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석이조의 기쁨 “건강 챙기고 활기찬 생활도 하고”
택배기사·천연조미료제작·음식만들기 등 직업 종류도 다양

[전국 강수경, 장윤정, 이현정, 백하나 기자] 나이가 들었다고 벤치에 앉아 세월만 보내는 황혼기 ‘노인’생활을 청산하고 일자리를 새롭게 얻어 제2인생을 살며 ‘청춘 바람’을 불어 넣은 이들이 있다.

각 지자체에서 시행하는 실버정책을 잘 활용해 직업을 갖고 일을 하는 노인들이다. 택배기사에서 천연조미료 제작, 음식점 운영 등 종류도 다양하다.

시니어클럽을 통해 공공·민간분야에서 노인일자리가 창출되고 있다. 먼저 녹색환경관리, 학습지도강사파견, 소외계층돌봄 지원 등은 공공분야의 일자리다. 시험감독관 등 일회성파견사업, 특산물을 제작하는 공공작업장과 수익사업을 펼치는 일거리는 민간분야로 분류된다.

최근에 도입된 시니어인턴프로그램을 통해서는 노인들이 일반 기업에 재취직을 하기도 한다. 이렇게 해서 직업을 얻은 어르신들은 요즘 심각한 사회문제로 지적되는 ‘노인자살’이 먼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퇴직 후 일자리를 잃고 그대로 환경에 순응하기보다는 자신에게 맞는 일거리를 찾아 인생에 새로운 환경을 창조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세상은 누르스름한 저물어가는 황혼이 아닌 초록의 싱그러움이 묻어나는 새벽이다.

본지는 전국 각지에 있는 이들을 만나 삶을 들여다봤다.

▲ 박용운 씨. ⓒ천지일보(뉴스천지)

[부산] 실버 택배기사 박용운 씨
“나이는 숫자에 불과해… 일할 수 있어 감사해요”

‘실버 택배기사’ 박용운(73, 부산시 사하구 괴정2동) 씨는 일흔을 훌쩍 넘긴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얼굴에 생동감이 넘친다.

 

박 씨는 지난 25일 택배 전문업체인 CJ GLS에 정식 고용돼 처음배송 업무를 시작하게 됐다. 부산시가 주관한 ‘시니어인턴프로그램’을 통해 취업의 문을 두드린 그는 지난 3개월간 이 택배회사에서 수습 교육을 거쳐 정식 사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처음 이 프로그램에 참가한 어르신은 80여 명. 하지만 서비스직이 녹록치 않은 탓에 책임감과 성실성을 인정받은 30명만이 남아 1년 연장 근로 계약을 맺을 수 있었다.

박 씨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것”이라며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만으로도 무척 감사하다”고 운을 뗐다. 그에게 일은 경중을 따질 수 없는 것이다. 박 씨는 “60세 이후부터 주어진 삶은 거저사는 삶이라고 생각한다”며 “생이 다하는 순간까지 작은 것에 감사하며 최선을 다해 사는 게 도리다. 그래서 택배기사는 자신의 인생에 ‘꿈’을 이룰 수 있는 기회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인생의 황금기를 다 보내면서 우여곡절을 다 보냈을 그에게 남은 ‘꿈’이란 무엇일까. 그는 생을 다하는 순간까지 가족에게 “좋은 아빠, 훌륭한 할아버지”로 기억되는 것이라고 전했다. 그래서 그는 주어진 삶을 참 열심히 산다.

택배기사를 하기 전에는 보험회사에 다녔다. 사실 그는 지금도 부산의 한 민간단체에 외부인 관광안내팀 부팀장으로 있으면서 시간이 날 때마다 부산대학병원에서 호스피스로도 봉사활동도 하고 있다. 그가 이토록 열심히 사는 것은 병환으로 돌아가신 어머니의 영향이 컸다.

박 씨의 어머니는 서른 살즈음에 남편을 잃고 5남매를 홀로 키웠다. 오랜 병환을 앓았던 그의 어머니는 2000년 80세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박 씨는 그런 어머니를 보며 자신을 위한 삶이 아닌 어렵고 힘든 사람들을 위해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박 씨는 식사 장소로 이동하며 10여 분간 걸으면서 걸음을 멈춰 서거나 숨 한번 고르지 않았다. 건강의 비결을 묻는 질문에 그는 허리춤에서 만보기를 꺼낸다. 그는 “걷고 달리는 일이 많은 택배기사는 건강을 챙기기에 적격인 직업”이라며 “하루에 1만 5000~2만 보를 채우겠다는 생각으로 일하면 성취감도 높아지고 일도 재미있다”고 말하며 미소를 지었다.

