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남승우 기자] 20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에서 열린 위대한 문화유산을 함께 누리다 ‘고 이건희 회장 기증 명품전’ 언론공개회에서 한 참석자가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 작품을 살펴보고 있다. 이번 전시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오는 9월 26일까지 개최하며 이건희 회장 기증품 중 시대와 분야를 대표하는 명품 45건 77점(국보·보물 28건 포함)을 선보일 예정이다.ⓒ천지일보 2021.7.20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20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에서 열린 위대한 문화유산을 함께 누리다 ‘고 이건희 회장 기증 명품전’ 언론공개회에서 한 참석자가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 작품을 살펴보고 있다. 이번 전시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오는 9월 26일까지 개최하며 이건희 회장 기증품 중 시대와 분야를 대표하는 명품 45건 77점(국보·보물 28건 포함)을 선보일 예정이다.ⓒ천지일보 2021.7.20

‘인왕제색도’ 21일부터 대중에 공개 
운무 덮인 산, 신묘한 기운 느껴져 

예부터 신에게 기도하던 영험한 산
무학대사 ‘선바위’ 앞에서 1000일 기도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왜 ‘인왕산’인 걸까.

지난 21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대중에게 공개된 조선의 화가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국보 제216호)’를 보고 있자니 문득 궁금해졌다. 정선이 75살 때인 1751년 윤5월 하순에 그린 인왕제색도. 한여름 소나기가 스치고 간 인왕산 바위와 비온 후 안개가 피어오른 모습은 한 폭의 산수화에 고스란히 담겼다. 산 아래는 위에서 바라보는 듯한 시선이, 산 위는 멀리서 바라보고 있는 시선이어서 실제 인왕산을 가까이서 바라보는 느낌마저 들었다. 운무에 덮인 산의 강인한 기운에 보고만 있어도 신묘해졌다.

조선 최고의 화가인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는 고(故)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의 수집품 중 하나다. 삼성가(家)는 이 회장의 고미술품과 서양화 작품 등 1만 1천여 건, 2만 3천여 점을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 등에 기증했다. 대중에 공개된 건 지난 21일부터다. 그간 교과서에서만 봤던 ‘인왕제색도’의 실물을 처음 본 대중들이 시선을 떼지 못하는 건 어쩌면 당연했다.

인왕산 국사당과 선바위 전경 (출처: 문화재청)  ⓒ천지일보 2021.7.23
인왕산 국사당과 선바위 전경 (출처: 문화재청) ⓒ천지일보 2021.7.23

◆‘선바위’ 한양 천도 이야기 담겨 

인왕산은 금강산과 함께 조선의 걸출한 화가들이 주목한 산이었다. 조선 팔도에 명산이 참 많음에도 인왕산은 여러 시대를 거쳐 화가들의 붓 터치에 담겨졌다. 도대체 무엇이 이토록 조선의 화가들의 마음을 뜨겁게 달군 것일까.

지리적으로 경복궁 뒤편의 인왕산은 조선 건국과도 연관된 곳이다. 또 신에게 기도하던 영험한 장소였다. 인왕산에는 ‘선바위’가 있는데 임신을 원하는 부인들이 기도하러 와서 ‘기자암(祈子岩)’이라고 불렀다. 바위의 모습이 스님이 ‘장삼(長衫)’을 입은 모습처럼 보여 참선한다는 ‘선(禪)’자를 따서 선바위라고도 했다.

조선의 한양 천도에 가장 큰 공헌을 세운 ‘무학대사(無學大師)’도 조선의 수명을 늘리기 위해 선바위 앞에서 1000일 기도를 올렸다고 한다. 그는 왜 기도를 올린 걸까.

이를 알려면 조선의 한양 천도를 논하던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무학대사는 인왕산 선바위를 도성 안에 넣으면 천 년 도읍이 돼서 영화를 누리지만 그렇지 않으면 5백년 도읍만 될 것이라고 말한다. 반면 정도전은 도성 안에 선바위가 있으면 불교가 다시 흥해 고려처럼 망하게 될 것이라고 의견을 냈다. 이 둘의 대립은 계속됐고, 결국 정도전의 승리로 끝났다. 선바위를 두고 눈이 녹은 자리를 따라 성을 짓기로 했는 데, 선바위 안쪽으로만 눈이 녹은 것이다.

