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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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 화엄사 홍매는 입춘 때 장관을 이룬다. 올해는 강추위가 계속돼 아직 소식이 없다. 그러나 날씨가 따뜻한 제주 한림공원에는 홍매가 요염한 모습을 자랑하고 있으며, 다음 주에 홍매축제가 열린다고 한다.

매화는 군자의 절의를 상징하는 꽃이다. 변하지 않는 선비나 여인의 절개를 얘기할 때 비유하기도 한다. 신흠(桑村 申欽)은 인조 때 영상을 지낸 훌륭한 인물이다. 매화의 고절한 정신을 이렇게 노래했다.

오동은 천년을 늙어도 곡조를 간직하고(桐千年老恒藏曲)/ 매화는 늘 춥게 살지만 향기를 팔지 않네(梅一生寒不賣香).

옛 사람들은 홍매를 여성에 비유하기도 했다. 꽃 백과사전인 ‘양화소록’을 지은 세종 때 강희안(仁齋 姜希顔)은 ‘홍매는 백매에 비하면 따뜻한 감이 있고, 청초한 가운데서도 요염함 자태가 있어 여자와 같다’라고 정의했다.

단양군수를 역임한 퇴계 이황이 기생 두향으로부터 받은 매화분재는 혹시 홍매가 아니었을까. 퇴계가 그토록 애지중지한 뜻이 두향의 정결하고 애잔한 모습을 닮은 때문이리라.

두향과 이별한 퇴계는 두향을 그리는 정을 매화시로 달랬다. 봄 창가에 둔 분재가 피어나자 그리는 정을 토로했다.

누렇게 바랜 옛 책 속에서 성현을 대하며/ 비어 있는 방안에 초연히 앉았노라/ 매화 핀 창가에서 봄소식을 다시 보니/ 거문고 마주 앉아 줄 끊겼다 한탄 말아라(黃卷中間對聖賢 虛明一室坐超然 梅窓又見春消息 莫向瑤琴嘆絶絃).

조선 조 최고의 명필인 추사 김정희는 평소 난(蘭)을 치는 것도 조심스럽게 생각했다. 더구나 매화는 잘 그리지 않았다. 현재 남아있는 유묵 가운데 매화도는 손에 꼽을 만하다.

그러나 제자 우봉 조희룡(又峰 趙熙龍)은 매화를 잘 쳤다. 추사도 우봉의 매화도를 처음에는 혹평했지만 나중에는 극찬을 금치 않았다. 우봉이 잘 그린 매화도는 바로 ‘홍매’였다.

우봉은 왜 홍매를 그린 것일까. 스승이 제주도로 귀양을 갈 때 우봉도 2년간 임자도에 유배 생활을 한다. 우봉의 대표작들 중 상당수가 유배지에서 그린 작품이라고 한다.

이 시기 작품들은 힘찬 노매(老梅)가 주류를 이룬다. 가슴 속에 억울한 마음이 분출해 그린 탓일까. 용트림 매화나무에는 흡사 선혈을 토하듯 홍매가 장관을 이루고 있다.

우봉은 일상에서 매화에 빠져 살았다. 항상 옆에는 매화차를 끓여 놓고 애음했다는 일화가 전한다.

입춘에는 글을 써 대문이나 문설주에 붙인다.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이란 문구가 가장 많이 사용된다. 이 입춘첩은 중국에서 전래된 것이 아닌 우리 민족이 만든 글이다. ‘건양’은 대한제국이 처음으로 쓴 연호이다. 국가에 많은 경사가 있기를 기원하는 뜻이 담겨 있다.

이제 제20대 대통령 선거가 한 달 남짓 남았다. 국민들은 앞으로 5년간 대한민국을 끌고 갈 올바른 지도자를 선택해야 한다. 대한민국이 ‘대길’ ‘경사’를 이룰 지도자를 꼭 선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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