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제 인천언론인클럽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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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후보들을 소개하는 두툼한 책자형 공보물이 우편함에 도착했다. 묵직한 무게의 봉투 속 내용물을 꺼내 제대로 살피지 않고 재활용 통으로 던져버렸다. TV토론과 신문, 잡지를 통해 충분히 알고 있는 정보이기에 별로 참고할 게 없었다. 전 국민에게 나눠주는 종이뭉치가 엄청난 자원 낭비이고 결과적으로 지구온난화를 재촉하는 것이라 못마땅한 생각이 들었다.

공보물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만 우편으로 보내주고, 나머지는 홈페이지나 모바일을 통해 얼마든지 후보자 이력과 공약을 검색해볼 수 있다. 초연결시대에 맞춰 에스토니아처럼 블록체인 기술 기반 전자투표도 가능한 수준이다. 데이터의 무결성, 개방성이 뛰어난 블록체인 신기술을 활용하면 종이투표의 한계를 넘을 뿐만 아니라 글로벌 팬데믹 상황에서 투표율도 높여줄 수 있지 않을까.

관행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대선 후보 중 누군가 기존의 틀을 깨고 기후위기 극복이나 분권 등 시대 가치를 실천하는 행동주의자로 나섰으면 선거판이 이렇게 흐르지 않을 것이다. 유권자들이 고를 후보가 없어 ‘차악의 선택’을 고민하는 가장 큰 이유를 꼽는다면 신뢰와 믿음의 부족일 것이다.

관행에 맞서 신념을 관철한 지도자로 스페인 폰테베드라 시장이 인상 깊다. 제주도 올레길 모델인 콤포스텔라 성지 순례길의 경유지이기도 한 스페인 북서부 작은 도시 폰테베드라는 차 없는 도시로 유명하다. 20여년 전까지만 해도 혼잡한 도시였지만 의사였던 미구엘 엔소 로레스가 1999년 시장으로 당선돼 무모하기 그지없는 공약을 실천하면서 지구촌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변모했다.

그가 자동차의 도심 진입을 금지하자 초기엔 상인과 시민들의 반발이 극심했으나 6선을 거듭하며 도시 중심가의 90%, 외곽의 70%를 보행자 전용도로로 바꿔놓았다. 이제 교통사고와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크게 줄어들었고, 골목 상권이 살아나고 인구가 늘어나는 효과를 거뒀다. 로레스 시장은 지역경제를 살리고 공동체를 부활시킨 혁신가로 추앙받고 있다. 그의 성공에 자극받아 스페인 바로셀로나, 프랑스 파리, 콜롬비아 보코타 등에서 시내 전역 시속 30km 미만 통행 제한, 도시 숲 조성, 보행자 및 자전거도로 확대 등 생태도시를 향한 획기적 정책을 펼치고 있다.

한 때 ‘3김 정치’ 종식을 원하는 여론이 거셌으나 요즘 같을 때 정치 9단이었던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의 탁월한 혜안과 지도력이 그립기도 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뚝심 있는 지역균형발전, 복지정책은 시대적 요구에 부응한 측면이 많았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녹색성장’, 박근혜 전 대통령의 ‘문화 융성’도 시대적 가치를 표방하는 상징적 의미는 컸다.

미래를 향한 개혁 열망이 분출됐던 ‘촛불혁명’ 정신이 실종되고 권력 투쟁의 승자집단만을 위한 대통령 선거가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다. 다원화된 시민사회의 자율성과 로컬 중심의 분권, 기울어진 운동장을 다듬을 수 있는 정의와 공정성, 기후생태위기 극복을 일상 속에서 실현시킬 수 있는 지도자를 희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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