실버 택배기사는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주5일간 오후 2시부터 6시까지 하루 4시간 아파트단지가 밀집한 해운대 지역을 중심으로 20㎏ 이하의 택배화물을 나른다. ‘긍정적인 마음으로 작은 것에 감사하는 삶을 사는 것’이 삶의 좌우명이라는 박용운 씨. 그의 또 다른 건강 비결은 바로 이와 같은 건강한 ‘정신’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

▲ 이경원 씨. ⓒ천지일보(뉴스천지)

[대전]천연조미료 제작 산바들사업단 이경원 씨
“일도 좋고 만든 제품에 대한 자부심도 있죠”

대전시 대덕구시니어클럽 산바들사업단에서 제2의 인생을 펼치고 있는 이경원(67) 씨를 만날 수 있었다. 그는 천연재료를 다듬어 조미료로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일을 하고 있었다.

 

KT에서 퇴직을 한 후 옥천 유명 레스토랑에서 근무를 할 만큼 능력이 좋았던 그는 지금 하는 일이 더욱 마음에 든다고 한다. 좋아하는 일을 하고자 하는 마음에 여기저기 두드리다보니 가장 마음에 맞는 일을 찾게 됐다는 이경원 씨다.

“우리나라는 맘만 먹으면 다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조금 형편이 더 낫고 낫지 못한 것뿐이지요. 다른 곳보다 더 나은 곳에서 일하고 싶어서 노력해서 찾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곳에 오신 분들은 모두 다 직접 찾아서 오신 분들입니다.”

실제로 산바들사업단에 찾아온 사람들은 나이가 상당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컴퓨터를 배워 홈페이지를 찾고 두들겨서 일자리를 얻어냈다. 이들과 함께 일하는 것이 이 씨는 아주 좋다.

그는 “하루에 소주 2명을 마시고 담배는 3갑씩 피워대던 분이 이곳에서 일을 하면서 술도 끊고 담배도 끊었어요. 지금은 일하시는 남자 5명이 모두 다 담배를 끊었답니다”고 자랑까지 한다. 건강도 챙기고 일자리까지 얻으니 일석이조라는 설명이다. 또한 직원들끼리 마음도 잘 맞아서 일하는 것이 즐겁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마음이 잘 맞았던 것은 아니다. 60여 년 동안 각각 다른 상황에서 살다가 한자리에 모여서 함께 일을 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생각과 습관이 달랐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서로가 맞춰가는 연습을 하면서 정이 더 들었다는 후담이다.

이경원 씨는 “일을 그만 둔 후 일을 안 하고 편하게 살려고 했었죠. 그게 잘못된 생각이었고 지금은 일을 다시 시작한 것이 너무 행복합니다”고 말했다. 이경원 씨를 비롯한 산바들사업단의 직원들은 제품에 강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 화학재료를 가미하지 않고 천연 재료로 양심적으로 만들기에 제품을 추천하는 데 거리낌이 전혀 없다.

“일 자체가 보람돼요. 조금도 부끄러운 마음이 없이 좋은 재료로 건강에 좋은 것을 만든다는 점에서 말이에요.”

또한 그는 제품을 만들어 판매를 해야 한다는 점에서 생활에 적당한 긴장감과 활력도 생긴다고 전했다.
이 씨는 “여기 직원들과 24시간 제품을 어떻게 팔 것인지 생각을 해야 했는데, 서로가 같이 모여서 아는 직원에게 편지를 쓰기도 하고, 문자도 보내는 등 적극적인 활동을 하니 자동으로 활기가 생겼죠”라며 크게 웃었다.

활기로 가득한 산바들사업단에서 이 씨는 오늘도 사람들이 건강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천연조미료를 만들고 있다.

▲ 하숙자 씨. ⓒ천지일보(뉴스천지)

[대구] 할머니표 김밥 전문점‘ 마실김밥’ 하숙자 씨
“일하는 게 매우 행복해요. 몸·정신 모두 건강해지죠”

“많은 나이에도 좋은 사람들과 함께 일할 수 있어 매우 행복합니다. 일을 하면 몸과 정신이 건강해지는 것 같아요.”

 

지난 5월부터 대구 반월당역 지하상가에 있는 ‘할머니표’ 김밥전문점 ‘마실김밥’에서 음식 만들기, 서빙 등의 일을 하는 하숙자(63) 씨의 표정은 밝다.

백발이 성성한 머리카락과 깊게 파인 주름을 보면 60대 노인이 확실하지만, 그의 당찬 목소리만큼은 세월도 빗겨간 듯하다. 그는 “마실김밥에서 사람들과 함께 일하면서 더 젊어지는 것 같다”며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은 거의 다 웃는 얼굴과 긍정적인 마인드를 갖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마실김밥에서 일하는 어르신 대부분이 환한 미소로 손님을 맞이하고 있었다. 부엌에서는 항상 하하 호호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으며 음식 주문이 많아 분주한 시간대에도 그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하 씨는 “여기서 일하는 사람 모두가 가족들에게 준다는 생각으로 정성을 가득 담아 반찬을 만들고 있다”며 “손님들도 ‘맛있다’ ‘어머니 손맛이 느껴진다’는 말을 한다”고 전했다.

