猶熟也)가 바로 익힌 고기인 숙육(熟肉)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동지 정사 황인점과 부사 이재학은 정조 18년(1794) 1월 13일 북경(北京)에서 숙육(熟肉)을 받았다는 내용이 나온다. ‘정조실록(正祖實錄)’

고종 3년(1866) 9월 19일에 마포(麻浦)에 사는 반민 출신(出身) 이의상(李義祥)이 숙육(熟肉) 10근을 군수(軍需)용으로 보태라고 가져 왔다고 나온다.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1880년 프랑스 선교사들이 만든 ‘한불자전(韓佛字典)’에 슉육(熟肉)이라고 나오며, 1890년 언더우드(Underwood, H.G.)가 한국어를 영어로, 영어를 한국어로 풀이한 사전 ‘한영자전(韓英字典)’에는 슈육(熟肉 익을 슉, 고기 육)이라고 나온다.

조선전기 의관 전순의(全循義, 생몰년 미상)가 음식의 다양한 조리법에 관해 기록한 조리서‘산가요록(山家要錄)’에는 소의 양을 삶을 때 황밀(黃蜜) 또는 탁주(濁酒)를 넣으면 부드럽고 맛이 좋다고 했고, 쇠머리는 앵두 잎을 소의 입 안에 채우거나 겉에 발라서 삶았으며, 닭은 식초 또는 술을 넣고 삶으면 쉽게 익는다고 하는 등 고기 삶는 방법이 기록돼 있다. 1670년(현종 11년)경 정부인 안동 장씨(貞夫人 安東 張氏)가 쓴 조리서 ‘음식디미방(飮食知味方)’에서는 소의 양을 무르게 삶아서 썰어 간장, 기름, 후추, 산초가루로 양념한 것을 양숙(羊熟)이라 했다. 또 쇠고기는 뚜껑을 열고 삶아야 하며, 질긴 고기는 살구씨와 떡갈잎을 넣어 삶으면 쉽게 무르고 연해진다고 했다. 그 밖에 멧돼지고기, 개고기, 곰발바닥 삶는 법을 소개했다. 1776년 유중림(柳重臨, 1705~1771)이 엮은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의 숙육(熟肉)은 소, 돼지, 닭, 개, 양, 사슴, 곰 발바닥 등을 각각 삶아서 초장에 찍어 먹었다. 모든 고기를 삶을 때는 냄비 주둥이를 종이로 봉하고 닥나무열매를 넣으면 쉽게 연해지고 맛이 좋다고 했다. 기름진 고기는 참깨꽃, 가지꽃을 묽은 밀가루 풀이 들어간 양념에 섞어서 고기에 발라 구운 다음 냄비에 담고 푹 삶았다. 질긴 고기는 뽕나무 뿌리의 속껍질, 닥나무 열매 등을 이용했다. 묵은 고기는 빨간 숯덩이, 상한 고기는 구멍을 뚫은 호두를 각각 넣어 삶았다. 고기를 삶을 때 고기의 냄새, 맛, 조직감 등을 위해 여러 가지 재료를 이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1800년대 작자미상의 ‘시의전서(是議全書)’에 기록된 숙육은 양지머리·사태, 쇠머리, 내장(유통, 부아 등), 돼지고기를 삶아서 썰었다. 특히 돼지고기는 초장, 젓국, 고춧가루를 이용하면 좋다고 해 고기의 다양한 부위와 돼지고기에 어울리는 양념을 제시했다. 1900년대 이후 조리서에는 수육을 얇게 썬 편육(片肉)이 소개돼 있다.

1900년대 이전에는 익힌 고기를 대부분 숙육(熟肉)이라 했다.

이 숙육(熟肉)이 수육(水肉)으로 변한 건 1900년대 이후인 것 같다.

돼지고기 숙육[豕肉)은 전라남도, 경상남도, 제주도의 향토음식이기도 하다. 전남 지역에서는 돼지고기를 된장 푼 물에 담가 대파, 마늘, 생강, 청주와 함께 푹 삶아서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 초고추장을 곁들인다. 경남 지역은 끓는 물에 돼지고기를 넣어 된장, 마늘, 생강, 소주, 계피, 황기, 당귀와 함께 푹 삶아서 배추김치 쌈장 등과 함께 먹는 등 오늘날의 보쌈 형태를 보인다. 제주 지역에서는 돼지고기로 만든 숙육(熟肉)을 ‘돔베고기’라 하여 잔치음식에 반드시 차렸다. 돔베라는 것은 나무 도마를 말한다. 돼지고기 숙육(熟肉)을 도마에서 썰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돼지고기에 된장, 마늘, 생강, 양파를 넣어 푹 삶아서 건진 후 소금과 식초를 넣은 냉수를 고기 위에 뿌려서 식힌 다음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 된장 또는 간장에 찍어 먹는 등 다른 지방과는 차이를 보인다. 한편 경상도 지역은 생선을 이용한 숙육(熟肉)이 발달했다. 경남의 ‘복 숙육(熟肉)’은 복어를 끓는 물에 익혀서 콩나물, 두릅, 미나리와 함께 식초·겨자 초고추장을 곁들이고, 경북의 개복치숙육(熟肉)은 개복치를 끓는 물에 푹 삶아 식힌 후 썰어서 초고추장을 곁들인 음식이다.

끝으로 돼지고기의 제육볶음의 제육(諸肉)은 저육(豬肉)의 잘못된 이름이다. 제육볶음이 아닌 저육(豬肉)볶음이라고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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