선바위 부근에는 ‘국사당(國師堂)’이 자리하고 있다. 국사당은 조선시대에 나라의 제례와 기우제 등을 지낸 신당이다. 처음엔 남산(당시 목멱산) 팔각정 자리에 있었는데 1925년 일제가 남산에 조선신궁을 지은 후 인왕산으로 옮겨왔다. 이곳에 자리한 건 무학대사의 기도처였기 때문이다. 신당 안으로는 ‘무신도(巫神圖)’가 걸려 있다. 이태조, 강씨 부인, 무학대사, 단군, 칠성, 군웅 대신(軍雄大神), 최영 장군 등 모두 28점이다.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 국보 제216호인 이 작품은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됐다.(제공: 문화체육관광부)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 국보 제216호인 이 작품은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됐다.(제공: 문화체육관광부)

◆국보에 담긴 인왕산 

겸재 정선을 ‘인왕산 화가’라고 해도 부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의 ‘인왕제색도’로 덕분에 인왕산은 국보에 담긴 산이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인왕산 전경을 담은 또 다른 화가는 조선 후기 인물인 담졸 강희언(姜熙彦1738~)이다. 그의 작품 ‘인왕산도’는 정선의 ‘실경산수화풍’을 계승한 그림이다. 늦은 봄 서울의 도화동에 올라 그는 인왕산을 바라본다. 촘촘히 심긴 나무들, 굴곡진 산기슭은 마치 눈앞에서 인왕산을 보는 듯한 생생함을 주고 있다. 산을 따라 이어지는 긴 산성도 인상적이다.

시화첩인 ‘청풍계첩’에도 인왕산의 모습이 담겼다. 청풍계(靑楓溪)는 인왕산 아래 청운동의 일부 계곡을 포함한 지명이다. 1620년 5월 김신국·이상의·민형남 등 7명의 관료는 인왕산 아래 청풍계에 모여 때늦은 봄나들이를 즐긴다. 장소는 이곳 청풍계의 ‘태고정(太古亭)’이었다. 태고정은 ‘산이 고요하기가 마치 태고와 같다(山靜似太古)’는 소강절(邵康節)의 시구를 참고해 이름을 지은 곳이었다. 

인왕산 송석원(松石園)에서 열린 시회(詩會)도 그림으로 남아있다. 이인문이 그린 ‘송석원시사아회도(松石園詩社雅會圖)’와 김홍도가 그린 ‘송석원시사야연도(松石園詩社夜宴圖)’를 통해서다.  

‘송석원’은 인왕산 자락에 있는 서당 훈장 천수경의 집 바로 옆의 소나무와 돌로 된 멋진 원림(園林)이다. 당시 문인들과 양반들은 송석원시사에 초대받으면 기뻐할 정도로 이곳은 꼭 한번 와보고 싶은 장소였다. 이곳에서는 전국적 규모의 시회가 1년에 두 차례 열렸다고 한다. 1791년 유둣날 열린 시회의 밤 모임을 김홍도가 그렸으니 바로 ‘송석원시사 야연도’요, 이인문이 그린 낮 모임은 ‘송석원시사아회도(松石園詩社雅會圖)’였다.

이처럼 조선의 이름 있는 화가들은 인왕산에 주목했다. 북악산이 나란히 마주하고 있음에도 인왕산을 우리 선조들이 그림으로 남겼다는 건 이 산이 특별한 장소였다는 것을 말한다. 그건 인왕산이 천혜의 비경을 넘어 신을 찾는 곳이었고, 신의 응답을 바라는 곳이었기 때문은 아닐까. 실제로 예부터 우리 선조들은 산을 찾아 끊임없이 기도했다. 그렇게 늘 신을 숭배해왔다. 산은 살아 숨 쉬었고, 인류에게 무한한 생명을 줬다.

그래서일까. 최근 대중에게 공개된 정선의 ‘인왕제색도’를 보고 있으면 ‘환지본처(還至本處)’라는 말이 떠오른다. ‘본래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온다’는 말이다. 누군가의 소유가 아닌, 모든 이들이 함께 누리는 산.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는 마치 그 옛날 선조들처럼 오늘날도 많은 이들이 다시금 산을 찾아주길 바라는 듯 했다. 그렇게 ‘인왕제색도’는 이 한 때를 맞아 모든 이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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