‘마실김밥’은 노인자활 후견기관인 중구시니어클럽이 노인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자 만든 음식점이다. 이곳에는 현재 6여 명의 어르신이 1주일에 1~2번 5시간씩 일하고 있다. 그는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일류 호텔 주방장, 전업주부 등 다양한 분야에서 종사했던 사람이 많다”며 “나이가 들어 은퇴하고 삶에 무력감을 느끼다 이곳에서 일한 뒤로 활기를 얻고 있다”고 전했다.

하 씨는 또한 “마실김밥 직원들은 이곳에서 받은 월급으로 여가생활을 즐기고 손자·손녀 용돈 주는 재미에 푹 빠졌다”며 “일하면서 삶의 활력을 얻고 돈도 벌고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고 웃으며 말했다. 그는 항상 일할 때마다 ‘어떻게 하면 음식을 더 맛있게 만들까’ ‘이번 달 번 돈으로 손자 선물 사줘야지’ 등의 행복한 고민을 한다. 그러니 정신이 건강해질 수밖에 없다고 하 씨는 전했다.

하 씨는 이렇게 활력을 되찾으니 가족들에게도 더 잘하게 돼 주변 사람 모두가 좋아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무리하게 일하면 자칫 위험할 수도 있다는 주의의 말도 잊지 않았다. 그는 “같이 일했던 사람들이 건강 문제로 일을 그만두면 마음이 좋지 않다”며 “60~70대 노인들은 적당히 몸을 돌봐가며 일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날 하 씨는 인터뷰 내내 ‘모든 게 감사하다’ ‘행복하다’라는 말을 반복했다. 그는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좋은 말을 많이 하면 정말로 기분이 좋아진다”며 “평생 일하면서 즐겁게 살아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 송혜숙 단장. ⓒ천지일보(뉴스천지)

[광주] 손맛’으로 승부, 대장금사업단 송혜숙 단장
“일하는 하루하루가 즐겁기만 합니다”

광주시 북구청에 위치한 사내식당에는 ‘대장금’이라 불리는 10인의 어머니들이 있다. 인공조미료를 사용하지 않고 어머니들의 손맛과 노하우를 토대로 건강한 밥상을 손님에게 제공하고 있는 대장금사업단은 60세 이상의 노인들로 구성됐다.

 

북구시니어클럽에서 6년째 진행하고 있는 대장금사업단의 송혜숙(60, 여) 단장은 이 일이 자신에게 즐겁고 고맙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고 전했다.

송 단장은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는 게 행복하다. 집에서 쉬는 것보다 나와서 일하는 것이 하루하루 즐겁고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쉰다는 것은 뒤처진다’는 느낌을 받는다는 송 단장은 대장금사업단에서 일하기 전에 각종 봉사활동에 참여했다고 한다. 퇴임 후 봉사활동을 하면서 사람들을 대하고 나눔을 실천하면서 또 다른 인생을 즐기기 시작한 것이다.

송 단장에게는 봉사활동이 지금 자신을 일하게 하는 자원이라고 한다. 봉사활동을 통해 얻은 자신감과 사람을 대하면서 알게 모르게 생기는 두려움에 대해서 노련하게 대처하고 더불어 이 일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언제나 즐거운 마음으로 일하는 송 단장 덕분인지 송 단장이 사업단에 취업한 후로는 시설개선과 매출증가 현상이 눈에 띄게 나타났다. 어두컴컴했던 사내식당은 산뜻하게 바뀌었고 급식과 매점을 동시에 운영하고 있는 사업단에는 매출 증가 등 하나 둘 변화의 모습을 갖춰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송 단장은 “무엇보다 현재가 중요하다. 나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한다는 생각을 갖고 일을 해야 한다”며 단장으로서의 책임감도 여느 젊은 세대를 뛰어넘는 모습이다. 여유 있는 노후를 준비하지 않고 다시 일을 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송 단장의 대답은 ‘아직 젊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송 단장은 “건강만 허락한다면 일을 하고 싶다. 사람 대하는 것이 즐겁고 경제적으로 도움이 된다”며 “쭉 이렇게 가면 70세 이후에도 일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늙어서 후회하지 않기 위해 일한다고 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일을 한 후 피곤하면 조금 쉬든지 수면을 취하면 다시 기운이 나 아직은 건강하다고 말하는 송 단장. 퇴임 후 다시 일을 시작하는 이유에 대해 그는 나중에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안정적인 노후를 즐기기보다 현재의 상황에서 가장 의미 있고 즐거운 일을 하는 것을 택한 손 단장의 아름다운 선택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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