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 논설실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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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열린 국민의힘 제2차 전당대회에서 대선 최종 후보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선출됐다. 정계에 입문한 지 99일 만에 제1야당의 대선후보를 꿰찬 것은 특이한 일이지만, 평소 ‘사람에 충성하지 않고 국민과 국가에 충성한다’는 공직관의 각인과 함께, 아무래도 최근 1년여동안 권력피해를 많이 받았다는 점이 민심에 반영된 것일 터, 국민들에게 무너진 대한민국의 법치와 정의, 그리고 공정을 바로 잡겠다는 평소 소신이 정치적으로 투영된 결과라 할 것이다.

이제 내년 3월 9일 치러질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 국민의힘 후보가 됐으니 경선에서 맞붙었던 홍준표 의원, 유승민 전 의원, 원희룡 전 제주도지사와 함께 원팀을 이뤄내면서 많은 국민이 염원하는 대선 승리를 위해 나아가야 할 것인데, 윤 후보 앞에는 난제들이 산적해 있다. 그래서인지 대선 후보자로 결정 나고, 윤 후보의 “엄중한 책임감과 정권교체의 무거운 사명감을 느낀다”며 정권교체를 위해 ‘원팀 정신’을 강조 호소했고, 낙선자들은 소감에서 3인 모두가 “경선 결과에 깨끗이 승복한다”는 말을 했다. 하지만 이번 경선 과정에서 나타난 여러 가지 현상들을 볼 때 차점자인 홍 의원 입장에서는 아쉬운 한판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효 투표자의 최종득표율 47.85%(34만 7963표)를 얻은 윤석열 후보가 선출되기는 했지만 홍 후보가 얻은 득표수도 만만치가 않다. 그는 최종득표율 41.5%(30만 1786표)를 얻어 4만 8000여표 차이로 졌다. 그러나 국민여론조사에서는 3만 7000여표를 앞질렀던 것인데, 이를 두고 홍 후보나 홍 후보 캠프 측에서는 민심에서 지고 당심에서 졌다는 말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그렇다 해도 일정 기간 기회가 충분히 주어졌고, 4명의 후보들이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했다고 보기에, 엎지른 물은 주워 담을 수 없듯 비록 아쉬움은 있겠으나 앞으로 남은 4개월 동안 윤석열 후보를 중심으로 원팀을 이루어 정권교체를 이루는 것이 상책이라 하겠다. 경선 기간 막바지에 2030세대의 지지세가 뚜렷했던 홍 후보는 윤 후보와 함께 양강 체계를 이루면서 불꽃 튀는 경쟁을 해왔다. 그러니 자연적으로 상대에 대한 흠집내기 비방전도 심했던바, 이를 국민의힘 지도부가 걱정했고 보수층에서도 우려가 컸다. 대개는 홍 후보가 윤 후보에 대한 인격적 비방전이 따랐던바, 이 점은 국민의힘에서 오랜 정치 경륜을 쌓은 홍 후보에게 부작용으로 작용했다는 당 내외 평가도 따른다.

하지만 정치적 감각이 뛰어난 홍 의원은 이번 대선 출마가 마지막 기회임을 잘 알고 있었다. 경선을 치르는 사이에도 그는 “이번이 나라를 위해 헌신할 마지막 기회”라고 그동안 수차례나 말해왔다. 또 국민여론에서도 ‘정권연장’보다 ‘정권교체’ 기대치가 훨씬 높게 나오는 상황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비교우위에 있다고 나름 판단했을 테고, 그래서 두 번 다시 올 수 없는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기회로 확신해 ‘무야홍(무조건 야당 후보는 홍준표)’을 외치면서, 26차례에 걸쳐 검찰 후배를 집요하게 비방 공격했을 가능성도 다분해 보인다.

앞으로 홍 후보에게 남은 과제는 정권교체를 위해 당 안팎에서 적극적으로 나서서 윤 후보를 중심으로 전력투구해야 하는 일이다. 그것이야말로 자신의 말대로 26년 소신 하나로 야당을 꿋꿋하게 지켜온 그의 정치적 신념과 개인적 저력을 증명해 보이는 한편, 그를 지지해준 국민 신뢰에 보답하는 길이다. 그럼에도 그는 “사상 최초로 검찰이 주도하는 비리의혹 대선에는 참여할 생각이 없다”고 선을 긋고 있다. 그 사유는 2040들의 놀이터 청년의꿈 플랫폼을 만들어 그분들과 세상 이야기 하면서 향후 정치 일정을 가져가고자 한다는 것인데, 정치인이 정치판을 떠나서 숨쉴 곳은 없을 터, 이번 경선에서 홍 후보의 활약상을 당내에서는 무시할 수 없을 테고 그를 따랐던 2030 당원들 가운데 일부 당원들은 국민의힘 탈당을 이어가고 있다. 당원 확충이 아쉬운 판에 탈당이 지속되는 현상은 그리 좋은 일은 아니다.

물론 2030 당원들이 국민의힘 변화 세력임은 부인할 바 없지만 주축세력은 아니다. 이준석 대표 선출과 그 이후 경선을 거치면서 2030세대 당원들이 국민의힘에 입당한 것은 고무적적인 일이다. 그렇지만 당원수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세력은 50~70세대 당원들이고, 그들은 지금까지 한결같이 국민의힘을 꿋꿋하게 지키면서 사랑해왔던바, 이들이 선택한 표심이 윤석열 후보를 향한 것을 간과할 수는 없을 것이다.

홍 후보는 “바람이 조직을 이긴다”고 했다. 지난 국민의힘 당대표 선출 때 이 같은 현상이 일어났지만 이번 경우는 달랐다. 상황이 매번 동일한 현상으로 반복되는 것은 아니다. 현역의원 3분의 1 이상을 캠프 또는 지원군으로 모신 윤 후보에 비해, 홍 의원 캠프에 참여한 현역의원은 조경태, 하영제 의원으로 단 2명뿐이었다. 그간 특정 계파에 속하지 않고 ‘독고다이’ 정치를 해온 것이 자신의 장점이라 해도 낙선의 뼈아픈 교훈이 됐을 것이다. 과거에 도취될 수는 없는 법. 26년간 ‘독고다이’ 정치인 홍 의원의 재기 여부는 그가 하기에 달린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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